무너진 일상 속에서
작년에 퇴직한 후, 나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수십 년간 회사라는 틀 안에서 살아왔는데, 그 틀이 사라지니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해야 할지도 막막했다.
그래서인지 하루 종일 스마트폰만 붙들고 살았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끝없이 쌓이는 카카오톡 메시지들과 인스타그램 알림이 깜빡거렸다. 무의식적으로 휴대폰을 집어 들어 SNS를 스크롤하다가, 문득 시간을 확인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어져 있었다.
퇴직 후 몇 개월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세상에 대한 관심을 잃어가고 있었다. 정현채 교수가 강의에서 말했던 것처럼 "세상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고, 잠만 자게 되면서" 우울한 증상들이 시작되고 있었다. 매일이 주말 같았지만, 그것이 행복하지는 않았다. 하루 종일 침대에서 나오지 않고 유튜브를 보거나 온라인 쇼핑몰을 뒤적이며 시간을 때우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던 나는 깜짝 놀랐다. 언제부터인가 내 얼굴에는 생기가 사라져 있었고, 눈동자에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내가 이미 죽은 사람처럼 보였다. 그 순간 전율이 온몸을 휩쓸었다. '퇴직 후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나는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운명적인 만남
며칠 후, 집에서 유튜브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정현채 교수의 "여전히 죽음이 두려운 사람을 위한 조언"이라는 강의를 발견했다. 클릭한 것은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그 강의는 내 삶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정현채 교수는 수년간 내과 전문의로 활동하며 수많은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본 의사였다. 그런데 자신이 암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느라 일찍 퇴임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의 첫 이야기가 내 마음을 강하게 흔들었다.
"제가 내과 전공의 레지던트 1년 차 3월에 어느 병동에 가서 환자들을 인계받았는데, 그때 선배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이 환자들이 지금은 평온해 보이지만 곧 중환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인계를 받고 일주일 만에 환자가 중환자가 되면서 사망을 했습니다."
교수는 당시 정신이 없어서 '전공의로 버틸 수 있을까,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까지 했다고 고백했다. 당직실에서 짐을 싸 나오려다가 주변에서 말려서 겨우 버텼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다음 말이었다.
"인간으로서 매일 대화하고 웃던 환자가 어느 날 갑자기 심장도 멎고, 숨도 쉬지 않고, 동공반사도 없어져서 눈앞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을 경험할 때의 충격과 당혹감은 정말 말로 하기 어려웠습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었다. 스마트폰 속 가상의 세계에 빠져 진짜 삶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죽음에 대한 놀라운 발견들
교수는 현대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설명했다. "수십 년간 쌓아온 삶이 하루아침에 연기처럼 사라지고, 자기 존재와 모든 기반이 소멸한다는 사실이 큰 공포로 다가오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정말 그랬다. 나 역시 죽음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차라리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스마트폰과 쇼핑, SNS에 더욱 의존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교수가 소개한 2016년 과학자들의 선언문은 내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흔들었다. "사람이 죽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조금이라도 알아내고, 후대 사람들에게 적용해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도록 돕자"는 내용으로, 11개 항목의 연구 과제가 담겨 있었다.
첫 번째 항목인 '삶의 마지막 환영(Deathbed vision)'에 대한 설명을 들을 때는 정말 놀라웠다. 임종이 임박한 환자가 먼저 죽은 가족이나 친지의 마중을 받는 체험이 실제로 보고된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삶의 종착 시 비전(Life review and vision)'도 흥미로웠다. 멀리 떨어진 가족 앞에 환자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 '사후 통신(After-Death Communication, ADC)'은 더욱 신비로웠다. 교수는 "예컨대 가족 중 누가 세상을 떠난 뒤 갑자기 나비가 방 안에 나타난다든가 하는 식의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들이 보고됩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들을 과학자들이 근거 중심으로 연구하려 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죽음을 미신이나 종교적 관점이 아닌,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접근한다는 것이었다.
삶에 대한 새로운 관점
교수가 들려준 영국 노숙자의 이야기는 내 가슴을 깊이 파고들었다. 고독사한 그의 과거를 조사해보니 포클랜드 전쟁에 참전해 동료의 목숨을 구한 영웅적 행적이 있었다는 것이다.
"평생은 고단했지만 어떤 순간에는 고귀한 삶을 살았던 겁니다. 사람의 삶을 칼로 자르듯 '천국행, 지옥행'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죠. 오히려 비슷한 삶을 산 이들이 모여 각자의 '공명하는 공간'을 이룬다는 관점이 더 합리적입니다."
이 말이 특히 와닿았다. 나는 지금까지 내 삶을 너무 단순하게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퇴직 후 무력감에 빠져 있었지만, 그동안 내가 살아온 시간들에도 분명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교수가 소개한 임사체험(NDE) 사례들은 더욱 흥미로웠다. "어떤 이는 추락하는 순간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구나' 포기하는 순간, 육체를 벗어나 의식체가 되어 자기 몸을 내려다봤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례도 놀라웠다. "어떤 이는 수술 도중 심장이 멎어 사망 판정을 받았는데, 나중에 다시 살아나서 수술실 풍경과 모니터에 붙은 메모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교수는 "이런 임사체험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일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개인적 고백과 깨달음
교수 자신의 이야기는 더욱 가슴 아팠다. 자신이 암 환자가 되고 보니 죽음에 대한 관점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몇 달 전부터 세상에 대한 관심이 없어지고, 잠만 자게 되면서 증상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다 피부에 점이 나타나고, 가래가 끓고, 소변이 잘 안 나오게 되는 증상들이 이어졌습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숨이 멎을 뻔했다. 내가 퇴직 후 경험했던 무기력감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교수는 계속해서 "갑자기 열이 나고, 점점 종양이 커지다가 터지면 바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상황까지 갔다고 했다.
하지만 교수는 이런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다. "저 역시 암 환자가 되고 보니, 죽음을 단순히 고통스럽고 끔찍한 것으로만 보는 태도가 얼마나 협소한지 깨달았습니다. 죽음은 삶의 마지막 단계이자, 어떤 면에서는 성숙의 기회이기도 합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14살 소년 환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제 환자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인턴 시절 만났던 14살 소년 환자입니다. 원인 모를 고열로 입원했는데, 결국 혈액암으로 밝혀지고 사망했죠. 저는 너무 많이 울었습니다. 그 누나들이 오히려 저를 위로해 주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지금 살아 있었다면 제 또래가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아이는 살고 싶었겠지만 기회를 얻지 못했는데, 나는 퇴직 후 충분한 시간을 얻었으면서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감사의 실천
교수는 자신의 현재 삶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는 매일 아침 감사 기도를 합니다. 두 눈으로 볼 수 있고, 두 귀로 들을 수 있고, 두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한 일입니다. 방광암 수술로 배에는 큰 흉터가 남았지만, 인공방광 시술 덕분에 요루(소변주머니)를 달고 살지 않아도 되는 시대에 태어난 것을 감사합니다."
이 말을 듣고 나서, 나는 그동안 내가 얼마나 당연한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며 살았는지 깨달았다. 강의를 다 듣고 난 후, 나는 며칠 동안 깊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교수가 말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즉 죽음을 기억하는 자세였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서 "오늘 하루도 살아있음에 감사하자"고 되뇌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점점 진심이 담기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알람을 끄고 일어나면서 제일 먼저 창문을 열어 바깥 공기를 마셨다. 그리고 내가 지금 숨쉴 수 있고, 볼 수 있고, 걸을 수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이렇게 하루를 시작하니 전과는 다른 기분이 들었다.
삶의 변화 시도
스마트폰 사용도 줄이기 시작했다. 침실에서는 아예 휴대폰을 두지 않기로 했고, SNS 앱들의 알림을 대부분 껐다. 대신 저녁 시간에는 산책을 나가거나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온라인 쇼핑도 의식적으로 자제했다. 무언가 사고 싶은 충동이 들 때마다 "정말 필요한 것인가? 이것이 나에게 진정한 기쁨을 줄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이런 변화 과정에서 나는 교수의 삶의 변화에 대한 고백을 자주 떠올렸다. "이제 제 삶은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논문, 연구비, 업적이 전부였지만, 지금은 사진을 찍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사별자들과 교류하면서 '죽음을 직시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나 역시 퇴직 전에는 승진과 성과, 연봉에만 매달려 살았다. 하지만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난 지금, 정작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혼란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일상의 발견
몇 달이 지나면서 나는 점점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가장 큰 변화는 일상에서 느끼는 감각들이었다. 이전에는 퇴직 후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고 무의미하게 느껴졌다면, 이제는 그 안에서 작은 기쁨들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마시는 커피의 향기, 산책길에 만나는 꽃들, 이웃과 나누는 소소한 인사까지도 새롭게 느껴졌다. 죽음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역설적으로 삶이 더욱 생생해진 것이다.
교수가 말했던 "죽음을 생각하면 삶이 훨씬 더 선명해집니다"라는 말이 정말 그랬다.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 이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모든 경험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변화가 항상 쉬웠던 것은 아니다. 여전히 스마트폰을 무의식적으로 집어 들 때가 있고, 온라인 쇼핑의 유혹에 넘어갈 때도 있다. 특히 외로움이나 무료함을 느낄 때면 예전 습관으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강해진다.
내 주변 사람들과도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함께하는 식사 시간을 소중히 여겼고, 친구들과 만날 때도 스마트폰을 만지지 않고 대화에 집중했다. 그러면서 점점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새롭게 느끼게 되었다.
현재 진행형의 깨달음
지금도 나는 이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완벽하게 변한 것도 아니고, 모든 답을 찾은 것도 아니다. 여전히 죽음이 두렵기도 하고, 가끔은 퇴직 후 내 삶의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맬 때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는 더 이상 죽음으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것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면서, 현재 이 순간을 더욱 깊이 있게 살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 오랜 직장 동료가 물었다. "퇴직하고 어떻게 지내?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우연히 본 강의에서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어. 그랬더니 퇴직 후 남은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더라고."
동료는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는 상관없었다. 내가 찾은 이 깨달음이 모든 사람에게 맞는 것은 아닐 테니까. 다만 나에게는 이것이 퇴직 후 진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되었다.
오늘도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서 감사하다고 말한다. 숨을 쉴 수 있고,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것에. 그리고 오늘 하루도 의미 있게 살아보겠다고 다짐한다.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어제보다는 조금 더 깨어있는 상태로.
정현채 교수의 그 강의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단순했지만 강력했다. 죽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된다는 것.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죽음의 신비로운 현상들, 임사체험자들의 증언, 그리고 한 의사의 진솔한 고백이 모두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을 더욱 의미 있게 만드는 렌즈라는 것을.
그리고 그 여행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