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모르는 상처, 왕따 신경증

by 홍종민

보이지 않는 사람들


대학 동기 중에 유독 조용한 친구가 있었다. 모임에 나와도 구석에 앉아있고, 의견을 물어봐도 "아무거나 괜찮아"라고만 했다. 처음엔 그냥 소심한 성격이려니 했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우연히 중고등학교 시절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 친구가 6년 내내 왕따를 당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때 처음 깨달았다. 우리 주변에 과거의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그리고 그 상처가 '왕따 신경증'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그들을 괴롭히고 있다는 걸.


시간이 약이 아닌 이유


"그런 일 다 잊어버려. 이제 새 출발이잖아."

우리가 흔히 하는 위로다. 하지만 왕따를 당했던 사람들에게 이런 말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왕따 신경증은 단순히 '나쁜 기억'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뇌에 각인된 생존 메커니즘이고, 몸이 기억하는 방어 본능이다.

한 심리상담사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왕따를 당한 아이들의 뇌는 항상 위험을 감지하는 모드로 작동해요. 평범한 웃음소리도 자신을 조롱하는 소리로 들리고, 단순한 시선도 평가와 비난으로 느껴지죠. 이건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사회의 숨겨진 유령들


왕따 신경증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있다. 회사에서 절대 자기 의견을 내지 않는 직원, 항상 과도하게 친절한 이웃, 모든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는 친구. 그들은 '착한 사람', '조용한 사람'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학창시절 왕따를 경험한 사람의 70% 이상이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관계 문제를 겪는다고 한다.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들에게 "왜 그렇게 소심해?"라고 묻기만 할 뿐, 그들이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는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방관자였던 우리의 책임


솔직히 말하면, 나도 방관자였다. 중학교 때 우리 반에도 왕따가 있었다. 나는 가해자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피해자를 도운 것도 아니었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안도감과 '괜히 나섰다가 나도 찍힐까봐'라는 두려움 사이에서 침묵했다.

그 침묵이 얼마나 큰 폭력이었는지 이제야 안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에게 가장 절망적인 건 직접적인 괴롭힘보다 주변의 무관심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는 그 고립감이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는 것이다.


치유를 위한 첫걸음


왕따 신경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이 평생의 상처가 되는 사회, 그런 상처를 '별것 아닌 일'로 치부하는 문화, 이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

먼저 왕따 신경증을 진짜 '병'으로 인정해야 한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학교에서, 직장에서 일어나고 있을 따돌림에 침묵하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괜찮아?"라는 한마디가,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위로가, "내가 네 편이야"라는 지지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왕따 신경증이라는 긴 그림자를 걷어내는 건, 결국 우리 모두의 관심과 연대에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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