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상이라는 택배
한 변호사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 저는 3년째 두통에 시달리는데 CT를 찍어도 MRI를 찍어도 아무 이상이 없대요. 그런데 머리가 터질 듯 아프거든요. 이게 정말 심리적인 문제일까요? 아니면 제가 꾀병을 부리는 건가요?"
그날 그는 눈물이 핑 돌았다. 자기 증상을 자기도 못 믿게 된 것이다.
병원에서 "아무 이상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으면 안심이 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더 막막해진다. 검사 결과는 정상인데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 이 고통은 어디서 온 걸까? 내가 예민한 걸까, 아니면 정말 아픈 걸까? 주변 사람들은 "스트레스 받지 마" "긍정적으로 생각해" 같은 말로 위로하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그 말들이 더 답답하다.
바로 여기에 증상의 오묘한 팩트가 있다. 증상이란 실은 택배 배달원처럼 먼 길을 떠나온 메시지다.
증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상담실에서 만난 사람들의 증상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두통은 두통으로 끝나지 않는다. 불면은 단순히 잠이 안 오는 게 아니다. 소화불량은 음식 문제가 아니다. 증상은 늘 다른 무언가를 가리킨다. 화살표다. 과녁은 다른 곳에 있다.
정신분석의 창시자 프로이트가 히스테리 환자들을 만나며 발견한 사실이 하나 있다. 증상을 일으킨 사건을 추적해 올라가니, 정작 그 사건 자체는 애초에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상점에 혼자 들어가지 못하는 엠마라는 여성이 있었다. 열두 살 때 점원에게 성적 조롱을 당한 기억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니 그보다 훨씬 어렸을 때, "상점 주인이 그녀의 옷 속에 손을 넣어서 성기를 만졌다"는 사건이 나왔다. 그런데 당시 어린 그녀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기에 "그다음에도 그 상점에 다시 갔던 기억"이 있었다(맹정현, 2015: 44). 두 개의 장면이 무의식 속에서 '웃음'이라는 연결고리로 만났고, 열두 살이 되어 성적 의미를 깨닫는 순간 과거의 사건이 소급적으로 트라우마가 되었다.
이게 핵심이다. 증상은 지금 여기가 아닌, 과거 어딘가에서 출발한 택배다.
사후의 논리학: 증상이 늦게 도착하는 이유
흥미로운 건 증상은 항상 지각한다는 점이다. 제시간에 오지 않는다.
장면 1이 일어날 때는 충격이 없었다. 장면 2가 일어날 때도 그 자체로는 견딜 만했다. 그런데 장면 2가 장면 1을 소급적으로 '성적인 사건'으로 규정하는 순간, 감당할 수 없는 불쾌한 정동이 폭발한다. 정신은 이 폭발을 견딜 수 없어서 애초의 표상을 억압한다. "그리고 표상과의 고리가 끊어진 불쾌한 정동이 다른 표상과 결합되어 나타나는데, 이것이 바로 증상이다"(맹정현, 2015: 42).
예외가 없다. 트라우마는 사건이 일어난 그 순간에 트라우마가 되는 게 아니다. 나중에, 한참 뒤에, 전혀 다른 맥락에서 그 의미가 결정되면서 트라우마가 된다. 우편물이 오래된 창고에서 잠자다가 어느 날 갑자기 배달되는 격이다.
증상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다.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왕복한다.
증상은 당신이 아닌 '그것'을 가리킨다
우연히 만난 후배 심리상담사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다.
"선생님, 내담자 한 분이 손 씻기를 하루에 50번도 더 하세요. 손이 다 트고 피가 나는데도 멈출 수가 없대요. 병원에서는 강박증이라고 하는데, 제가 보기엔 뭔가 더 깊은 게 있는 것 같아요."
"손이 더러워서 씻는 걸까, 아니면 마음이 더러워서 씻는 걸까?"
그가 잠시 침묵하더니 무릎을 쳤다. "아, 그렇구나. 그렇구나."
증상은 그 자체로 문제가 아니다. 증상은 화살이다. 과녁은 다른 곳에 있다. 손을 씻는 행위 속에는 지우고 싶은 무언가가 있고, 상점에 들어가지 못하는 공포 속에는 다시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다.
증상은 당신의 의식이 조명할 수 없는 곳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다. 생존의 최소 조건으로 필요한 신호등이다. "여기를 봐라, 여기에 뭔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증상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그렇다면 증상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첫째, 증상을 적으로 대하지 말라. 증상은 적이 아니라 메신저다. 두통을 없애려고만 하면 두통은 더 강렬하게 돌아온다. 불면을 몰아내려 할수록 잠은 더 멀어진다.
둘째, 증상에게 물어라. "너는 무엇을 말하려는 거니?" 증상은 입이 없지만 말을 한다. 몸의 언어로 말한다. 귀 기울일 때 비로소 그 목소리가 들린다.
셋째, 시간의 겹을 벗겨라. 지금 일어나는 증상이 정말 '지금'의 것인지 물어봐야 한다. 혹시 열 살 때, 스물 살 때, 서른 살 때 어딘가에 묻혀둔 것이 지금 도착한 건 아닌지. 증상은 대부분 지각하는 우편물이니까.
증상이라는 선물
역설적이지만 증상은 일종의 선물이다. 증상이 없다면 우리는 평생 자신의 무의식을 만나지 못한 채 살아갈 것이다. 증상은 불편하지만 정직하다. 증상은 고통스럽지만 필요하다.
당신의 두통이, 불면이, 소화불량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들어본 적 있는가?
나는 그 변호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증상을 없애려고 하지 마세요. 증상과 대화를 시작하세요. 그 두통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어떤 상황에서 더 심해지는지, 무엇을 말하려는 건지 천천히 들어보세요. 증상은 당신의 적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일부니까요."
그날 그는 처음으로 편안한 얼굴로 돌아갔다.
증상이란 결국 나와 나 사이의 대화다.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다리다. 과거와 현재 사이의 우편물이다. 그 우편물을 뜯어보는 용기, 그것이 치유의 시작이다.
당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신의 몸도 지금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들을 준비가 되었는가?
참고문헌: 맹정현(2015). 트라우마 이후의 삶. 책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