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천간은 말하고, 지지는 행동한다

by 홍종민

일요일 아침이었다. 눈을 뜨자마자 머릿속이 복잡했다. 도서관 갈까, 골프 대회 볼까. 커피나 마시면서 생각해보자. 편의점으로 차를 몰았다.

편의점 안에서도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했다. 도서관? 골프? 그런데 내 손은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커피, 단백질 바, 음료수. 이건 도서관 가는 사람 장바구니가 아니었다. 골프 대회장 가는 사람 먹거리였다.

차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머릿속으로는 여전히 "어디 갈까?"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 손은 이미 네비게이션에 골프 대회 주소를 입력하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의식적으로는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무의식은 이미 선택을 끝냈다. 말로는 "어디 갈까?" 하고 있었지만, 행동으로는 이미 골프 대회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이게 천간과 지지다.

천간은 말한다. 지지는 행동한다. 천간은 의식이다. 지지는 무의식이다. 천간은 생각이다. 지지는 욕망이다.


우리는 모두 말과 행동이 다르다


당신도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다이어트 할 거야"라고 말하면서 밤마다 치킨을 시킨다. "올해는 책 많이 읽을 거야"라고 선언하면서 넷플릭스를 켠다. "회사 그만두고 싶어"라고 하면서 매일 아침 출근한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의지가 약해서? 거짓말쟁이라서?

아니다.

우리 안에는 두 개의 나가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나와 행동하는 나. 의식하는 나와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나. 생각으로 원하는 것과 몸이 진짜 원하는 것.

정신분석가 유범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매일 생각과 감정을 무의식 속에 묻으며 살아간다. 평소에는 의식 밑에 깊숙이 감춰져 있어 그 존재 여부조차 확인하기 힘들다"(유범희, 2016: 19). 무의식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마음속의 또 다른 마음이다. 그런데 이 또 다른 마음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한다. 의식이 아무리 "이렇게 하겠다"고 선언해도, 무의식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면 몸은 무의식을 따른다.

그게 팩트다.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안다고 착각한다.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다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런가? 당신이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그게 진짜 당신인가? 아니면 당신이 그렇게 믿고 싶은 당신인가?

의식은 우리가 보고 싶은 자신을 보여준다. 무의식은 우리가 보고 싶지 않은 자신을 감춘다. 의식은 포장이고, 무의식은 내용물이다. 포장지에 "사과"라고 적혀 있어도, 안에 배가 들어 있을 수 있다. 우리의 말이 포장지라면, 우리의 행동이 내용물이다.


사주를 보는 사람들이 놓치는 것


사주를 공부한 사람들은 안다. 천간과 지지가 있다는 것을. 천간은 위에, 지지는 아래에. 천간은 겉으로 드러나고, 지지는 속에 숨어 있다고.

그런데 이걸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물다.

천간과 지지가 왜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 그 차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부분의 명리학자들은 그냥 나열한다. "천간에 정관이 있고 지지에 인성이 있네요." 그래서? 그게 무슨 의미인데?

나는 수십 년간 사주를 봐왔다. 상담실에서, 커피숍에서, 전화로. 수천 명의 사주를 봤다. 그리고 발견했다.

천간은 천간일 뿐이고, 지지는 지지일 뿐이다. 둘은 완전히 다른 세계다.

천간은 사람들이 입으로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요." 지지는 사람들이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다. 말없이 움직이는 손,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길, 이유 모를 반복.

명리학 고전들은 천간을 하늘의 기운, 지지를 땅의 기운이라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너무 추상적이다. 실제 상담에서 써먹기 어렵다. "당신의 천간은 하늘 기운이고 지지는 땅 기운입니다"라고 말하면 내담자가 뭘 알겠는가?

내가 발견한 건 이거다. 천간은 그 사람이 "자신이라고 믿는 자신"이다. 지지는 그 사람이 "자신도 모르는 자신"이다. 천간은 의식이 만들어낸 자기 이미지고, 지지는 무의식이 숨겨놓은 진짜 욕망이다.

이걸 알면 사주 상담이 완전히 달라진다.


실수는 의식과 무의식의 타협이다


유범희는 무의식이 어떻게 의식 위로 떠오르는지 설명한다. "무의식 속 내용이 의식화되려고 하면 의식은 일단 그것을 억누르려 애쓴다. 하지만 올라오고자 하는 힘이 너무 세지면 무의식은 결국 억압을 뚫고 의식의 표면으로 나타난다"(유범희, 2016: 21).

바로 이거다. 무의식은 가만히 있지 않는다. 계속 올라오려고 한다. 의식이 아무리 막아도 틈새를 찾아 비집고 나온다. 그게 말실수이고, 그게 어이없는 행동이고, 그게 "왜 내가 그랬지?" 하는 순간이다.

결혼을 일주일 앞둔 예비 신랑이 있었다. 결혼 예복을 찾으러 가다가 교차로에서 신호등 앞에 멈췄다. 그런데 뒤차가 경적을 울렸다. 깜짝 놀라 보니 신호등이 붉은색이 아니라 푸른색이었다. 왜 신호등 색깔을 잘못 봤을까?

그는 예비 신부와 6개월 전 처음 만났다. 부모님이 마음에 들어해서 결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망설임이 있었다. 말로는 "결혼한다"고 했지만, 무의식은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라고 묻고 있었다.

그래서 신호등을 착각했다. 결혼하고 싶지 않다는 무의식 속 소망이 직접 의식화되는 대신, 결혼 예복을 찾지 못하게 만들려는 소망으로 바뀌어 나타났다. 일종의 타협책이다.

이게 천간과 지지의 관계다.

천간으로는 "결혼한다"고 말한다. 지지로는 "정말?"이라고 묻는다. 천간은 의식의 선언이고, 지지는 무의식의 질문이다. 둘이 일치하면 문제없다. 하지만 둘이 어긋나면? 말과 행동이 다르고, 생각과 선택이 다르고, 의도와 결과가 다르다.

사주를 볼 때 천간만 보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천간만 보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만 본다. 그 사람이 "행동하는 것"은 지지에 있다. 둘 다 봐야 진짜 그 사람이 보인다.


말과 욕망은 다르다


우리가 입으로 내뱉는 말과, 그 말 밑에 숨어 있는 진짜 욕망은 다르다. 말의 껍데기와 말의 속이 계속 어긋난다.

쉽게 설명해보자.

당신이 "힘들다"고 말한다고 치자.

말의 껍데기: "힘들다"

말의 속: 뭐가 힘든가? 쉬고 싶은가? 인정받고 싶은가? 도망치고 싶은가?

같은 "힘들다"는 말이지만, 어떤 사람은 정말 쉬고 싶어서 힘들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더 인정받고 싶은데 안 돼서 힘들다고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멈추면 가치 없게 느껴질까 봐 쉬지 못해서 힘들다고 한다.

같은 말, 다른 속.

말의 속(욕망)은 말의 껍데기 아래에서 계속 미끄러진다. 우리가 "힘들다"고 말할 때, 그 말 아래에는 "쉬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 "멈출 수 없다" "가치 증명하고 싶다" 같은 여러 욕망이 물고 물린다. 계속 미끄러지듯 바뀐다. 고정되지 않는다.

그래서 말과 행동이 어긋나는 것이다.

입으로는 "힘들다, 쉬고 싶다"고 하지만, 몸은 계속 일을 벌인다. 새로운 공부를 시작한다. 대학원에 등록한다. 부업을 시작한다. 약속을 잡는다.

왜?

말의 껍데기는 "쉬고 싶다"였지만, 말의 속(진짜 욕망)은 "인정받고 싶다" "가치 증명하고 싶다"였으니까.

천간이 말의 껍데기라면, 지지는 말의 속이다. 천간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지지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것이다.


무의식이 불러온 사회자의 말실수


회사 중견 간부가 있었다. 사춘기 때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무척 싫어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회사 주주총회 사회를 맡게 됐다. 전날 밤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마이크를 잡았다.

그가 한 첫마디.

"지금부터 ○○ 회사의 주주총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시작한다고 해야 할 것을 마친다고 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그 이상 잘 표현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의 천간은 "사회를 맡겠다"였다. 하지만 지지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였다. 의식은 책임을 받아들였지만, 무의식은 도망가고 싶었다. 그래서 말실수가 났다.

우리가 부지불식간에 저지르는 많은 실수들은 따지고 보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냥 단순한 부주의가 아니라 의식과 무의식 사이의 절묘한 타협에 의해 다양한 실수가 벌어지는 것이다.

절묘한 타협. 이 표현이 정확하다. 의식이 원하는 것과 무의식이 원하는 것이 다를 때, 둘은 싸우지 않는다. 타협한다. 그 타협의 결과가 말실수이고, 어이없는 행동이고, "왜 내가 그랬지?" 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 타협의 결과가 바로 사주에 드러난다.

천간에 드러난 것과 지지에 숨은 것. 의식이 말하는 것과 무의식이 욕망하는 것. 그 간극이 사주팔자에 적혀 있다.


천간과 지지, 그 분열의 구조


예를 들어보자.


사례 1: 천간 정관, 지지 편인


천간에 정관이 있다. 정관은 뭘 의미하는가? 조직, 직장, 질서, 체계. 이 사람은 말한다. "안정적인 직장이 좋아요. 규칙적인 삶을 원해요."

말의 껍데기: "직장이 좋아요"

그런데 지지를 보니 편인이 박혀 있다. 편인은 뭔가? 독특한 공부, 자유로운 학습, 비주류 지식.

이 사람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

회사 다니면서도 주말마다 점술 공부를 한다. 퇴근하고 타로를 배운다. 사표를 품에 넣고 산다. 회사에서는 모범 직원처럼 굴지만, 퇴근하면 완전히 다른 세계에 빠진다.

말의 속(진짜 욕망):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어"

말의 껍데기(천간)는 "안정"을 외치지만, 말의 속(지지)은 "자유"를 갈망한다. 그래서 말과 행동이 어긋난다. 이 사람에게 "당신은 안정을 원하는군요"라고 말하면 틀린 해석이다. 이 사람이 진짜 원하는 건 자유다. 다만 그걸 의식적으로 인정하지 못할 뿐이다.


사례 2: 천간 정인, 지지 편재


천간에 정인이 있다. 정인은 뭔가? 공부, 학위, 문서, 자격. 이 사람은 말한다. "저는 학문의 길을 가고 싶어요. 대학원 갈 거예요."

말의 껍데기: "공부하고 싶어요"

그런데 지지를 보니 편재가 있다. 편재는 뭔가? 큰돈, 사업, 투자, 기회.

이 사람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

대학원 원서를 쓰면서도 부동산 매물을 검색한다. 논문 쓴다고 하면서 주식 앱을 켠다. 결국 박사과정 포기하고 사업을 시작한다. 학회에 가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사업 아이템을 구상한다.

말의 속(진짜 욕망): "돈을 벌고 싶어"

말의 껍데기(천간)는 "학문"을 외치지만, 말의 속(지지)은 "재물"을 쫓는다. 그래서 말과 행동이 다르다. 이 사람에게 "학자의 길이 맞습니다"라고 말하면? 몇 년 후에 후회할 것이다. 이 사람의 발은 이미 사업 쪽을 향하고 있다.


사례 3: 천간 비견, 지지 정관


천간에 비견이 있다. 비견은 뭔가? 독립, 자존심, 내 방식대로. 이 사람은 말한다. "저는 누구 밑에서 일 못 해요. 제 사업 할 거예요."

말의 껍데기: "독립하고 싶어요"

그런데 지지를 보니 정관이 있다. 정관은 뭔가? 조직, 안정, 체계.

이 사람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가?

사업한다고 하면서 계속 취업 공고를 본다. 프리랜서로 일하면서도 정규직 제안이 오면 흔들린다. 결국 다시 회사로 돌아간다.

말의 속(진짜 욕망): "안정이 필요해"

말의 껍데기(천간)는 "독립"을 외치지만, 말의 속(지지)은 "소속"을 원한다. 이 사람의 자존심은 "나는 독립적인 사람이야"라고 말하지만, 무의식은 "누군가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필요해"라고 속삭인다.


왜 그 과장은 상사와 대립했을까


대기업에 다니는 한 과장이 있었다.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직속 상사 김 부장과 자꾸 부딪혔다. 업무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상사에게 밉보이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어느 날 회의 중에 직원들이 다 보는 앞에서 김 부장과 심하게 언쟁을 벌였다.

그 과장 스스로도 자신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됐다. 왜 그랬을까?

상담을 통해 밝혀진 사실. 그의 아버지는 집에서 폭군이었다. 경제적으로 무능하고 가부장적이었으며 때로는 폭력을 휘둘렀다. 그는 사춘기 이후 집을 떠나 살았고, 어머니를 괴롭히는 아버지를 보면서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그런데 김 부장은 딱 아버지를 닮았다. 고향도 같고, 똑같은 사투리를 쓰고, 급하고 다혈질적인 성격도 비슷했다. 그 과장은 김 부장을 볼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아버지가 연상되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과장의 천간: "상사에게 잘하겠다"

그 과장의 지지: "아버지에 대한 분노"

의식은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했지만, 무의식은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김 부장에게 쏟아내고 있었다. 이게 전이다. 과거의 감정이 현재의 다른 사람에게 옮겨가는 것.

그런데 더 복잡한 게 있었다. 상담이 진행되자 그 과장은 아버지에 대해 미움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는 다른 가족에게는 폭군이었지만, 큰아들인 자신에게는 늘 잘해주려고 애썼다. 어려운 형편에도 서울로 유학 보내기로 결정한 것도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1년 전 심장병으로 돌아가셨을 때, 그 과장은 너무 담담했다. 아무런 감정도 느껴지지 않아서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왜 그랬을까? 아버지에 대한 상반되는 감정 때문에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미움과 죄책감과 슬픔이 공존했다. 그래서 아버지 생각을 아예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김 부장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떠올랐고, 그때마다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사실은 무의식 속 죄책감과 슬픔 때문에 스스로에게 화가 났던 것이다.

이게 무의식의 구조다.

단순하지 않다. 여러 감정이 뒤엉켜 있다. 그리고 그 감정들은 엉뚱한 곳에서 터진다. 의식은 모르지만 무의식은 알고 있다. 천간은 "상사와 잘 지내겠다"고 말하지만, 지지는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지금 당신을 보라.

당신이 입으로 말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는가?

"다이어트 하겠다"고 말하면서 야식을 먹는가? → 말의 껍데기는 "날씬해지고 싶다"지만, 말의 속은 "위안받고 싶다"

"조용한 게 좋다"고 말하면서 파티를 즐기는가? → 말의 껍데기는 "차분함"이지만, 말의 속은 "흥분과 자극"

"회사 그만두고 싶다"고 말하면서 매일 출근하는가? → 말의 껍데기는 "자유"지만, 말의 속은 "안정"

"돈에 관심 없다"고 말하면서 월급날만 기다리는가? → 말의 껍데기는 "초연함"이지만, 말의 속은 "물질적 안정"

"혼자가 편하다"고 말하면서 SNS에 글을 올리는가? → 말의 껍데기는 "독립"이지만, 말의 속은 "관심과 인정"

이게 천간과 지지다. 천간(말의 껍데기)으로는 이렇게 말하지만, 지지(말의 속)로는 저렇게 욕망한다.

예외가 없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우리는 스스로도 모른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의식적으로는 "A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로는 A를 외친다. 하지만 무의식적으로는 B를 욕망한다. 그래서 행동으로는 B를 향해 움직인다.

의식과 무의식이 따로 논다. 말과 욕망이 어긋난다. 천간과 지지가 분열된다.

그게 인간이다.

유범희는 이렇게 정리한다. "문제는 무의식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이 정말 큰데도 그것을 자각하기는 쉽지 않다는 데 있다. 때때로 이상적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감정을 느끼거나 행동을 할 때가 있는가? 그렇다면 한번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어 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는 무의식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어떤 메시지가 담겨 있을 가능성이 높다"(유범희, 2016: 28).

바로 이거다. 무의식은 우리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말실수로, 어이없는 행동으로, "왜 내가 그랬지?" 하는 순간으로. 그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사주는 바로 그 메시지를 읽는 도구다.

천간만 보면 의식의 소리만 듣는다. 지지까지 봐야 무의식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다. 천간이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지지는 "정말?"이라고 되묻는다. 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진짜 상담이다.


사주는 바로 이 분열을 보여준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분열된 존재다.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말하는 나와 욕망하는 나가 다르다. 의식하는 나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는 나가 따로 논다.

사주는 바로 이 분열을 보여준다.

천간은 의식(말의 껍데기)을 보여주고, 지지는 무의식(말의 속, 진짜 욕망)을 보여준다.

지금 당신의 사주를 펴놓고 보라.

올해 운에서 천간이 뭔가? 지지가 뭔가?

천간에 관성이 왔는가? 그럼 당신은 지금 "직장을 구해야겠다" "승진하고 싶다" "안정이 필요해"라고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지지를 보라.

지지에 인성이 있다면? → 당신은 직장 간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격증 공부를 하게 될 것이다. 무의식은 "일하기 전에 더 배워야 해"라고 말하고 있다.

지지에 식상이 있다면? → 당신은 회사 다닌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부업을 벌이고 독립을 꿈꾸게 될 것이다. 무의식은 "내 것을 만들고 싶어"라고 말하고 있다.

지지에 비겁이 있다면? → 당신은 승진을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동료와의 경쟁에 치이게 될 것이다. 무의식은 "내 자리를 지켜야 해"라고 말하고 있다.

지지에 재성이 있다면? → 당신은 안정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돈벌이에 더 관심이 갈 것이다. 무의식은 "돈이 있어야 진짜 안정이야"라고 말하고 있다.

이게 천간과 지지의 진실이다. 천간(말)과 지지(욕망)가 다르면, 말과 행동이 어긋난다.


이 책이 하려는 것

나는 수십 년간 이 비밀을 혼자 알고 있었다. 상담실에서 사람들의 사주를 볼 때마다 보였다.

천간으로는 이렇게 말하지만, 지지로는 저렇게 움직인다는 것이. 입으로는 A를 외치지만, 몸은 B를 향해 간다는 것이. 의식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무의식은 저렇게 욕망한다는 것이.

그런데 누구도 이걸 말하지 않았다. 명리학 책을 봐도 그냥 "천간은 겉이고 지지는 속이다" 정도로만 설명했다.

그게 아니다.

천간은 말의 껍데기(의식)이고, 지지는 말의 속(무의식)이다. 천간은 우리가 의식적으로 말하는 것이고, 지지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욕망하는 것이다.

이걸 모르고 사주를 본다는 건, 반쪽짜리 해석이다. 천간만 보고 "당신은 이런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건 그 사람의 포장지만 읽는 것이다. 지지까지 봐야 그 사람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있다.

나는 이 책에서 정신분석과 사주를 결합할 것이다. 프로이트와 라캉이 밝혀낸 무의식의 구조를, 사주의 천간과 지지에 적용할 것이다. 육친(비겁, 식상, 재성, 관성, 인성)이 정신분석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밝힐 것이다.

그리고 당신에게 말할 것이다.

당신의 사주는 이미 당신의 무의식을 알고 있다고. 천간(말)으로는 이렇게 외치지만, 지지(욕망)로는 저렇게 움직인다고. 당신이 의식하지 못하는 당신의 진짜 모습이 지지에 박혀 있다고.


나가며

편의점을 나와 골프 대회장으로 향하던 그날, 나는 깨달았다.

내 말과 내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내가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무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내 천간과 내 지지가 분열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알았다.

이게 인간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통합된 인간은 없다. 말과 행동이 100퍼센트 일치하는 사람은 없다. 의식과 무의식이 완전히 같은 방향을 가리키는 경우는 없다. 우리는 모두 분열되어 있다. 그게 정상이다.

문제는 그 분열을 모르는 것이다. 자신이 분열되어 있다는 걸 모르면, 왜 내가 이러는지 모른다. 왜 말과 행동이 다른지 모른다. 왜 원하는 대로 안 되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분열을 알면? 이해할 수 있다. "아, 내 의식은 A를 원하지만, 무의식은 B를 원하는구나." 그러면 선택할 수 있다. A를 따를지, B를 따를지. 아니면 둘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을지.

당신도 지금, 무언가를 말로는 거부하면서 행동으로는 받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당신의 천간과 지지를 보라. 그 간극을 발견하라. 그리고 물어보라.

"내가 진짜 원하는 건 뭘까?"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참고문헌

유범희(2016). 『다시 프로이트, 내 마음의 상처를 읽다』. 서울: 더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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