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서 바티칸을 방문하는 것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순례자처럼 위대한 예술을 마주하러 가는 여정에 가깝다. 그리고 그 여정의 첫 번째 관문은 끝없이 이어지는 기다림이었다.
아침 일찍 도착했지만, 이미 바티칸 미술관 앞에는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이 늘어서 있었다. 관광객, 미술 애호가, 학생들, 그리고 나처럼 설렘을 안고 찾아온 사람들. 모두가 한 방향을 향해 천천히 움직이며, 저 거대한 성벽 안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줄은 길었고, 시간은 느리게 흘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지루하지 않았다. 이곳은 바티칸,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들이 모인 곳. 눈앞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기다림이 더 큰 감동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오랜 기다림 끝에 문을 통과하는 순간. 나는 예술의 성전 안으로 들어섰다.
첫 번째로 마주한 곳은 르네상스의 거장 라파엘로의 방이었다. 여기에 들어서는 순간, 천장과 벽이 온통 그림으로 덮여 있었고, 그 안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 ‘아테네 학당(School of Athens)’이 멀리 타국에서 이 작품을 보러 온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림 속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중앙에서 대화를 나누고, 피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 유클리드가 각자의 철학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라파엘로가 이 모든 철학자들의 얼굴에 동시대의 위대한 인물들을 담아냈다는 것이었다.
플라톤의 얼굴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묘사되어 있었고, 헤라클레이토스는 미켈란젤로, 그리고 한쪽에서 조용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 사람, 그 인물의 얼굴은 바로 라파엘로 자신이었다.
이 그림이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지성인과 예술가들이 한 곳에 모인 시간을 초월한 회합이라는 사실에 나는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참 동안 그 벽 앞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그 순간,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에 서 있었다.
바티칸 미술관을 따라 걷다 보면, 그 마지막에 가장 위대한 순간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바로,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이다.
조용히 문을 통과하는 순간,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미켈란젤로가 창조해 낸 하늘을 마주했다. 천장 한가운데, 빛과 색이 살아 있는 거대한 프레스코화, ‘천지창조(Creazione di Adamo)’가 눈앞에 펼쳐졌다.
하나님이 손을 뻗어 인간을 창조하는 장면. 두 손끝이 거의 닿을 듯 말 듯한 그 찰나의 순간. 미켈란젤로가 표현한 신과 인간의 경계선, 그 절묘한 긴장감. 그 압도적인 광경 앞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숨소리조차 조심스럽게 삼키며, 나는 천천히 그 천장을 따라 걸었다.
이곳은 단순한 성당이 아니었다. 이곳은 바로 미켈란젤로가 만든 거대한 우주였다. 한 붓 한 붓, 그가 직접 그려 넣었을 수천 수만 번의 움직임을 상상하니, 그의 손끝이 닿았던 저곳에 시간이 멈춘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성당 한가운데 서서, 그저 천장을 올려다보며 오랜 시간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이것이 바로, 예술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이었다.
미술관을 나오는 길, 나는 다시 한번 바티칸의 높은 성벽을 바라보았다.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다빈치... 여기에는 수백 년 전,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순간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눈으로, 마음으로, 온몸으로 경험했다. 이곳은 그저 미술관이 아니었다. 이곳은 영원한 예술이 머무는 곳이었다.
나는 다시 한번 바티칸을 돌아보며 속삭였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올 수 있을까?"
아마도, 이곳을 한 번 방문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 또다시 이 성벽을 지나, 그 천장을 올려다볼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