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온도_28

by 슬로우

‘더 슬로우’의 문을 닫고 마감 정리를 하던 밤, 도윤은 문득 오래된 커피박스가 놓인 구석 수납장을 열었다. 그 안엔 누렇게 바랜 서류봉투 하나가 있었다. 봉투 위엔 조심스럽게 눌러쓴 글씨로 '업무서류 / 2021'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그 봉투를 꺼내 잠시 바라보다, 다시 조심스레 수납장 안에 넣었다. 그 옆에는 낡은 사원증이 끼워져 있었다.


차도윤 팀장 / 패션브랜드팀 / D 그룹


그 이름표를 다시 들여다본 순간, 멀리서 들려오는 정심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스쳤다.


“도윤 씨는 말이야. 그때… 진짜 많이 망가져 있었지.”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도윤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 정말 다 치유된 걸까.’


며칠 뒤,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정심이 ‘더 슬로우’에 들어섰다.


“도윤 씨, 오늘은 일찍부터 문 열었네?”

“이따 재료가 와서요. 정리하려면 좀 걸릴 것 같아요.”


정심은 무표정한 얼굴로 조용히 앉았다가, 도윤을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그때, 도윤씨 다니던 그 사무실 앞까지 갔었거든.”


도윤의 손끝이 잠시 멈췄다.


“퇴직하고 혼자 사라졌을 때 말이야… 연락도 안 되고. 혹시 무슨 일 생긴 건 아닐까 싶어서.”

“…그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알아. 그런 시기엔 누구 말도 안 들려. 근데, 사람이 한계까지 가기 전에, 누군가 한 번만 손잡아 줬으면 달랐을 수도 있지.”


도윤은 커피를 내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심은 다시 창밖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이 가게를 연 거라면, 그 선택… 참 잘한 거야.”


도윤은 대답 대신, 정심의 커피잔에 마지막 한 방울을 천천히 부었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 시절 제 손을 아무도 잡아주지 않았으니까요. 이제는… 누군가의 손을 놓치지 않으려고요. 그리고, 사실 이 가게를 하면서 저 스스로 위로를 많이 받고 있어요. 좋은 손님들이 많아서 오히려 제가 힐링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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