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정심은 매주 수요일 오후가 되면 어김없이 ‘더 슬로우’에 들렀다. 가게 문이 열리는 소리에 도윤은 자연스레 고개를 들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연하게. 설탕은 반 스푼만.”
“예. 항상 드시던 대로요.”
“늘 똑같이 말해도, 매번 확인해 주는 게 사장의 예의지.”
정심은 자리로 가며 툭 내뱉었고, 도윤은 조용히 웃었다. 그녀는 창가 자리, 항상 앉는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 바깥을 바라봤다. 동네 주민들, 배달 오토바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 큰 변화없이 흘러가는 일상을 말없이 오래 바라보는 눈이었다.
잠시 후 도윤이 커피를 가져다 놓자, 정심이 컵을 잡으며 말했다.
“도윤 씨, 가게 처음 열었을 때 생각나네. 얼굴이 반쯤 내려앉아 있었지.”
“그랬었나요?” 도윤은 컵을 닦으며 조심스럽게 웃었다.
“사람이 무너진 얼굴이라는 게 있거든. 그때 도윤 씨가 딱 그랬어.”
정심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상하지. 무너진 사람은 표시가 나는 법인데, 도윤 씨는 조용했어. 그냥… 뭐랄까… 텅 빈 느낌이었어.”
도윤은 아무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커피잔의 온기만큼이나 그녀의 말도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
“그때 말이야. 도윤 씨 얼굴이… 인생 포기한 사람 같아서 내가 도윤 씨 걱정 많이 했다니까.”
“네… 알고 있었어요.”
정심은 살짝 눈을 가늘게 뜨며 도윤을 바라봤다.
“알고 있었어? 왜 말 안 했어?”
“그땐… 누구와도 얘기하기 싫었거든요. 그냥 다 놓아버리고 싶었어요.”
정심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사람이라는 게 참 희한해. 놓고 싶다 놓고 나면, 다시 붙잡고 싶은 게 생겨.”
그녀는 컵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람 하나 살린 셈이네, 이 커피숍이. 자기 자신부터.”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하네요.”
“괜한 말 아니야. 다음엔 샷 반만 넣고 줘. 나이 들수록 카페인에 민감해져.”
정심은 툭 내뱉고 가게 문을 밀며 나갔다. 문이 닫히는 순간, 도윤은 그녀가 남긴 자리의 컵을 조용히 바라봤다.
“말은 별로 없지만 늘 가장 먼저 내 표정을 알아챈 사람. 이 건물에서 커피숍을 시작한 건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