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지난회에 소개했던 학교 놀이터에서의 연습이 충분하다면 이제 실전의 장인 산으로 가 볼 차례입니다.
그런데 산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예기치 못 한 여러 위험한 상황을 맞닥뜨릴 수 있습니다. 때문에 안전하고 즐거운 취미생활을 위해서는 몇 가지 사항들을 숙지해야 합니다. 앞으로 소개할 안전수칙과 주의사항은 필자가 다년간 몸으로 때우고 시련을 겪으면서 체득한 사항에 금속탐지인들끼리 공유되는 정보를 덧붙였습니다.
약장수처럼 너무 뜸을 들이는 느낌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입니다. 엽전과 보물도 좋지만 사람의 안전보다 우선일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이번 이야기를 브런치북 4화에 넣었습니다.
1. 산행 경험이 없다면 혼자 산에 가는 건 가급적 피한다.
등산로를 따라 산에 가 본 경험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금속탐지는 그런 등산보다 심마니가 하는 등산에 더 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 감당하기 어려운 돌발 상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초보라면 동행인을 구해 산을 오르는 게 좋습니다.
2. 깊은 골짜기는 피한다.
골짜기에는 물이 흐르거나 이끼가 낀 돌과 바위가 많아 이동할 때 미끄러져 넘어지거나 다리가 끼는 등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119 부르면 되지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기가 어디입니까? 골짜기죠. 골짜기는 전파의 음영지대라서 휴대전화 신호가 전혀 잡히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혼자 산에 갔다가 부상을 당해 스스로 산을 내려올 수도 없고 전화도 안 되는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한 가지 생존팁을 드리자면 그런 경우 문자 메시지를 이용하면 통화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전달이 될 가능성이 조금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말이죠. 그런데 그마저도 안된다? 부디 다음 생에서는 혼자서 깊은 골짜기를 또 가지 않으시기를~
3. 능선으로 다닌다.
산은 능선길이 다니기도 편하고 전파도 잘 잡힙니다. 등고선으로 보았을 때 산의 정상에서 바깥쪽으로 볼록한 곡선이 능선이고 오목한 쪽이 골짜기죠. 옛날 사람들도 능선이 다니기 편했을 테니 왕래가 더 많았겠죠. 따라서 능선 쪽이 유물도 더 잘 나옵니다. 또한 등고선 간격이 좁으면 얼핏 지름길 같아 보여도 급경사이므로 그쪽으로 진행하지 않는 게 안전합니다. 만약 골짜기 같은데로 접어들어 휴대전화 신호가 약해질 경우 다시 능선 쪽으로 이동하면 신호가 세집니다.
4. 장화를 꼭 신는다.
산에는 뱀이 자주 출몰합니다. 특히 고지대에 사는 맹독사인 칠점사나 살모사가 많습니다. 만일을 위해 반드시 장화나 각반을 착용하세요. 그러면 안전합니다. 흔히 뱀 퇴치용으로 좋다는 백반 같은 것은 별로 쓸모가 없습니다. 특히 손으로 땅을 짚을 때 신경 써야 합니다. 만약 뱀에 물렸을 경우 입으로 빨아내거나 술로 소독하거나 끈으로 동여매거나 하는 것은 잘못된 상식입니다. 당장 안 죽습니다. 아니 안 죽습니다. 영화 킬빌에 나오는 블랙맘바 같은 그런 뱀이 아니니 침착하게 하산해서 병원에 가는 것이 최선입니다.
5. 장갑을 착용한다.
산에는 가시나무나 거친 돌이 많아 손을 다치기 십상입니다. 다소 번거로워도 항상 장갑을 착용하세요. 일반 면장갑은 가시가 그대로 뚫고 들어오니, 다이소 같은 데서 파는 고무코팅된 2~3천 원짜리 안전 장갑을 추천합니다.
6. 충분한 물과 비상식량을 챙긴다.
산에서는 금세 체력이 고갈될 수 있습니다. 더구나 땀을 많이 흘리므로 물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충분한 물이나 전해질 음료, 초콜릿이나 과자 등 고열량 간식을 챙겨가세요. 살이 찔 걱정은 잠시 잊으셔도 됩니다. 여기는 칼로리를 바닥까지 소모해 버리는 산이니까요.
7. 항상 주변을 주의한다.
산에는 가시나무나 부러진 가지, 혹은 덩굴이 많습니다. 생각 없이 다니다 보면 얼굴이나 눈을 찔리는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낙엽이 많이 쌓인 곳을 밟았다가 발이 쑥 빠지며 넘어지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필 넘어질 때 얼굴 쪽에 부러진 가지나 날카로운 돌이 있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하죠.
8. 길을 잃을 수 있다.
산에서는 특별한 이정표가 없습니다. 어떤 산은 등산인들이 나뭇가지에 리본을 달아 길을 안내하기도 하지만 모든 산이 그렇지는 않죠. 다니다 보면 산에 나무만 있는 풍경이 다 비슷비슷해 길을 잃기 쉽습니다. 등산인들은 이를 '알바'라고 하며 나름 전문가인 그들도 종종 겪는 일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좋아졌죠. 스마트폰에 램블러나 산길샘과 같은 등산앱을 깔고 위성지도까지 켜놓고 다니면 좋습니다. 등산앱은 자신이 다닌 경로가 지도에 표시되므로 되돌아갈 때 왔던 경로대로 따라가면 되므로 매우 유용합니다. 등산 시작 전에 앱을 켜세요.
9. 충분히 시간적 여유를 두고 하산한다.
산은 평지보다 일찍 그림자가 내려옵니다.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지기 시작하면 당황할 수 있습니다. 하산하는데 걸리는 이동시간까지 고려해 최소 30분~1시간 정도 일찍 서두르세요.
10. 자신의 체력을 고려해서 낮은 산이나 쉬운 등산로부터 시작한다.
생각보다 산행은 체력이 많이 소모됩니다. 처음부터 보물찾기 의욕이 넘쳐서 높이로 수백 미터 이상 올라가야 하는 산보다는, 경사가 가파르지 않은 낮은 산부터 시작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높은 산이라고 더 많은 보물이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거 사람들이 다니기 쉬웠던 만만한 산에 보물이 더 많습니다. 안전한 등산로를 이용해 험하지 않은 동네 산을 오르는 것부터 가볍게 시작하세요.
11. 가벼운 일회용 비옷과 손전등, 보조배터리를 챙긴다.
산은 날씨가 변덕을 부리는 곳입니다. 특히 여름이라도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맞고 옷이 젖으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질 수 있습니다. 계곡에서 물놀이하다 밖에 나와서 이가 딱딱거리는 것을 생각하면 어떤 느낌인지 이해하기 쉽죠. 또한 갑자기 어두워졌을 때 손전등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스마트폰 사용이 많을 수 있으므로 보조배터리는 필수입니다. 꼭 챙기세요.
12. 들개나 야생동물을 만날 수 있다.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라니를 비롯해 대부분의 동물은 사람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하지만 간혹 들개가 가까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여기서 당황해 뒤를 보이고 도망치면 따라와 물 수도 있습니다. 사냥하는 동물들이 가진 추격 본능 때문이죠. 가지고 있는 탐지기를 들어 들개를 당당히 막아서면 덤벼들지 못하고 가버립니다. 멧돼지의 경우도 대부분 인기척을 느끼면 도망칩니다. 갑자기 만났을 때가 조금 문제가 될 수 있는데 나름 방법이 있습니다. 걸을 때마다 소리 나는 스테인리스 컵이나 방울 등을 배낭에 매달아 "여기 사람 있다."라고 미리 알리는 것이죠.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틀어놓고 다니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13. 좁은 임도는 되도록 피한다.
산속 포인트를 찾아가다 보면 임도를 지나가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임도는 도로 폭이 매우 좁고, 간혹 비에 일부가 유실된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차를 돌리기 힘들 수도 있고, 유실된 곳에 차바퀴가 빠져 곤란해질 수 있습니다. 위성지도를 이용해 미리 임도를 파악하고, 차를 돌릴 만한 자리에 주차하고 걷는 것이 좋습니다.
14. 봄, 가을 산림청에서 고시한 입산금지 기간과 지역을 미리 확인하자.
이에 대해서는 산림청 홈페이지 'https://hiking.kworks.co.kr/sub_map/map_user01.aspx'를 참조해 입산이 불가능한 지역을 미리 확인해야 합니다. 걸리면 20만 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됩니다. 입산 금지기간이 아닌 경우면 상관이 없습니다.
15. 장뇌삼 재배지와 송이산을 주의해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장뇌삼과 송이에 대해 관심이 없다 해도 이와 같은 지역에 입산하게 되면 억울한 누명을 쓸 수 있습니다. 산을 오를 때 입산금지 경고 표지판을 확인해야 합니다. 어떤 곳은 마네킹을 주워다 산 이곳저곳에 목을 매달아 놓고 겁을 주는 곳도 있습니다.
16. 산나물을 함부로 채취하면 안 된다.
이 또한 사유 재산인 산나물 같은 것도 채취하면 안 됩니다. 국유림의 경우 함부로 채취하다 걸리면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집니다. 사람을 폭행해도 500만 원 이하 벌금에 그치는데 산나물 벌금액이 참 후덜덜합니다. 단속원을 때리고 도망가는 게 더 싸게 먹힌다는 걸 알려주려는 건가?
요즘은 항공 드론으로도 감시를 하므로 애시당초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17. 벌집을 주의해야 한다.
땅을 파다 보면 땅벌이나 장수말벌 집을 건드리는 경우가 드물지만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그런 경우 최대한 신속하게 현장을 벗어나면 됩니다. 벌은 벌집에서 일정거리를 넘어서면 더 이상 따라오지 않습니다. 땅에 엎드리면 벌이 쏘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소싯적에 그 말을 믿고 땅에 엎드렸다가 장수말벌 떼에 다구리를 당한 산증인의 믿을 만한 진술입니다.
18. 에프킬라, 진드기 기피제를 챙긴다.
산에는 모기나 진드기, 눈을 따라다니는 초파리 등 온갖 해충들이 있습니다. 특히 그중에 가장 위험한 건 흡혈을 하는 진드기인데 SFTS(중증 열성 혈소판감소 증후군)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러시안룰렛처럼 잘못 걸리면 약도 없고 치사율도 20%에 이를 정도로 꽤 높습니다. 때문에 기피제를 미리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면 안전합니다. 또한 산에 다녀온 후에는 옷은 반드시 세탁하고 샤워를 하면 더욱 안전합니다.
19. 옻나무를 주의해야 한다.
산에는 옻나무가 많습니다. 특히 꽃이 피는 5월~6월에는 그 위세가 더욱 커집니다. 옻나무 진액과 꽃에는 휘발성 강한 우루시올 성분이 있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이를 접촉하면 옻독이 올라 두드러기가 나고 적어도 몇 주간 고생할 수도 있습니다. 옻나무를 꺾지 않아야 하며, 특히 개화기에는 옻나무가 많은 산을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20. 폭발물을 탐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을 겪어 당시에 사용한 탄두와 탄피, 여러 무기들이 금속탐지에서 탐지됩니다. 필자도 수류탄을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만 흔히 겪는 일은 아닙니다. 그래도 박격포탄이나 수류탄 같은 폭발물은 조금 주의해야 합니다. 물론 오래되어 폭발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지만 충격을 주면 어떻게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어떤 탐지인은 그 자리에 다시 묻거나 사람의 발이 닫지 않는 낭떠러지 아래로 던져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서라도 신고를 해서 위험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국번 없이 1338 또는 경찰이나 인근 군부대에 신고하면 출동해서 수거해 갑니다. 다만 사용된 탄두나 탄피는 폭발할 가능성이 전무하여 안전합니다. 이를 소유하더라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지금까지의 주의 사항들을 보면 "산에서 그깟 금속탐지하는데 뭐 이리 까다롭고 위험한 게 많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최소한의 안전을 위한 팁이라고 생각해 주었으면 합니다. 시작부터 너무 겁나는 이야기를 한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면서 무리하지 않으면 안전하고 즐거운 취미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 다음은 정말로 산으로 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