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대 마이오세 두호층
포항의 두호층 해안 절벽을 따라 걷다 보면 비행접시를 연상케 하는 둥근 형태의 돌이 지층에 박혀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크기는 꽤 커서 2~3m쯤 되죠. 이를 결핵체(結核體, concreation) 혹은 단괴(團塊, nodule)라고 합니다. 퇴적물 입자 사이 공간에 광물이 침전하여 작은 핵이 형성되고 압력을 받아 단단하게 굳은 덩어리죠. 따라서 화석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결핵체를 연구하면 신생대 마이오세 시기, 퇴적작용과 퇴적물과 공극수의 조성 등을 알 수도 있기 때문에 고환경을 추정하는 지시자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결국 그 중요성을 인식했는지 늦은 감은 있지만 천연기념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다만 모든 결핵체가 천연기념물이 된 것은 아닙니다.
2019년 9월, 우현동 아파트 공사장에서 발견된 2점만 천연기념물 제587호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사진만 가지고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뒤에 보이는 콘센트나 배전반의 크기로 미루어 보면 거의 2~3m 정도일 거로 짐작됩니다.
이처럼 큰 결핵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이는 퇴적층이 바다에 잠겨있을 때, 이암이 고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바닷물에 잘 녹는 성질을 가진 탄산칼슘(CaCO₃)에서 빠져나온 칼슘 이온이 지층을 타고 흐르다 뼈나 조개껍데기 등에 달라붙어 핵을 만들고 점점 커지게 됩니다. 이런 미고결 상태가 오래 유지될수록 더욱 크게 성장하게 되는 것이죠. 그리고 압력을 받아 단단해집니다.
이후에 지층이 융기되어 바다 위로 나오게 된 다음엔 성장이 멈추거나 매우 느려지게 됩니다. 그래서 형성조건에 따라 결핵체의 크기나 모양이 제각각이죠. 비슷한 환경에서 만들어지므로 동일한 층준에서 만들어지는 경향성도 두드러집니다.
초반부터 설명이 길었네요. 이제 필드로 나가보겠습니다. 포항에서 이처럼 산을 깎아낸 지층을 잘 살펴보면 결핵체를 볼 수 있습니다. 밝은 이암 지층에 어둡게 드리워진 아파트의 그림자가 곧 이 지층의 운명이 곧 어떻게 될지를 말해주는 듯합니다.
꽤 높은 곳에도 결핵체가 보입니다.
눈대중으로 얼핏 보았을 때 1m쯤 되어 보였는데 동글 납작한 형태가 아닌 높이 솟은 모자를 연상케 하는 특이한 형태네요. 예쁜 정원이 있는 집이라면 조경석으로 하나쯤 놔두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결핵체는 지층 밖으로 오래 노출돼 풍화를 받다 보면 균열이 생기다가 스스로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이처럼 깨져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결핵체도 조금씩 풍화를 받아 깨지기 시작했네요.
영일대 부근 환호공원 앞 해안도로를 따라 두호층이 길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아니 있었습니다. 지금은 모습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여기에 반질반질 아주 잘생긴 결핵체가 노출되어 있었죠. 얼짱 결핵체라 할만합니다.
같은 층준에 있는 또 다른 결핵체입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칼슘이온이 같은 층준을 따라 흐르는 경향이 있으므로 비슷한 시기에 함께 나고 자란 형제 결핵체라 할 수 있겠네요.
2011년 카카오맵 로드뷰에도 이 결핵체가 보입니다. 이때가 참 좋았죠. 차도 별로 다니지 않았고, 길가에 주차하면 바로 화석산지였으니까요. 화석의 '화'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도 돌 몇 개만 들춰보면 화석을 막 찾을 수 있던 참 아름다운 시대(벨 에포크 : Belle Époque)였습니다. 생애 다시는 오지 않을 시대 같아서 눈시울이 찡해집니다. ㅠ
그런데 낙석이 자주 떨어지다 보니 포항시에서는 지층 앞에 철망을 치고 모르타르 타설도 해서 나름의 대비책을 세웠습니다. 그래도 얼짱 결핵체가 얼굴을 살짝 내보이고는 있습니다. 그나마 여기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요.
현재 모습입니다. 결핵체는 대체 어디 간 거니? 조금만 더 버텨주었으면 천연기념물이 되어 영생을 누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런데 이곳을 이렇게까지 과하게 정비를 하게 된 사연이 있습니다.
좀 더 과거로 가보겠습니다. 낙석이 점차 심해지자, 결국 도로의 한 차선에 철벽을 세우고 흙자루를 쌓아두었습니다.
큰 돌이 떨어지면 이처럼 철망을 종종 찢어놓기도 했죠.
근데 화석에 미친 팔레오는 겁도 없이 찢어진 철망을 넘어 들어가 화석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 와중에 동그란 결핵체 이쁜 거 보소.
반대쪽도 결핵체가 보입니다. 여기에 굴러다니는 돌에서는 어떤 화석들이 있었을까요?
예쁜 나뭇잎 화석도 많고~
단풍나뭇잎 화석도 있고~
물고기 화석도 있고~
하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화석이 아니고 결핵체이므로 여기서 나오는 화석 소개는 아쉽지만 줄이겠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인 일이 벌어졌죠. 포항 지진 때 지층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타이밍 잘못 맞았으면 화석 찾다가 찍 소리도 못 내고 그대로 묻힐 뻔했네요.
철망과 철기둥 따윈 무너져 내린 돌 앞에선 거미줄과 성냥개비나 다름없었습니다. 무시무시하네요. 그런데 이 상태로 꽤 오래 방치되어 있어서 오다가다 한 번씩 들러 화석을 찾는 꿀자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일을 방지하고자 이후에 지층을 크게 깎아내고 정비작업을 하게 된 것이죠. 그 과정에서 결핵체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것이구요.
천연기념물 결핵체가 나왔다는 우현동 아파트 공사장입니다. 결핵체가 꽤 많이 보이죠? 40cm에 가까운 망치를 보면 결핵체가 얼마나 큰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부분은 중장비로 작업하다 보니 심하게 깨져 있지만 개중에는 비교적 온전한 것들도 있었습니다.
아파트~ 아파트~ ♫ 아파트~ 아파트~ ♫
참... 징합니다.
이 친구들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이 친구들도 어디로 갔을까요?
단단한 결핵체도 퇴적된 이암이므로 화석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이처럼 깨져있는 걸 잘 살펴보면 뜻밖의 멋진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죠.
깨진 결핵체 속에 들어있던 큼지막한 이매패 화석입니다. 두호층의 여느 이암과는 달리 차돌처럼 단단하죠.
결핵체 속에 들어있던 쪼꼬미 가리비 화석입니다. 1cm 밖에 안 되는 어린 친구가 어쩌다가 꿈도 펼쳐보지 못하고...
결핵체라고 다 크고 비행접시 같은 원반형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아주 특이한 형태의 결핵체도 있죠. 우와 근데... 모양이... 해괴망측하네요. 이는 자연현상에 의한 것이므로 순진한 저는 아무런 잘못이 없음을 밝힙니다. 지난번 금속탐지에서 만난 남근석만큼이나 충격적이네요. 그때도 그랬지만 오늘도 저질 드립 본능은 자제하겠습니다.
50cm쯤 되는 중형 결핵체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이매패 화석이 꽤 많이 들어있습니다. 멋지네요.
이것도 참 특이한 결핵체입니다. 황철결정이 달라붙어 이리저리 움직여보면 햇빛에 반짝반짝거려 참 예쁩니다. 사진으로는 잘 표현이 안되네요.
동그란 결핵체가 쪼개져있길래 살펴보았더니 이번에도 쪼꼬미 가리비 화석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추정해 보면 결핵체가 되면서 가리비가 죽은 게 아니라, 이암에 묻혀있던 가리비 화석 주변에 결핵체가 서서히 형성되면서 거기에 포획되었다고 봄이 타당합니다.
마치 만화에 나오는 어떤 알처럼 생긴 결핵체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를 보고 공룡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공룡알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죠. 시대도 맞지 않고요. 고생물학자들이 제일 많이 받는 피곤한(?) 문의가 동그란 돌을 공룡알인지 봐달라고 하는 거라죠? 그렇게 들어온 의뢰 중 진짜 공룡알인 경우는 거의 제로입니다.
이것도 특이한 결이 있는 결핵체입니다. 위의 것과 비슷한 생성조건에서 만들어진 듯합니다. 다만 크기는 조금 더 크네요.
부드러운 곡선의 결핵체입니다. 아주 묵직하죠.
이건 결핵체 치고는 모양이 아주 특이합니다. 가운데 동그란 구멍까지 있고, 마치 아메바처럼 뻗어나가는 모양새네요. 어쩌면 수석가들 사이에선 귀한 수석으로 대접받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딱 봐도 동글동글한 것이 아주 모범적인 형태의 결핵체입니다. 지층이 바다에서 더 오래 머물렀더라면 크고 멋진 결핵체로 성장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 마음대로 꿈나무 잼민이 결핵체라고 명명했습니다.
환호공원 위로 더 올라가면 여남동 지층이 나옵니다. 그런데 여기도 지층을 깎아내고 계단을 만들면서 정비를 하고 있네요. 환호공원 쪽과 달리 여기서 깎인 지층에서 결핵체는 관찰되지 않았습니다. 역시 결핵체가 아무 데나 있는 흔한 것이 아니라는 걸 잘 보여줍니다.
도로 옆도 아니고 적어도 여기만큼은 자연 그대로 놔두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네요. 이곳 지층 건너편 앞바다의 자갈밭을 살펴보면 특이하고 예쁜 친구들이 있습니다.
바로 구멍 송송 돌, 이른바 불면 소리 나는 돌피리가 있죠.
본래는 이처럼 큰 돌에 천공성 패류가 구멍을 뚫고, 이후에 파도를 맞아 깨지고 구르고 또 구르면 마모되어 작고 동그란 형태의 돌피리가 되는 것이죠.
암질에 따라 단단하고 무른 것이 있습니다. 당연히 단단한 것이 여러모로 좋습니다.
빛나다온님의 브런치 https://brunch.co.kr/@narang7942da/181
빛나다온 작가님이 이곳을 산책하시면서 화석도 찾으시고 돌피리도 많이 찾으셨죠. 저는 돌피리 사진을 많이 찍지는 못했는데, 인어공주의 오카리나를 줍줍 하고 싶으신 분이나 감성 넘치는 탐사기를 보고 싶으신 분들은 꼭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시 환호공원 쪽으로 돌아왔습니다. 거기서 조금 아래인 두호동 방향으로 내려가면 으리으리하고 멋들어지게 지어놓은 영일대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명소죠. 그래서 이젠 두호동에서 여남동까지 예전과 달리 늘 사람들이 붐빕니다.
영일대 해변을 거닐며 발자국 화석을 발견합니다... 는 훼이크죠. 물갈퀴가 있는 새의 보행렬이 귀엽습니다만 모래밭에 찍힌 자국은 금세 사라질 테죠. 발자국이 화석이 되려면 어느 정도 살짝 건조된 진흙에 발자국이 찍힌 다음, 신속하게 완전 건조되어 단단해진 후 새로운 퇴적물이 쌓여 굳어야만 됩니다. 그리고 발자국 위에 쌓인 지층이 사라져야 드러나죠. 그 모든 조건이 딱 맞아 떨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발자국이 화석으로 남기가 참 어려운 것이죠.
여기까지 왔으니 영일대에도 한번 올라가 보아야겠지요?
멀리 환호공원과 여남동 쪽을 조망해 봅니다. 앞에 보이는 저 산이 1,300만 년 전에는 바닷속에 들어가 있었고, 많은 화석을 품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시기에 형성된 결핵체도 있다는 것, 그게 지금 눈에 보이진 않아도 제 마음의 눈에는 그게 보이는 듯합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그 너머엔 또 무엇이 있을지 너무 궁금합니다. 지질학적으로나 고생물학 쪽으로나 여러모로 포항은 참 신비로운 곳입니다.
화석과 결핵체를 만나며 눈맛과 손맛을 느끼고, 끝으로 맛난 전복 물회를 먹으며 입맛까지 살뜰히 챙기고는 오늘의 여정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