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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쇼 진품명품, 골동품을 감정받다

감정가 보여주세요!

by 팔레오

조금 오래전 이야기다.


2015년, TV쇼 진품명품 출장감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집에 있던 여러 고서 중 몇 권을 챙겨 들고나갔다.


왜 하필 책을 들고나갔냐면 도자기나 오래된 동전 같은 물건들도 있긴 했지만, 혹시 모를 파손이나 분실 우려가 있어 보여 상대적으로 책이 안전(?)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으며 미적 가치가 돋보여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그림에 비해, 고서 같은 건 대부분 한자로 되어있어 감상(?) 하기 어려운 데다 겉으로 드러나는 미적 가치 같은 것이 거의 전무하기 때문에, 그 가치에 비해 사람들의 관심을 좀 덜 받는 억울한 부분이 있기도 하다.



의뢰인들이 가져온 여러 골동품들이 테이블에 깔리고 방송 스텝들이 분주하게 녹화 준비를 하고 있다.



도자기를 알아보는 안목은 별로 없다. 하지만 몇몇 물건은 문외한인 내가 보기에도 조잡하거나, 현대에 만들어진 가품 같아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도자기를 살펴보던 한 감정위원이 "거의 다 가짜네..."라고 작게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가짜가 훨씬 많았던 모양이다.



여러 책과 두루마리 가운데 오른쪽에 쌓여있는 4권의 책이 내가 의뢰한 물건이다.


청나라 때 발간된 역법서, 두시언해 중간본 제1권, 순종국장록이며 나머지 하나는... 홍만선의 산림경제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래전이라 불분명하다.



감정위원이 내가 의뢰한 두시언해 서문 부분을 살펴보고 있다.



시성(詩聖)으로 불리는 당나라의 유명한 시인 두보(杜甫)의 시와 그 해석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 두시언해(杜詩諺解)다. 본래의 명칭은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로 한글이 창제된 1443년 세종 때 집필이 시작되어 1481년 성종 때 간행되었다.


초간본은 모두 25권인데 안타깝게도 임진왜란을 거치며 1∼4권, 11∼14권은 사라져 현전 하지 않는다. 현재 남아있는 초간본은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105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후 1632년인 인조 때 중간본이 다시 나오게 되었는데 150여 년의 시간차를 두고 쓰인 동일한 내용의 책이다 보니 그 간의 한글 변화 과정을 확인할 수 있어 국문학 연구에 가치가 높은 책이다.



400년 전 한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전기 국어에 사용된 ㆆ(여린히읗), ㆁ(옛이응), ㅿ(반치음)이 사라지고 ㆍ(아래아)만 남았다.



그런데 다른 책 보다 내 책을 오랫동안 살펴보고 있다.


이 많은 물건들 중에 3~4건 정도 방송용으로 선정이 되면 TV에서 본 바와 같이 의뢰인은 카메라 앞에 서게 된다. 그런데 솔직히 물건의 정확한 가치가 궁금해 의뢰하긴 했지만, 만약 선정이 돼서 전 국민이 보는 TV에 나오는 건 생각할수록 너무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제발 뽑히지 않았으면 하고 속으로 빌었다.



이 분은 고서 전문 김영복 감정위원이다. TV에서 보던 분을 바로 앞에서 직접 눈으로 보니 신기했다.



오른쪽에 있는 분은 도자기 전문인 이상문 감정위원으로 역시 매우 친숙한 얼굴이다.



민속품 전문 양의숙 감정위원, 회화 전문 진동만 감정위원 역시 친숙한 얼굴이라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졌다.



개그맨 김종국씨의 우렁찬 인사를 시작으로 녹화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박수 소리와 환호가 약하다고 NG가 선언되었다. 이 과정을 무려 4~5번이나 반복했다. 허허~



선정된 의뢰인이 카메라 앞에 서서 소유하게 된 경유나 예상 가격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날 마지막 의뢰품은 '1913년 배재학당 교육강습회 수업증서'였다. "일제시대의 아픔이 서려있는~ 그래서 의미 있는~ 금전적 가치는 크지 않지만~ 집안의 보물~" 이런 평가를 내렸던 걸로 기억한다.



녹화가 끝났지만 감정위원들이 바로 가지 않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상문 감정위원과 기념사진 한방~


이때는 역류성식도염 때문에 체중이 쭉쭉 빠져 어좁이가 되어 있었구나...


이분은 유튜브에서 도자기 감정하는 채널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열심히 시청하다 보면 초보자라도 도자기에 대한 안목을 크게 높일 수 있다.



김영복 감정위원과도 기념사진 한방~



이날 내가 가져온 순종국장록은 몇십 만 원, 나머지는 각각 100~200만 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것만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최고의 전문가에게 구체적 가치를 인증받아 마음이 제법 뿌듯했다. 그러나 이날 가장 좋았던 건 TV카메라 앞에 서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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