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 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쉽게 흐르지 말고
쉽게 꽃피지 말고
그러므로
실눈으로 볼 것
떠나고 싶은 자
홀로 떠나는 모습을
잠들고 싶은 자
홀로 잠드는 모습을
가장 큰 하늘은 언제나
그대 등 뒤에 있다
ㅡ 강은교 시인, '사랑법'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랑 시.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운 작품인데, 시의 전반적인 기조도 정서도 세계관도 마음 깊이 박혀버려서 수도 없이 읽고 외워버렸다.
예쁜 편지지에 이 시를 손으로 한 자 한 자 적어 좋아하는 선생님께 건넸던 기억도 난다.
이 시에서는 사랑을 강요하지도, 구걸하지도, 심지어 표현하거나 전하지조차 않는다. 상대의 오래전 굳어버린 날개일지라도 그저 바라봐 주고, 침묵해 주고, 편히 잠들 수 있게, 그리고 심지어는 떠나게 해 준다. 다만 그 등 뒤에 큰 하늘로 있어 줄 따름이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사랑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소유하거나 통제하고 싶어지곤 한다. 혹은 내가 그 대상이 되거나. 때로는 그런 인간적인 욕망이 정작 사랑의 본질을 망쳐버릴 때가 있다. 힘을 빼고 상대를 하나의 풍경으로 대하면서 나 역시 그의 풍경이 되어주는 것. 서로 관조하고 병렬하며 존재하는 것이, 사랑의 가장 이상적이고 숭고한 형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