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적 마비의 굴레
내가 아주 어린 시절, 사업에 여러 번 실패한 아빠는 술독에 빠져 살았다. 술에 취한 채로 어린 나를 차에 태우고 운전을 하기도 했다. 술에 취한 아빠의 모습이 맨정신인 아빠의 모습보다 더 익숙했고, 어떤 모습이건 아빠는 나에게 항상 다정했다. 아빠 품에 안기면 아득한 담배 냄새가 났고, 그 냄새가 아빠 고유의 체취처럼 느껴져서,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담배 냄새를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
특전사 출신인 아빠는 키도 크고 몸도 좋았고 잘생겼다. 어린 나는 왜 아빠가 엄마랑 결혼했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남동생보다 나를 더 예뻐해서, 나를 공주라고 불러서, 그래서 아빠를 더 멋지게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는 잘 몰랐다. 아빠가 왜 항상 술에 취해있는지. 왜 한숨 같은 긴 연기를 뿜어내는지. 아빠는 나를 사랑했지만, 가장으로서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했다. 나는 아빠를 닮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아빠를 떠났다. 아빠도 결국 술 때문에 일찍 세상을 떠났다. 아빠는 내가 자랑스럽다고 했다.
이제는 내가 술을 마신다. 누군가는 술이 가져다주는 어떤 텐션, 용기, 흥분을 추구하며 마시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의 경우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서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번민을 누르기 위해, 후회를 흐리기 위해, 불안을 회피하기 위해 알코올의 도움을 받아 마비되어 잠들곤 했다. 다음날 숙취로 하루를 시작하면 자괴감이 밀려들면서도, 일과를 마치고 밤이 되면 다시 술을 찾는 내 모습을 본다. 왜 매일 아빠가 술을 마셨는지 알게 됐다. 나약하고 한심한 스스로가 미우면서도, 어깨 가득한 현실의 무게를 그 순간이라도 마비시키고 싶은 거였다.
아빠와 다른 점이 있다면 나는 겉으로 그럭저럭 멀쩡히 기능해 보인다는 거다. 번듯한 직장에 아무렇지 않게 출근하고, 사람들과 소통하고, 동물을 돌보고, 식물을 키우고, 발레를 하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빼곡하게 채우려 애쓰지만 어쩔 수 없이 파고드는 삶의 공허에 술을 채우지 않아도 될 날이, 언젠가 나에게 찾아와 주었으면 한다.
은 알코홀릭(alcoholic)의 슬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