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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사 사건 발생 보고

죽음의 존엄에 관한 단상

by Ubermensch








직업상 종종 변사사건을 접할 일이 있다.

장례식장이나 매체에서 마주치는 죽음은 엄숙하고 품위 있고 정중하며 어떤 면에서는 우아하게 보이기까지 다. 비록 망자의 삶이 그리 숭고하지 않았고 심지어 엉망이었을지라도, 그 삶이 종결되는 마지막 순간만큼은 남은 자들의 예우와 슬픔으로 미화되는 까닭이다.


변사란 당장의 사인이 명확하지 않아 어떤 범죄의 가능성이 있는 죽음을 뜻한다. 꼭 범죄 피해를 당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 생각보다 많은 평범한 죽음들도 사건이 되어 송치되곤 한다. 시체가 발견될 당시 추정되기로 자살, 병사, 사고사가 주로 그렇다. 죽음을 목격해 준 이가 없는, 그래서 사인을 명확하게 밝혀주지 못하는, 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 사람들이 변사의 대상이 되곤 한다. 고독사가 사회 문제로 떠오르는 요즘이므로, 이 세상 곳곳에서 변사체는 쌓여갈 것이다.


변사사건 기록을 보면 썩 기분이 좋지 않다. 단순히 시체의 사진이 펼쳐져 있고 한 사람의 죽음의 정황이 기록되어서가 아니라, 의외로 아무런 존엄이 없기 때문이다. 사인을 밝혀야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옷을 다 벗긴 나체 사진이 잔뜩 실려 있다. 시체의 눈꺼풀을 이리저리 뒤집고 입을 벌려 사진을 찍고, 죽고 난 뒤 흘러나온 배설물에 구더기가 들끓어 있기도 하며, 경직이 발생한 이후 시체를 이리저리 움직여 사진을 찍다 보면 팔다리 모양이 우스꽝스럽게 굳어져서, 한때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사람이었던 존재였을 순간이 무색할 만큼 처참한 형태로 보인다. 목을 매 자살한 젊은 여자의 변사기록에는 자살 당시 착용하고 있던 팬티라이너의 분비물까지 촬영되어 있다. 가장 사적이고 수치스러운 부분까지 죽음 앞에서는 낱낱이 드러난다. 단언컨대 그곳에 인간의 존엄은 없다.


이 불공평하고 모순이 가득한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죽음의 순간에서야 비로소 비참한 평등을 맞이한다고 봐야 하는 걸까.


결론적으론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 과정은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전두환처럼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도 죽음이 아주 느리게 찾아와서 구순까지 평안한 삶을 지독하게 누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십 대 소년공이 치열하게 일만 하다 공장 기계에 끼어 짧은 생을 비참하게 마감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행복과 불행의 총량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고, 이 고통을 견디고 난 이후에는 꼭 그만큼의 좋은 일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던 시절도 있었다. 그게 맞는지 어떤지는 죽음의 순간 각각의 무게를 재어봐야 알 일이다.


결론


내 마지막 순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 싶다면, 꼭 사인이 명확하게 죽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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