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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발레 이야기

유연성이 필요해

by Ubermensch





른 살이 넘어서 발레(ballet)를 접했다. 발레는 진입장벽이 낮지 않지만 최근 꽤나 대중화되어서 취미로 배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요가는 유연성 위주의 정적인 운동이고, 필라테스는 기술적 교정 중심의 운동이고, 춤이 음악에 맞춘 흥겨운 움직임이라면, 발레는 셋의 장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종합 예술이라 볼 수 있다.


성장이 멈추고 어른이 되면 뼈와 근육은 세월의 견고함에 비례하여 굳어지고, 그것을 다시 풀어내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수 십 년간 몸에 밴 습관을 버리는 것은 아주 어렵다. 발레는 아주 느리게, 고통스럽게, 그렇지만 아름답게, 살아오며 굳어진 몸과 마음을 풀어내어 재정렬해 준다.


어른이 된 우리는 경직되어 살아간다. 세상의 기준과 속도에 맞추기 위해,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앞서가기 위해, 여유로워 보이려 애쓰면서도 속은 잔뜩 긴장해 있다. 그러다 보면 굳어진다. 어린아이들은 굳이 스트레칭 훈련을 하지 않아도 유연하다. 몸도 사고도 유연하다. 나이가 들수록 경직된다. 표정도 굳는다. 웃음에서 해맑음이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잃어버린 유연성을 다시 찾아올 필요가 있다.


처음 발레 수업에 들어가면 매트에서 몸을 풀고 스트레칭부터 시작한다. 단단하게 수축되고 경직된 근육은 한순간에 이완되지 않는다. 긴 시간과 인내심을 들여서 몸에 힘을 빼고 조금씩 조금씩 각도를 늘려야 한다. 발레는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지 않는다. 급하게 욕심을 부리면 부상을 당한다. 천천히 호흡을 해서 숨을 불어넣고, 정확한 자세로 꾸준히 시간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시간이 필요하다. 근육이 늘어나고 뼈가 조금씩 새로 정렬될 수 있도록.


귓가에 흐르는 클래식 음악은 차분하고 서정적이다. 몸선을 타고 흐르는 레오타드와 하늘하늘한 시폰 스커트, 흰 타이즈와 살구색 발레 슈즈는 우아하다. 음악에 맞춰 사뿐사뿐 춤추는 것처럼 보이지만 발레의 매 순간은 고통을 견뎌내는 과정이고, 발레의 아름다움은 그로부터 비롯된다. 고통에서 만들어지는 특유의 찬란함이 있다. 발끝으로 서서 한 발로 균형을 잡고 무너지지 않기 위해 몸의 축을 꼿꼿이 세우려고 온 정신을 집중하다 보면, 어지러운 상념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한다. 등줄기에 흘러내리는 땀은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신체가 여전히 제기능을 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조금만 더 유연했더라면 망치지 않았을 관계와 상황이 아쉬워진다. 잘못된 습관으로 굳어진 근육처럼, 사고도 아집이나 고집으로 경직되어 있던 게 아닐까. 그 곳에도 숨을 불어넣고 스트레칭을 시켜줄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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