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고 기묘한 회사의 밤
어제 회사 근처에서 발레레슨을 마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 사무실 구성원들의 특이사항은 절대 야근을 안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18시 이후 우리 사무실은 온전한 나 혼자만의 공간이 된다. 내가 524호를 사랑하는 또 다른 이유다. 물론 옆 525호에서는 늦은 밤이고 주말이고 연휴고 내 등 뒤 벽에서는 사부작사부작 기록 넘기는 소리와 함께 우리 부장님의 인기척이 들려온다. 정규 근무시간에는 하루에도 수십 번 부장님이 찾아오시지만, 그 외의 시간에는 부장님도 나도 서로의 인기척을 인지하면서도 굳이 찾아가 인사를 나누거나 하지는 않았다. 각자의 시간과 거리를 존중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 부장님은 언제부턴가 서로 간의 암묵적인 그 규칙을 깨고 밤이든 주말이든 연휴든 개의치 않고 나를 찾아오셨다. 여주즙이라든지, 귤이라든지 간식을 나누어 주시기도 하고, 이리 와보라며 나를 부장님의 자리로 데리고 가서 손수 제작하신 형법 동영상 같은 것을 보여주기 시작하셨다. 이런 식으로 우리의 경계가 허물어져 가게 된 것이다.
엄마가 말끔히 청소해 주고 갔던 게 그리 오래 전이 아님에도 우리 집은 왜인지 또 거대한 쓰레기 폭탄을 맞게 되었다. 날파리도 앵앵 날아다니고 바닥에 발 디딜 빈 공간이 점점 좁아졌다. 우리 집의 재난상황 사진을 본 앞자리 계장님은 내게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특수청소부 이야기가 나오는 책을 권해주셔서 요즘 읽고 있다. 나는 집에 가기 싫어졌다. 그래서 어젯밤은 회사에서 잠을 자기로 마음먹었다. 내 야근은 언제나 부장님이 함께하지만, 어제는 부장님이 모처럼 가족과의 일정으로 연가를 쓰셨기 때문에 내 등뒤로난 벽에서 새어 나오는 인기척조차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온전한 나만의 시공간을, 그리고 쾌적한, 가질 수 있어서 신이 났다. 책도 읽고 영상도 보고 글도 쓰고 음식도 시켜 먹고 뽀시락거리다 보니 새벽 3시가 됐다. 즉흥적 외박 결정이라 복용 중인 약도 챙기지 못했다. 우리 회사 여자 휴게실 침대 중 가장 선호하는 안쪽 구석 첫 번째 침대에 누웠다. 회사에서 잠을 자는 날에는 꼭 생생한 꿈을 꾼다. 간밤에도 그랬다.
매일 안고 자는 인형이 없어서인지, 약기운이 없어서인지 명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회사에서 잠들면 꼭 이상한 꿈을 꾼다. 그리고 깨어나도 생생히 기억이 난다. 나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내가 운전을 하고 있는데 동시에 내가 운전하는 차가 달리는 모습을 뒤에서 볼 수 있었다. 나는 직선으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운전을 하는데 그 외부에서 관찰하는 내 차는 중앙선을 침범하며 이리저리 휘청이고 있었다. 오른쪽 앞바퀴의 공기압이 떨어져서 그렇다. 경고등이 떴는데 귀찮아서 방치중이다. 이건 현실에서도 그렇다. 하향등이 나갔다는 경고등도 몇 달째 떠 있다. 꿈속 목적지가 없는 여행에서 나는 중간중간 숙소에 머물렀다. 세 명의 남자도 등장했다. 그 남자들은 나를 욕망했다. 고양이들도 나왔다. 어린 시절의 내 동생도 나왔다.
일상에서 자주 그렇듯 꿈에서조차 나는 유리병을 놓쳐 깨트렸고 유리 파편이 곳곳에 튀었다. 자잘한 유리조각을 밟아 다쳤다. 여정 중에서도 왜인지 발레 레슨을 받았다. 유리조각이 박힌 채 발끝으로 서려니 통증이 느껴지고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계속 동작을 이어갔다. 꿈속의 기온은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운전을 하던 중 발견한 넓게 펼쳐진 공원 입구에 주차했다. 풍경을 즐기진 못했다. 공원에 있는 사람들은 각각의 단위로 즐거워 보였다. 나는 슬프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공원 안쪽에 있는 카페에 들러 고양이용 쿠키도 사고, 크로플도 하나 사 먹었는데 맛있어서 하나를 더 포장했다. 사장님은 친절했다. 동행 여부는 기억이 흐릿하다. 나와 함께 있던 존재가 사람인지, 고양이였는지, 혼자였는지 모르겠다.
점심 즈음까지 늦잠을 자고 대충 세수를 하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왔다. 오늘은 주말인데도 등 뒤에서 다시 부장님의 기척이 들린다. 내 등뒤로 난 문을 열고 오셔서 막 짬뽕을 먹으려던 내게 사건 기록의 행방을 찾으시려다 일단 짬뽕부터 먹으라고 하셨다. 부장님은 주말에 꼭 상의는 와이셔츠 하의는 운동복을 입고 오신다. 상하의를 통일하시면 어떻겠냐고 굳이 말하진 않는다. 부장님의 허술한 차림이 왜인지 친근하기도 하고. 오늘은 수능이 끝난 따님을 데려오셨다. 그 애는 우리 부장님과 나와 같은 가문 같은 파 나와 같은 42대손 동생이다. 서로 부끄러워서 인사는 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