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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 꿈 2

보고 싶은 사람

by Ubermensch






쓰레기집에 살게 된 지 몇 주가 됐다. 오늘 큰 마음을 먹고 집안일을 시작해 보려고 고무장갑을 끼고 1시간가량 뭔가를 하긴 했는데 집의 사정은 크게 나아진 바 없다. 나는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집안일에 어떠한 흥미도 적성도 없다는 사실에 대하여. 그저께는 쓰레기집을 마주하기 싫어 회사에서 외박을 하고 어제는 고양이들 밥을 챙기고 똥을 치우기 위해 꾸역꾸역 집에 왔다. 정말 오기 싫었다. 쓰레기장 한가운데에서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술을 마시며 당장의 가혹한 현실로부터 도피했다. 늦은 새벽이 되어서야 옷 산맥으로 인해 빈 공간이 없는 바닥을 즈려밟고 침대로 뛰어들어 인형을 안고 잠을 청했다. 계속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 생각을 하며 잠을 잤더니 꿈에 나왔다. 처음이다.


꿈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 꿈의 기온은 춥지도 덥지도 않았다. 많이 보고 싶었는데 만날 수 없던 사람을 오랜만에 볼 수 있어서 너무 기뻤지만 표현하진 못하고 꾹 참았다. 어젯밤 꿈속에서도 나는 큰 사고를 쳤다. 몇 년 전 현실에서도 전열기를 안 끄고 가서 회사에 불을 낼 뻔한 적이 있었는데, 간밤 꿈에는 라면을 끓여놓고 외출을 했다가 살고 있던 아파트에 불이 났다. 사람들도 다쳤고 복구작업에 4천만 원 이상이 든다고 했다. 내게 구상권을 청구한다고 했다. 그 와중에 불이 난 원인이 나라는 사실에 대해 내가 죄책감을 느낄 것을 걱정한 아파트 주민들은 내게 그 사실을 숨기려고 했다. 결국 화재 원인에 대해 알게 되긴 했지만 입주민들의 배려에 마음이 따뜻했다.


4천만 원을 물어줄 상황에 대한 걱정은 일단 뒤로 하고 술자리에 나갔다. 보고 싶은 사람이 나온다고 해서였다. 정말 오랜만에 봤다. 그럴 사이가 아닌데도, 술기운 때문인지 그 사람은 내게 어깨동무를 했다. 그 무게감 있는 팔이 느닷없이 내 어깨에 둘러졌을 때, 나는 마침내 소리 내어 말했다. 무서운 놀이기구를 탔을 때 안전바 같은 느낌이 든다고. 그러면서 무서운 놀이기구를 탔을 때 떨어지지 않으려고 안전바를 꼭 붙드는 것처럼 그 팔을 꼭 붙들었다. 너무 보고 싶었어서. 꿈속의 기온은 덥지도 춥지도 않았지만 내게 둘러진 팔의 온기는 확실히 뜨겁게 느껴졌다. 체온이 뜨거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보고 싶은 사람이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내가 남긴 아이스크림을 대신 먹어줬다. 얼굴이 안 좋아 보여서 이유를 물었다. 컨디션이 안 좋다고 했다. 이 장소에 오기 전, 몸이 아파서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너무 보고 싶었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땐 여전히 나는 쓰레기집 안에, 옷 산맥 속 흰 침대 위에 인형을 안고 있었다. 침대 밖으로 나가기 싫어서 일부러 더 잤다. 보고 싶은 사람이 나왔던 꿈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다.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삶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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