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레기집에 사는 이유
독립 후 5평 원룸에서 시작해 지금은 18평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셋집 구하기가 쉽지 않아 경기 지역의 구축 아파트를 40년 만기 상환방식의 주담대를 받아 매매해서 리모델링했다. 구조물의 각종 인치에서부터 재질, 색감, 조명, 구조 전부 다 내가 정한, 마음에 쏙 드는 화이트-딥블루톤의 인테리어다. 중문은 돔 모양으로 아기자기하고, 바닥은 흰 대리석 느낌을 준다. 가끔 놀러 오는 손님들은 감탄을 한다. 물론 누구를 초대할 땐 청소를 마친 후다. 하지만 이렇게 예쁜 집의 컨디션은 연중 70퍼센트 정도 쓰레기장 상태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나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을 떠돈다. 회사, 발레학원, 다시 회사. 사실 떠돌 수 있는 장소가 많지도 않다. 내 좁다란 활동반경은 집과 회사와 발레학원이 전부이니까.
물론 3시간의 통근시간과, 주 5일 80분 이상의 발레레슨과, 야근을 마치면 집에 도착하는 시간 자체가 늦다. 거기에 배달음식을 시켜 혼자만의 술자리까지 가지면 집안일이 쌓이고 만다. 고양이들도 나도 집을 어지른다. 서로 뭘 자꾸 엎지르고 깨트린다. 배달음식 용기도 매일 쌓이고, 음식물 쓰레기도 제때 처리하지 않아서 벌레가 꼬인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감도 잔뜩 쌓인다. 라면을 끓여 먹고 싶어도 깨끗한 냄비가 없어서 배달앱을 켜 짬뽕을 시켜 먹을 수밖에 없다. 치우는 속도보다 어지르는 속도가 급격히 빠르다. 나는 깔끔한 환경을 좋아하고, 어지러운 환경이 결코 편안하지 않지만 선뜻 치우지 못하겠다.
내 친구 챗 지피티에게 내가 쓰레기집에 살게 되는 이유에 대해 물어봤다. 그건 게으름이나 무능력의 증거가 아니라 내가 나를 돌보는 기능이 일시적으로 멈춰있다는 기록이라고 한다. 내 뇌는 질서와 정리와 조직화를 원하면서도 실행하는 에너지 시스템이 불안정해서 그렇다고. 방이 엉망이 되면 불안이 올라가고, 그걸 직면하지 못해 회피하고, 회피하는 동안 환경은 더 엉망이 되고, 엉망인 환경은 다시 나를 압박하는 루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정리 행위 자체가 나에겐 단순 행동이 아니라 프로젝트 의미로 다가와서, 치워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모든 물건의 의미와 기억과 감정이 활성화되며, 청소가 물리적 작업이 아닌 정서적 감당으로 와닿아 행동 전에 과부하가 먼저 온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람의 1단계가 나에겐 8단계라고 했다. 내 혼란은 어지러운 바닥으로, 미뤄둔 감정은 물건으로 쌓이고, 에너지 고갈은 멈춘 행동으로. 그걸 본능적으로 아는 나는 그 쓰레기장을 못 본 척하지도, 정돈하지도, 그 상태를 견디지도 못한 채 술로 도피해 버린다는 것이다.
우울한 사람이 잘 씻지 않거나 집을 방치한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나는 내가 특별히 우울하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불안하다고 느끼지도 않는다. 잘 씻고 다니기는 한다. 하지만 우리 집 상태가 내 어지러운 심리상태를 보여준다고 한다. 복잡한 설명은 핑계고 어쩌면 단순히 내가 타고나기를 게으르거나 정리정돈에 영 소질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이번 주말에는 우리 집의 말끔한 흰 바닥을 보게 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