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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저씨들

"네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지 알아. 네가 나쁜 짓을 해도 알아."

by Ubermensch






만약 세상에 기구한 사람 선발대회라는 게 있다면 나는 수상할 자신이 있다. 뭐 지금 당장 현재 내 모습을 겉으로만 가볍게 아는 사람들은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나와 함께한 친구는, 네가 지금까지 미쳐버리거나 극단적 선택을 하지 않고 이렇게 비교적 정상적으로 성장해 줘서 고맙다고 할 정도이니까, 그런 말을 할 정도의 자격이 있는 삶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겠다.


내가 그럭저럭 멀쩡해 보이게, 사회적 기준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내 인생을 거쳐 간 여러 아저씨들 덕분이다. 아빠가 없이 자란 탓에 나도 모르게 몸에 밴 어떤 결핍의 냄새라도 있는 건지, 아니면 깡 마른 체구 때문인지, 늘 칠칠맞고 덤벙거려서 자꾸 주변에 이런저런 사건 사고가 끊임이 없었던 탓인지 모르겠지만 내 곁에는 항상 나를 살피고 보호해 주던 아저씨들이 있었다.


어릴 때는 학교에서, 이후에는 사회에서 만났다. 그들은 내가 십 대 때에는 선생님의 모습이다가, 성인이 되고 나서는 주로 차이가 좀 있는 선배, 상급자의 모습으로 내게 와주었다. 나에게 접근하는 보편적인 이성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나에게 베푸는 호의가 단순한 이성적 호감, 어떤 욕망에 근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성애 비슷한 보호본능에 가까웠고, 그게 좋았다.


내가 부당한 일을 당하면 왜 아무 말도 못 하냐며 대신 화를 내며 나서주던 아저씨가 있었다. 출장을 나갈 때마다 간식거리를 사다가 무심히 내 책상 위에 올려놓던 아저씨도 있었다. 내 남자친구를 불러다 술을 사주며 예쁜 애들은 원래 싸가지가 없으니, 네가 좀 참고 잘해줘라. 훈수를 두던 아저씨도 있었다. 나를 사람들에게 막 자랑하고, 내 불행에 나보다 더 아파하고, 나를 조금이라도 더 웃게 해 주려던 아저씨들의 따뜻한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게 저며온다.


아저씨들은 나를 고쳐주고 싶어 했다. 좀 더 사람들과 어울리라고 했고, 내가 주로 하는 방식으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말라고 했고, 더 자주 웃었으면 했고, 좀 더 남들과 비슷하게 평범하게 살아가기를 바랐다. 모난 내가 세상으로부터 받는 오해와 폭력에 대해 속상해했다. 그리고 나에게 짜증과 화도 많이 냈다. 나도 그들에게 짜증과 화를 많이 냈다.


내가 한 가지 간과했던 부분이 있다. 그들도 각자 삶의 무게를 어깨에 지고 있다는 거였다. 내가 보기에 커다랗고 듬직한 키다리 아저씨 같다고 해서, 그들 스스로가 아무 흔들림 없는 단단한 바위 같은 존재는 아니었다. 그저 내게 스스로의 약한 부분을 크게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었을 뿐. 딱한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고 싶었을 테니까.


이제 나는 안다. 내 인생의 굴곡진 시절을 함께 해준 아저씨들도 한 때 꿈꾸는 소년이었고, 지금은 책임이 많은 가장이며, 내가 모를 각자의 짐을 지고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여전히 고유의 삶을 방황하며 걷는 중인 존재라는 걸.


"살면서 누가 나를 알아봐 준다는 게 얼마나 큰 일인지 알아요?"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이지안이 한 말이다. 지안과 동훈은 서로의 존재를 알아봐 주었다. 단순히 너 불쌍하다, 안됐다, 하는 식의 값싼 동정이 아니다. 인간적이고 본질적인 방식이다. 뻔한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라 팍팍한 삶을 견뎌온 사람과 사람 간의 유대가, '알아봐 준다'는 말속에 묵직하게 녹아 있다.







저를 알아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도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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