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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거짓을 말할까

법정에서 선서를 하고도 위증하는 이유

by Ubermensch







"본인은 법정에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사실 그대로 말하고, 만일 거짓말이 있으면 위증의 벌을 받기로 맹세합니다."




형사재판에 출석한 증인은, 법정증언 전 손을 들고 위 선서문을 낭독해야 한다.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은 재판을 받을 일도, 증인으로 나설 일도 딱히 없기 때문에,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이 국민의 법적 의무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직업인으로서 내가 증인 채택이 된 사람에게 연락을 하면, '사건 당사자도 아닌 내가 왜 부담스럽게 재판에 나가야 하냐'는 저항에 부딪힐 때가 자주 있다.


법정의 무거운 공기는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상당한 위압감이 있어서 기본적으로 사람을 위축되게 만든다. 대부분의 선량한 증인들이 쭈뼛쭈뼛 호명되어 나와, 긴장된 목소리로 선서를 하는 순간까지만 해도 그들이 허위 증언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 적응하면 검사에게 대드는 증인, 오열하는 증인, 피고인과 실랑이를 벌이는 증인 등 각양각색의 증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실제 법정의 현실은 위증 파티다. 그런고로 일감이 쑥쑥 는다.


공범 지위의 증인은 서로의 죄를 감추기 위해, 참고인 지위의 증인은 친분관계에 의해, 피해자 지위의 증인은 피해의 정도를 과장하거나 피고인에 대한 악감정에 의해 위증을 한다. 본인의 마음속을 누가 들여다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첫 등장의 긴장한 모습과 달리 술술 거짓말을 한다. 물론 선서대로 양심에 따라 숨김과 보탬이 없이 본인이 기억하는 사실 그대로만을 말하는 사람도 분명 많다.


사람은 왜 거짓말을 할까. 아마 사람만 거짓말을 할 것이다. 설령 우리 집 고양이들이 거짓말을 할 수 있다 쳐도 야옹 소리에 숨겨진 거짓을 알아듣지 못해서 그렇게 단정짓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프로이트의 방어기제 개념으로 보면, 거짓말은 현실을 곧이곧대로 마주하기 힘들 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회피 전략이라고 한다. 부정이나 합리화를 외부로 표현하는 방식이 거짓말이 되는 것이다. 또 인간은 본능적으로 집단 속 인정과 소속감을 원해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거절당할까 봐 두려운 나머지 '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이를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social desirability bias)이라고 한다. 또 일부는 상황을 조작하고 타인을 통제하면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권력 추구적 동기와 연결한다. 그리고 가장 빈번하게는 진실을 말했을 때 발생할 갈등, 처벌, 거절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으로 나쁜 행동이 아니라 그 저변에는 사회적 욕구, 자아 간극, 불안, 애착 등의 심리적 동기가 깔려 있다. 선의의 거짓말도 있다. 나를 아끼는 사람에게 심려를 끼치지 않기 위해, 불필요한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정직함이 오히려 상처를 주는 상황에서 차라리 사려 깊은 거짓말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거짓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그 결과가 어색함과 불편함을 초래하더라도, 선의의 거짓말조차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특별히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불편하기 때문이다. 동요할 때 얼굴이 잘 빨개지는 편이기도 하고. 거짓에는 필연적으로 어떤 틈이 생기고, 그 틈을 감지해 내는 사람이 분명 있다. 그게 꼭 타인이 아닐지라도 그 틈새에 미세하게 차오르는 공기에 스스로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위증죄로 조사받는 사람에게 "법정에서 왜 거짓말을 했는가요" 하고 물어보면 "기억이 잘 안 납니다."라고 대답한다. 거짓말을 한 죄로 불려와 조사를 받는 자리에서 또 거짓말을 한다. 그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났다.






비록 백 퍼센트 완전무결할 순 없을지라도, 세상 사람들이 적어도 자기 자신에게 떳떳하게 고개를 들 수 있을 정도 만큼은 정직하게 살면 좋겠다. 나도 그렇고. 최소한 그 정도는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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