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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 결핍증

사회성을 강요하는 사회

by Ubermensch



사회성이란 타인과 원만하게 관계 맺고 협력하며 살아가는 능력을 뜻한다. 여기엔 의사소통, 공감, 규범준수, 협력, 갈등조정 능력 등이 포함된다고 볼 수 있겠다. 우리는 보편적으로 인간관계가 넓고 외향적이며 밝고 명랑한 사람들을 향해 사회성이 좋다고 표현하곤 한다.






나는 그 보편적 기준의 사회성이 딱히 없다. 그렇지만 그 부족함을 굳이 채워 넣을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물론 사회성이 좋은 사람만이 가진 어떤 특권-확장된 대인관계에서 비롯되는 기회, 평판, 권력, 부, 명예까지 흔쾌히 인정한다. 하지만 그 이점들을 포기하고서라도 나는 부족한 나름대로 본연의 모습으로 살고 싶고, 많은 불편을 겪고 감수하며 소신을 지켜왔다. 가령 길에 아는 사람들이 앞에 보이면 일부러 느리게 뒤따라 걷는다. 업무적으로 함께 이동할 일이 있을 때면, 나는 가야 할 일이 있어도 없는 척하다가, 사람들이 다 떠난 걸 확인하고서야 혼자 나선다. 혼자 걷는 게 편해서 그렇다.


사람들이 무섭거나 싫어서 피하는 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좋게 생각하는 쪽이다. 드물게 나를 해코지하거나 정말 악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잘 싫어하지도 않는다. 누군가를 싫어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아주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그럴 가치가 없는 일이다. 나는 그저 의미있는 주제와 가치가 없는 스몰 토크를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는 것 자체가 괴로울 뿐이다. 내 기준에 궁금하지 않고 웃기지 않은 이야기들에 사람들은 핑퐁핑퐁 대화를 이어가고 웃는데, 그게 참 신기하다. 정말 재미있고 즐거워서 그런 건지, 아니면 세련된 사회성의 발현인 건지 잘 모르겠다. 나는 그저 말하고 싶지 않음에도 말해야 하거나 웃고 싶지 않지만 웃어야 하는 것이 보편타당한 상황을 최대한 피하고 싶다.

으레 문제적 가정이 그렇듯 나 역시 학창 시절 이사와 전학을 자주 다녔는데, 낯선 환경에서 내가 친구를 사귀는 방법은 꼼짝도 안 하고 자리에 조용히 앉아있기였다. 누구에게도 말을 걸지 않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그냥 앉아 있다 보면, 어떤 사회성 좋은 녀석이 다가와 말을 걸고 친구가 되어주는 방식이었다. 그렇다고 따돌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한건 아니다. 놀랍게도 반장 부반장 등 리더 역할도 많이 했다. 원래 가만히 있어도 외모가 괜찮고 전 교과 성적이 두루 우수하면 사회적으로 외면당하기 쉽지 않다.


어쨌거나 사는 내내 사회성 지적을 지속적으로 빈번하게 당한다는 건 피곤한 일이다. 어느 날 함께 일한 검사님이 카드를 줄 테니 후배들 밥 사주세요, 하시길래 저도 이백 몇십만 원이지만 나름 돈을 벌고 후배들 밥 사줍니다. 왜 저에게 잘해주시는가요 하고 물으니, 제가 부자는 아니지만 부자처럼 생겼고 부자처럼 씁니다. 사람들과 좀 어울렸으면 해서요.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사람들이 저를 따돌리는 게 아니라 제가 사람들을 따돌리는 거예요, 저는 혼자 있는게 편해서 그래요. 하고 답했다. 만약 부모 입장에서 어린 자식이 이런 소리를 하는걸 듣는다면 가슴이 미어질지도 모르겠다. 내 자식이 그런 말을 한다면 나는 아주 독립적으로 잘 키웠다고 대견해할 거다.


사실 적절한 사회성이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내 기준 사회적으로 심각한 피해를 주는 행동 세 가지가 있다.


그중 내가 보기에 가장 심각한 건 잘못된 젓가락질이다. 여섯 살 때, 아빠는 내가 젓가락질을 잘해야 한다며 콩을 잔뜩 뿌려놓고 이쪽에서 저쪽으로 옮기게 했다. 흘리면 다시. 수십 개의 콩을 실수 없이 옮기고 난 후엔 구구단을 거꾸로 외워야 했는데, 틀리면 처음부터. 한글을 못 뗀 여섯 살 짜리도 많을 텐데. 나는 읽고 쓰고 구구단도 외우고 있는데, 왜 콩 수십 알을 옮겨야 하고 왜 구구단을 거꾸로 외워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빠가 눈을 크고 무섭게 뜨고 지켜봐서 어쩔 수 없이 마침내 어렵게 성공해 냈고, 그래서 젓가락질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보면 콩과 구구단이 떠올라 화가 머리끝까지 난다.


두 번째는 일차선이나 좁은 길에서 길을 막고 천천히 가는 운전자나 보행자의 행동인데, 운이 나쁘게도 그 뒤에 있게 되면 울화가 치밀고 비명을 지르고 싶다. 타인의 길을 그렇게 막고 있으면 안 된다. 비켜갈 공간이 없는 상황에선 더욱 끔찍한 일이다.


마지막으로는 밀폐된 공공 장소에서 큰소리로 떠드는 행위인데, 특히 엘리베이터에서 그렇다. 왜 궁금하지도 않은 남의 사정과 웃음소리를 모르는 사람 귓속에 강제로 집어넣는 것인지. 그건 아주 고역이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상황에 처할 때면 함께 타고 있는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는 상상을 한다.






사회란 게 별 건가 싶다. 메이저 사회도 있고 마이너 사회도 있고 나와 우리 집 고양이 두 마리만 속한 사회도 있고. 꼭 모두가 두루두루 하하호호 함께 어울리는 사이가 될 필요가 있을까? 보편적 기준의 사회성을 자연스럽게 강요하고 혼자인 사람을 딱하게 여기는 시선이, 보이지 않는 폭력성을 전제하고 있는 듯하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양의 사람이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고. 굳이 부자연스럽게 전형적인 사회성이라는 틀 안에 억지로 고정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선량한 타인에게 피해만 끼치지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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