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극복하지 못한
나는 눈물이 많은 아이였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울면서 잠든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더 많았다.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는 내가 울 때마다 주름진 손으로 내 얼굴을 닦아주며 우리 공주 눈물 아까우니 지금 말고 이다음에 할미 죽을 때나 울라고 했다. 너무 행복해도 울고, 억울해도 울고, 화가 나도 울고, 서러운 일이 뭐 그렇게 많은지. 아기 때부터 나는 거의 먹지도 자지도 않고 으앙으앙 울기만 하던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기여서, 항상 품에 안겨 있어야만 울음을 그쳤다고 한다. 이 병적 울음은 사회생활을 시작하고서도 쉽게 그치지 않았다. 입사 후 수습 시절에는 주 4회 정도 화장실에 뛰어가 울었고, 회식 후 동기에게 안겨 엉엉 울기도 했으며, 사수 선배님은 내가 자리를 오래 비우면 어디 또 숨어서 울고 있나 싶어 나를 찾으러 다니기도 했다. 당시 내 별명은 수도꼭지였다.
나도 이제 어엿한 계장의 직급을 단지 수년이 지났고, 너무나도 많아진 후배들 보기 부끄럽기 때문에 건조해지기로 굳게 다짐했다.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우는 것 자체가 지겨워서 눈물샘을 자극할 만한 드라마나 영화도 가급적 피했다. 사람들과 감정 교류도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했다. 수도꼭지를 단단히 잠갔다고 생각했다.
우리 회사는 일 년에 두 번 인사이동이 있어서 정기적으로 사람들이 들고 난다. 보통 같은 사무실 사람들과 길게는 1년 반, 짧게는 반년정도의 시간을 함께한다. 입사하고 첫 사수 계장님과 떨어져 다른 부서로 이동했을 때, 비록 7층에서 9층으로 가는 물리적으로 아주 짧은 이동이었음에도, 우연히 8층에서 계장님을 만나자마자 너무 반가워서 울고 말았다. 그렇게 반년마다 찾아오는 인사이동 때마다, 나를 혼내고 챙기고 아끼고 예뻐하던 선배들이 떠나갈 때마다, 나는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어댔다.
그렇게 일곱 번의 눈물 콧물로 얼룩진 인사를 겪고 난 이후 나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게 되었는데, 인사이동날 아예 연가를 써버리는 것이었다. 정든 사람들과 도저히 얼굴을 보고 평범한 인사를 할 자신이 없어서, 전날 평소처럼 함께 일을 하다가 당일 연가를 내고 잠적해 버리는 것이다. 물론 다음날 출근하면 떠나간 사람을 대체한 새로운 사람을 보고 싱숭생숭한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극단적인 상황을 피할 방법을 찾아서 다행이었다.
그 이후 고안해 낸 또 다른 방법은 애초에 누구를 만나든 정을 안 주고 안 받자는 다짐이었다. 이 방법이 제일 근본적인 것 같아서 흡족했다. 하지만 나는 예쁘고 잘생긴 사람, 귀여운 사람, 약하거나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 속수무책으로 마음이 약해지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는 까닭에 결국 또 누군가와 사이가 깊어지고 만다. 그래서 10년 차 직장인으로서 20번째 인사이동을 겪는 중이지만 여전히 아무렇지 않지 못하다.
오늘은 인사이동 전 마지막 출근일이었다. 이번엔 다행히 내가 떠나는 입장이다. 이 입장은 비교적 괜찮다. 내가 떠날 때는 승진을 하거나, 상급 기관에 가거나, 내가 지원한 새로운 부서에 가는 식이라 어떤 기대와 설렘이 생긴다. 그래서 남아있는 사람들을 과거로 남겨야 하고,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는 슬픔이 어느 정도 참을 만하다.
퇴근 전 그간 함께 했던 검사님 두 분과 인사를 했다. 그들이 먼저 떠나는 뒷모습을 보지 않아도 돼서 천만다행이었다. 떠나는 등과 뒷모습을 보는 건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다. 마지막 인사를 하는 얼굴도. 사실 사전에 당부도 했었다. 애써 단단히 잠가둔 수도꼭지가 열려버릴까 봐, 그런 극적인 장면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그래서 담담하게 비대면 메신저로 작별했다. 한 분은 직접 자리에 찾아와 인사를 하셔서 어쩔 수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방식으로 인사했다. 말을 하면 울음이 섞일까 봐.
회사에서 만난 인생에 흔한 스치고 스치는 사람들일 뿐인데, 누가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10년을 겪어도 이렇게 적응하지 못하고 담담하지 못한 지 모르겠다. 퇴근길에 생각을 쭉 해봤다. 그건 내가 받은 게 많아서였다.
그 분들은 뽀시래기 계장이 무럭무럭 자랄 수 있게 최대한 많은 경험과 기회를 만들어주셨다. 내 기분과 건강을 살피고, 풍파에 휘말릴 때 든든한 내 편이 되어주셨다. 사교성이 없는 내게 자주 말을 걸어주고, 웃게 해 주고, 밥과 술을 사 먹이고, 나조차도 모르던 내 불안을 알아봐 주고, 그 불안을 달래고 편히 잠들 수 있을 만한 선물을 보내주셨다.
그분들의 그 깊고 따뜻하고 커다랗고 다정한 마음이 와닿을 때마다 눈물이 차올라서, 나는 애써 눈을 말리거나 내 전용 기록창고로 숨어들곤 했다. 감동이란 건 분명 좋은 감정에 속할 텐데 왜 가슴 부근에 아릿아릿한 통증으로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한 분은 이곳에서 좋은 기억만 가지고 가시길 바란다고 했다. 다른 한 분은 새로 가는 곳에서도 빛나라고 했다.
좋지 않았던 기억은 하나도 없습니다. 올해 두 분과 함께했던 경험과 시간은 앞으로 제가 갈 길에서 아주 오랫동안 반짝반짝 빛날 거예요. 감사합니다. 많이 그리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