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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의, 단순함의 미학

오래 눈여겨보아야 아름다운 것들

by Ubermensch



기본은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성립시키는 최소한의 근거-토대를 말하고, 단순함은 복잡한 장식을 제거하고 핵심만 남은 상태를 뜻한다. 불필요한 것을 덜어낸 핵심이라는 점에서 두 개념은 상통한다.




내 화장은 3분 이내 컷이다. 기초는 여름엔 스킨, 겨울엔 크림 하나 바른다. 반짝거리는 펄 쉐도우나 쉐딩, 블러셔 같은 블링블링한 색조도 없다. 기본 화장만 한다. 옷도 무늬나 패턴이 없고 채도와 명도가 낮은 흐릿한 파스텔톤이나 무채색을 주로 입는다. 액세서리는 반지, 목걸이, 시계 하나씩 하는데 화려한 금색은 없고 전부 심심한 은색이다. 행주 삶은 맛이라는 평양냉면을 좋아하고, 눈부신 낮보단 어두운 밤이 편안하고, 화려한 착장보단 청바지에 흰 티, 운동복 차림의 내 모습이 제일 마음에 든다. 이것저것 화려하게 꾸미면 누구나 예쁘게 보일 수 있지만 기본적이고 단순한 차림에서 예쁘기가 더 어렵고 희소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추구하는 작문법도 그렇다. 나는 별 꾸밈없이 담백한, 과함이 없고 독자들에게 어설픈 교훈을 주거나 강제로 설득하지 않는, 그저 함께 생각할 여지를 남기는 글을 쓰고 싶다. 감성적인 형용사를 줄줄이 사용하는 화려한 수사기법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과도한 한문이나 학술용어, 영어를 남발하는 현학적 문체의 글도 거북하다. 기자생활을 할 때 사실 위주로 간결하게,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라고 배운 게 기억에 남아서 그럴 수도 있다. 수사관으로서 수사보고서나 각종 조서, 판결문 등 딱딱한 형식의 글을 많이 접해서인지 아니면 성격 때문인지 이따금 내 글이 너무 건조하고 냉한가 싶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나는 흘러넘치는 것보다는 명료하고 심플한 게 좋다.


사람을 볼 때도 그렇다. 너무 요란하거나 말이 많거나 꾸밈이 많은 사람을 보면 나도 모르게 거리감이 든다. 동아리장, 학회장 이런저런 대표를 하는 잘 나가는 남자애들은 항상 예쁜 여자친구를 사귀곤 했는데, 나는 한 번도 그런 유형의 남자를 만나본 적이 없다. 항상 어딘가 쓸쓸하고 사연 있어 보이는 밤 같은 남자들에게 이끌려서 그 밤을 밝히는 달 같은 존재가 되어주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으면서도, 동떨어진 내 귀에까지 들릴만큼 흉을 보이는 대상이 되거나 내 눈에 띌 정도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편을 들어주거나 가서 말을 걸었다. 과한 사람도 불편하지만 어딘가 결핍되어 보이는 사람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단순한 것, 기본적인 것. 그건 간단한 듯하면서도 생각보다 그 기본만큼을 갖추거나 지키는 사람이 많지 않다. 타인과 나 스스로에게 떳떳할 만큼 정직하게 사는 것. 고마운 일에 고맙다고 말하고, 미안한 일에 미안하다고 말하고, 내가 저지른 잘못을 용기 내어 인정하는 것 등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일이다. 그 기본적인 것들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서 우리 회사에 끌려오는 손님들이 아주 많다. 왜 남을 속여서 돈을 빼앗고, 다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하고, 끔찍한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세상 사람들이 더도 덜도 말고 딱 기본까지만 지켜주면 좋겠다. 그건 그렇게 복잡하거나 어렵지 않고, 아주 단순한 건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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