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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우리에게 전하는 응원

by Ubermensch






입학식, 전학 첫날, 개강 첫날, 입사 첫날, 전입 첫날. 심장 쪽이 간지럽고 왠지 울음이 터질 것 같고 집으로 도망가고 싶은 그 느낌은 코흘리개 때나 다 커서나 정도의 차이뿐 여전히 비슷하게 느껴진다. 익숙한 환경으로부터 낯선 환경을 향한 첫 발걸음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아주 조금의 기대감과 설레는 감정을 동반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서 무엇을 배우고 무슨 일을 겪게 될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 미지의 영역에 대한 막막함이 어떤 면에서는 공포로, 어떤 면에서는 흥분으로 작용해 몸 구석구석의 혈관을 요동치게 한다.


내일은 우리 회사의 전국적 인사이동 첫날이다. 나도 지난 일 년 반동안 내 집처럼 익숙하게 근무하던 부서에서 다른 부서로 이동한다. 그렇게 원했던 수사만 마음껏 할 수 있는 부서. 성폭력이나 아동학대 사건처럼 조사자로서 마음 아플 일이 없는 유형의 범죄 전담. 보통의 검사실처럼 계장 혼자가 아니라 두 명 있는, 그것도 내가 선임 입장인, 게다가 후배는 경험이 많은 듬직한 남자 계장.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는 조건이라 믿어지지 않았다. 누가 거기는 빽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라고 하던데, 난 빽도 경험도 딱히 없고 운이 좋은 경우라곤 있어 본 기억이 잘 없는데 어떻게 된 거지 싶었다. 어쨌든 그 소식을 알게 되자마자 신이 잔뜩 났다.


예쁜 쓰레기를 모으는 고질병 탓에 내 사무실 책상에는 온갖 잡동사니가 즐비해서, 한번 자리 이동을 할라치면 거의 원룸 이삿짐 센터를 방불케 할 만큼 박스를 채우고 짐을 날라야 한다. 사람들과 정을 나누지 않겠다고 그렇게 몸부림을 쳤어도, 막상 떠날 순간이 오면 정과 미련이 주차위반 스티커처럼 끈덕지게 남아 흔적을 떼내기가 쉽지 않다. 10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마지막 날에는 항상 새벽까지 회사에 남아있는다. 후임자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기 위해 최대한 말끔히 정리하고 가고 싶기 때문이다. 사실 이동을 하고서도 그다음 주까지 이전 내 자리를 왔다 갔다 하곤 한다. 인수인계 핑계로 사람들 얼굴도 한번 더 보고, 정든 자리에도 앉아보고 하면서.


새로운 곳에 가서 적응할 생각을 하면 무섭고 깜깜한 기분부터 우선 든다. 10년 전 실무수습을 마치고 새롭게 정식 발령을 받아 떠나며 무서워하는 내게, 근무 25년 차 계장님이 나에게 말씀해 주셨다. 나는 여기서 근무한 지 25년이 됐지만 여전히 다른 부서에 가는 게 무서워. 근데 막상 가면 또 거기서 새로운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다 보면 재밌어. 그러니까 괜찮아, 가서 잘할 거야. 하고. 정말 그럴까 싶었는데, 정말 그랬다. 정든 선배들이 떠나는 인사이동 때마다 울고불고 눈물콧물을 흘렸지만, 그들이 가고 난 이후 새롭게 온 사람들이 떠날 때 또다시 울고불고하게 되는 걸 보면 틀림없다.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만남이나 사건은 그 시기의 상황과 조건이 맞아야 성립한다는 의미다. 아무리 내가 좋아서 붙잡고 싶은 인연이 있다고 해도 그건 억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시공간적 조건이 성숙했을 때여야만 이루어지는 거라고 한다. 그러므로 그간 함께했던 익숙한 사람들이 너무 그립고 생각이 나도 꾹 참고, 새로운 환경에 대한 기대를 더 크게 가져보려 한다. 그 낯섦이 비록 당장 무섭고 어려울지라도, 그걸 극복하고 적응해 내야만 내 세계가 또 한 뼘 성장하고 넓어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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