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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피해자의 마음

돈 앞에 무너진 인간성

by Ubermensch





막내시절 나는 압수수색 전문 수사관으로 불렸다. 뉴스에서 나오는 검찰 압수수색은 파란 박스를 든 채 까리한 정장을 입고 부패한 기업에 당당하게 들어가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멋진 모습으로 비치지만-실제 그런 경우도 있긴 하지만- 정작 실무에서 수사관들은 압수수색 현장에 나가는 것을 기피한다. 보통 특수부서에서 인지하는 기밀 사건이라 꼭두새벽부터 동원이 되고, 내가 정확히 뭘 찾아야 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한 채 졸린 눈을 비비며 배급된 김밥천국 참치 김밥 한 줄 우걱우걱 씹으며 스타렉스에 실려간다. 선배들은 압수수색 나가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막내인 나는 수시로 압수수색 현장에 내몰렸다. 느닷없이 집에 쳐들어온 검찰청 사람들을 보고 놀란 피의자의 가족들, 우는 여자나 아이들을 달래 가며 남의 집 속옷 서랍을 마구 헤집는 상황이 썩 유쾌하진 않다. 수색당하는 사람네 집 화장실을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할 때면 더욱 면구스럽다.


어쨌든 그 무렵 한 번은 지방에 있는 라면이 유명한 회사 공장에 압수수색을 나간 적이 있었다. 디지털포렌식 수사관이 전자정보를 압수하는 지루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 내가 태어난 해 입사한 까마득한 계장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계장님, 저는 이다음에 커서 꼭 강력부에 가고 싶어요. 살인자의 눈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어요. 사기사건은 너무 따분한 것 같아요. 휴, 더워. 하고 말했다. 까마득한 계장님은 허허 웃으며 사기사건이 보기엔 시시하고 흔해 보여도 돈 몇백만 원에 자살을 하는 사람도 있고, 사람을 죽이는 사람도 있으니까 너무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날 압수수색을 마치고 나를 하이마트로 데려가서 아주 비싼 고급 스마트 타워형 선풍기를 사주셨다. 그건 10년째 잘 쓰고 있다.


검찰청에는 성폭력, 교통, 건설, 아동, 경제 등등 범죄 유형 별로 전담 부가 정해져 있다. 사기사건은 마치 백반 같아서 각 부에서 전담으로 취급하는 유형과 무관하게 어디든 빼곡히 끼어있다.


사건 처분 전, 간단한 사건의 경우 형사조정에 회부하는 경우가 많다. 형사조정실에 근무하던 시절 합의의 자리를 마련해서 조정을 해보려고 하면, 사기사건 피해자는 반드시 나오는데, 정작 피의자는 불참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어차피 합의금 줄 돈 없으니까 기소를 하든 말든 배 째라는 식이다.


한 번은 동기가 급하다고 돈을 빌려달라고 한 적이 있다. 나도 돈이 없는데 하도 사정을 해서, 마이너스 통장에서 500만 원을 이체해 줬다. 내 월급이 150만 원도 안되던 시절에. 빌려달라고 할 때는 그렇게 애걸복걸하더니, 막상 돈을 받자 약속한 날짜가 지나 차일피일 연장하는 와중에도 내가 돈을 안 갚겠냐며 태도가 당당해졌고, 돌려받지 못할까 봐 초조하고 눈치를 보게 되는 건 오히려 빚까지 내서 빌려준 내 쪽이 됐다.


많은 사건을 보면, 이만큼만 투자를 하면 몇 달 안에 180%의 수익을 보장해 준다든지 하는 식의 허황된 이득에 속아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알고 지낸 시간이 얼만데, 나 못 믿냐 하며 정에 호소하거나 본인의 딱한 처지로 동정심을 자극해서 돈을 빌리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돈을 건네고 난 이후에는 입장이 뒤바뀌는 경우가 많다. 선의를 베푼사람, 믿은 사람이 바보가 된다. 그 견고하던 우정, 신의는 박살이 나고 지저분한 상처만 남는다.


사기 사건이 아주 흔해서, 그걸 왜 속냐. 사기당한 사람이 바보라고 보는 시선도 종종 있다. 하지만 최근 내가 본 사건 중에는 어떤 부동산에 실제로 변호사인 본인도 투자했다, 변호사가 직접 보장을 해주겠다며 완불 계약서까지 주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그 변호사는 지금 실형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복역 중이다. 사실 정말 여러 명이 작당해서 상황을 조작하고 정교하게 설계해서 사기를 치면 이건 나라도 의심하기 어렵겠다 싶은 사건도 있다. 실제 우리 수사관 후배 중에 보이스피싱을 당해서 9천만 원이나 사기당한 경우도 봤다.


억대 사기사건 재판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 피해자가 검사님과 나를 따라오며 긴 하소연을 했다. 나는 강도나 강간을 당한 것도 아닌데 너무 심하게 하소연을 하니까 듣기가 힘들었어요, 했더니. 검사님은 사기 사건 피해자와 상해 사건 피해자 마음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주셨다. 만약 누가 칼로 내 허벅지를 찔러서 상해를 입으면 단순하게 가해자만 원망하면 되는데, 사기를 당하면 금전적 피해는 물론이고 그 사람을 믿었던 자신에 대한 자책까지 더해져서 마음이 더 괴로워서 그런 거라고 했다.


사기 사건 피해자에게 사건 관련 연락을 하면, 전화를 받지 않거나 어렵게 연락이 닿아도 보이스피싱범 취급하며 끊어버리곤 한다. 피고인이 재판 과정에서 본인의 형량을 낮출 목적으로 피해자에게 큰 금액을 공탁해서 돈을 받아가라고 알려주려는 건데, 검찰청 연락마저 사기라고 생각할 정도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거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려서 그렇다.


돈이 많으면 물론 좋다. 하고 싶은 것도 마음껏 하고, 안 하고 싶은 것도 마음편히 안 할 수 있고. 그래도 그 돈을 더 많이 갖자고 사람들의 선한 마음과 본인에 대한 순수한 믿음을 이용하고 짓밟는 행위는 아주 악해서 죽어도 싸다. 이제는 더 이상 사기 사건이 시시하고 따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누구는 그 돈 때문에 살인을 하고, 누구는 그 돈 때문에 자살을 한다. 한 가정이 무너지고, 무엇보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가졌던 다정한 호의와 신뢰, 관계가 파탄난다. 그리고 피해자 마음엔 괴로운 자책이 남는다.




우리 검사님은 내가 사기치고 잡혀가는 딱한 사정의 피고인을 본다면 안타까워하며 울어줄 사람이긴 하지만 똑똑해서 사기는 절대 안 당할 거라고 했다. 혹시 그럴 만한 상황이 생겨도 남을 이용해서 먼저 해보라고 할 것 같단다. 그 통찰력에 감탄했다. 그렇지만 나는 똑똑해서 사기를 안 당하기보다는, 길고양이처럼 경계심이 많기도 하고, 검사님 말대로 남을 잘 이용하기도 하면서, 무엇보다 사기당할 돈이 없다. 돈이 없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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