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도시는 배우지 않는다. 20장: 리빙랩 2.0
첫 번째 분기가 끝났다.
협동조합 사무실.
벽에 지도가 붙어 있었다.
마나밸리. A4 열두 장을 이어 붙인 것. 테이프 자국이 있었다.
누렇게 변한 테이프. 시간이 지난 것.
지도 위에 선이 그어져 있었다.
빨간 펜. 굵은 선.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었다.
A. B. C.
손글씨. 정민이 쓴 것.
각 구역에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A구역: ‘통제. 아무것도 안 함.
’B구역: ‘임대료 동결 + 세제 혜택.
’C구역: ‘커뮤니티 프로그램 + 공동 마케팅 + 교육.’
포스트잇 색깔이 바래 있었다. 햇빛 때문에. 창문 쪽이라.
정민이 지도 앞에 서 있었다.
지안이 옆에 있었다. 노트북을 들고. 화면을 보고 있었다.
“3주 됐어요.”
지안이 말했다.
“첫 번째 판정이에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화요일. 저녁 7시.
스물한 명. 지난달보다 세 명 늘었다.
의자에 앉아 있었다. 웅성거렸다.
오늘은 분위기가 달랐다.
긴장되어 있었다. 결과 발표니까.
동욱이 앞줄에 앉아 있었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꼬고. 표정이 없었다.
수연이 중간줄에 앉아 있었다.
노트를 들고. 펜을 쥐고. 뭔가 적을 준비.
하린이 테이블 옆에 서 있었다.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손이 바빴다.
정민이 마이크를 들었다.
“시작할게요.”
웅성거림이 멈췄다.
“3주 전에 실험을 시작했어요.”
지도를 가리켰다.
“세 구역. A, B, C.”
사람들이 지도를 봤다.
“A구역, B구역.”
정민이 화면을 넘겼다. 지안이 클릭했다.
숫자가 떴다. 작은 글씨.
“A는 줄었어요. 유동인구 -3%, 매출 -5%.
B는 조금 올랐고. +2%, +1%. 의미 있는 변화는 아니에요.”
동욱이 팔짱을 풀었다.
“그래서요?”
“C구역이요.”
정민이 화면을 넘겼다.
“C구역.”
숫자가 떴다. 큰 글씨.
‘유동인구: +12%’
‘매출: +15%’
‘재방문율: +8%’
‘공실: -1건’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15%요?”
“진짜요?”
수연이 펜을 멈췄다. 화면을 봤다. 입이 벌어졌다.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예요.”
화면을 가리켰다.
“청소 당번 시작하고 골목이 깨끗해졌어요.
사람들이 더 오래 머물렀어요.”
“공동 마케팅 하니까 가게들이 같이 홍보했어요.
손님이 옆 가게도 갔어요.”
“교육 들은 가게 주인들이 SNS 시작했어요.
젊은 손님이 늘었어요.”
노인이 부채를 들었다. 흔들지 않았다. 화면을 보고 있었다.
“15%면 많은 거요?”
“3주 만에요. 많은 거예요.”
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동욱이 일어섰다.
“잠깐요.”
정민이 봤다.
“C구역에 내 건물 있어요?”
“없어요.”
“그럼 나랑 상관없잖아요.”
“아니에요.”
정민이 말했다.
“다음 분기에 확대해요. 동욱 씨 건물 있는 구역도.”
동욱이 정민을 봤다. 3초.
“…”
팔짱을 꼈다. 다시.
“확대한다고 되나요? C구역이랑 상황이 다를 텐데.”
“다르죠.”
정민이 말했다.
“그래서 같은 방식 안 써요. 구역마다 다르게 해야죠.”
동욱이 입술을 움직였다. 뭔가 말하려다 멈췄다.
앉았다.
“…기대할게요.”
작은 소리. 정민은 들었다.
하린이 앞으로 나왔다.
서류를 들고 있었다. 노트. 낡은 것. 손때가 묻어 있었다.
“제가 현장 정리할게요.”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이크를 건넸다.
하린이 받았다. 차가웠다. 금속. 손가락이 마이크를 감쌌다.
사람들을 봤다.
숨을 들이쉬었다. 어깨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C구역이요.”
하린이 말했다.
“제가 매일 갔어요.”
사람들이 하린을 봤다.
“처음엔 아무도 안 했어요. 청소 당번.”
손에 든 노트를 봤다. 장부.
“첫 주에 세 명 왔어요. 다 노인회분들.”
페이지를 넘겼다. 바스락.
“둘째 주에 일곱 명. 가게 주인들도 왔어요.”
“셋째 주에 열두 명.”
하린이 고개를 들었다.
“늘었어요.”
수연이 손을 들었다.
“왜요? 왜 늘었어요?”
하린이 수연을 봤다.
“몰라요.”
“몰라요?”
“네.”
하린이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근데요. 추측은 있어요.”
하린이 노트를 내려놓았다. 테이블에.
“첫 주에요. 노인회분들이 쓸고 나서 커피 마셨어요.”
사람들이 하린을 봤다.
“둘째 주에요. 가게 주인 한 분이 커피 샀어요. 노인회분들한테.”
“셋째 주에요. 다 같이 마셨어요.”
하린이 사람들을 봤다.
“그게 다예요.”
“그게요?”
노인이 물었다.
“네.”
하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같이 뭔가 하니까요. 얼굴이 익으니까요.
다음에 또 오고 싶은 거예요.”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하린이 말했다.
“숫자는 결과예요. 근데 원인은 사람이에요.”
하린이 마이크를 들었다.
잠깐 멈췄다.
정민을 봤다. 1초.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하린이 사람들을 봤다.
“저요.”
“네.”
“3년 전에 카페 했어요.”
사람들이 하린을 봤다. 노인이 부채를 내려놓았다.
“상생협약 믿었어요. 도시재생 믿었어요.”
“문 닫았어요.”
조용했다. 창문 밖에서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요.”
하린이 손에 든 마이크를 봤다. 금속. 차가웠다.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이번엔 달라요.”
“뭐가요?”
수연이 물었다.
“우리가 하는 거예요.”
하린이 말했다.
“위에서 시키는 거 아니에요.
예산 받아서 쓰는 거 아니에요.”
“우리가 정하고. 우리가 하고. 우리가 기록해요.”
하린이 지도를 가리켰다. 세 구역. 빨간 선.
“이건 재생이 아니에요.”
멈췄다. 숨을 쉬었다.
“도시의 성장이에요.”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
크지 않았다. 스물한 명 중 열다섯 명쯤.
근데 있었다. 박수가.
노인이 쳤다. 주름진 손으로.
수연이 쳤다. 펜을 내려놓고.
동욱은 치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근데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하린이 고개를 숙였다. 살짝.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테이블에. 탁.
손이 떨리고 있었다. 조금.
정민은 서 있었다.
하린을 보고 있었다.
‘이건 재생이 아니에요. 도시의 성장이에요.’
저 말.
정민이 했던 말이었다.
2부. 런던. 밤. 호스텔 침대에서 메모장에 적었다.
‘도시는 재생되는 게 아니라 성장하는 거다.’
클리블랜드에서도 적었다. 같은 말.
하린이 말했다. 지금.
정민의 말이 하린의 입에서 나왔다.
이상했다.
기뻤다. 조금. 가슴 어딘가가 따뜻해졌다.
슬펐다. 조금. 목이 조여왔다.
내 말이 퍼지고 있었다. 나 없이도.
내가 아닌 사람의 입에서.
그게 좋은 건지. 모르겠었다.
정민은 입을 다물고 있었다.
박수 치지 않았다.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회의가 끝났다.
아홉 시 반.
사람들이 나갔다. 웅성거리며.
“다음 주에 봐요.”
“수고했어요.”
문이 열리고 닫혔다. 삐걱. 탁.
동욱이 문 앞에서 멈췄다.
정민을 봤다.
“정민 연구위원.”
“네.”
“15%요.”
“네.”
“다음 분기에 진짜 되는 거죠?”
“해볼 거예요.”
동욱이 정민을 봤다. 2초.
“…기대할게요.”
아까보다 큰 소리.
“근데요.”
동욱이 말했다.
“안 되면 나도 생각 있어요.”
정민이 봤다.
“무슨 생각이요?”
동욱이 대답하지 않았다. 입술이 움직였다. 멈췄다.
“나중에요.”
나갔다.
문이 닫혔다. 삐걱.
정민과 하린만 남았다.
하린이 의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하나씩. 접어서.
찰칵.
정민이 다가갔다.
의자를 들었다. 접었다.
찰칵.
“하린 씨.”
“네.”
“아까요.”
“응.”
“잘했어요.”
하린이 의자를 내려놓았다.
정민을 봤다.
“뭐가요?”
“발표요.”
하린이 웃었다. 피곤한 웃음.
“떨렸어요.”
“안 그래 보였는데.”
“손 봐요.”
하린이 손을 들어 보였다.
떨리고 있었다. 조금. 아직.
정민도 웃었다.
하린이 의자를 쌓았다. 구석에.
“정민 씨.”
“응.”
“아까 그 말이요.”
“어떤 말?”
“도시의 성장이요.”
정민이 하린을 봤다.
하린이 정민을 봤다.
“정민 씨 말이에요.”
“…”
“메모장에 있었어요. 예전에 보여줬잖아요.”
정민은 기억났다.
3장. 협동조합 창립하고.
하린에게 메모장 보여줬다.
런던에서 적은 것. 클리블랜드에서 적은 것.
“기억해요?”
“네.”
하린이 웃었다.
“썼어요. 제 말로.”
“…”
“괜찮아요?”
정민이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3초.
“괜찮아요.”
“진짜요?”
“응.”
정민이 창문을 봤다. 밖이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
“그래야죠.”
“뭐가요?”
“퍼지는 거요.”
정민이 하린을 봤다.
“내 말이 하린 씨 말이 되고.
하린 씨 말이 다른 사람 말이 되고.”
“그게 좋은 거예요?”
“모르겠어요.”
정민이 웃었다. 웃음 같지 않았다.
“근데 그래야 남잖아요.”
하린이 가방을 메었다.
“들어갈게요.”
“응.”
“내일 봐요.”
문으로 갔다.
문고리를 잡았다.
멈췄다.
“정민 씨.”
“응.”
“고마워요.”
“뭐가요?”
하린이 돌아봤다.
“말이요.”
“…”
“빌려줘서요.”
나갔다.
문이 닫혔다. 삐걱.
정민은 사무실에 혼자 남았다.
지도를 봤다.
세 구역. A. B. C.
C구역에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초록색. 둥근 것.
지안이 붙인 것. ‘성공’ 표시.
정민이 지도로 걸어갔다.
손을 들었다.
스티커를 만졌다.
초록색. 매끄러웠다. 차가웠다.
옆에 빈 칸이 있었다.
‘다음 분기’
아직 비어 있었다.
테이블로 갔다.
서랍을 열었다. 삐걱.
스티커가 있었다. 여러 색. 노란색. 빨간색. 초록색.
초록색 하나를 꺼냈다.
손가락에 붙였다.
봤다.
둥글었다. 반짝거렸다.
떼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장판 조각이 있었다. 꽃무늬.
QR 스티커도 있었다.
이제 초록 스티커도.
손끝에 닿았다.
세 개.
창문을 봤다.
밖이 어두웠다.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주황색.
C구역 쪽이 보였다. 멀리.
불빛이 있었다. 가게 불빛. 켜져 있었다.
아홉 시 반인데.
아직 켜져 있었다.
정민은 불빛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도시의 성장이에요.’
하린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을 떴다.
불빛이 깜빡였다. 한 번.
꺼지지 않았다.
-계속-
" 이건 재생이 아니에요. 도시의 성장이에요. "
" 빌려줘서요.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