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장 - 비상등

소설 도시는 배우지 않는다. 21장: 행정의 반격

by 마나월드ManaWorld
main.png 3부 6장: 행정의 반격

겨울.

미래구청. 5층.

정민은 복도를 걸었다.

발소리가 났다. 딱. 딱. 딱.

바닥이 반짝거렸다. 왁스. 형광등 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그때와 같았다.

1년 전. 같은 복도. 같은 발소리. 같은 형광등.

그때는 파란 PPT를 들고 있었다.

USB에. 성과 보고. 원그래프. 숫자들.

지금은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었다. 장판 조각이 손끝에 닿았다.

복도가 길었다. 문이 여러 개 있었다. 닫혀 있었다.

어디선가 복사기 소리가 났다. 위잉. 위잉. 멀리서.

정민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문 앞에 섰다.

‘구청장실’

명패가 붙어 있었다. 금색. 반짝거렸다. 형광등 빛을 받아서.

노크했다.

똑. 똑.

“들어오세요.”

안에서 목소리가 났다. 낮은 목소리.

문을 열었다.


안에 사람들이 있었다.

구청장. 오십 대 후반. 머리가 희끗희끗했다.

안경을 쓰고 있었다. 검은 테.

책상 뒤에 앉아 있었다. 손을 책상 위에 깍지 끼고.

미정. 소파에 앉아 있었다. 서류 폴더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파란 폴더. 모서리가 접혀 있었다.

정민을 보지 않았다. 서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한 사람 더.

모르는 얼굴. 양복. 검은색. 안경을 쓰고 있었다. 얇은 테.

서류 가방을 들고 있었다. 가죽. 새 것 같았다.

정민이 문을 닫았다. 딸깍.

“앉으세요.”

구청장이 손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정민이 앉았다. 미정 옆.

소파가 푹 꺼졌다. 낡은 소파. 스프링이 느껴졌다.

미정이 여전히 서류를 보고 있었다. 정민을 안 봤다.


구청장이 책상 위의 서류를 봤다.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베타시티 협동조합.”

정민을 봤다.

“정민 연구위원이 만든 거죠?”

“만들었다기보다--”

“참여했죠. 창립 멤버로.”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구청장이 서류를 들었다. 안경 너머로 읽었다.

“실험을 했다고요. 세 구역.”

“네.”

“결과가 좋았다고.”

“C구역이요. 매출 15% 증가--”

“알아요.”

구청장이 서류를 내려놓았다. 탁. 소리가 났다.

“문제는 그게 아니에요.”


구청장이 안경 쓴 남자를 봤다.

“소개할게요. 감사관실 김 과장.”

안경 쓴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 살짝. 표정이 없었다.

정민이 봤다.

감사관실.

가슴이 조여왔다. 숨이 짧아졌다.

“김 과장이 질문 있대요.”

구청장이 뒤로 기대앉았다. 의자가 삐걱거렸다.

김 과장이 서류 가방을 열었다. 지퍼 소리. 스르륵.

서류를 꺼냈다. 여러 장. 스테이플러로 묶여 있었다.

“베타시티 협동조합 정관이요.”

테이블 위에 놓았다. 탁.

정민이 봤다. 서명한 것. 같은 서류. 같은 표지.


“제7조. 지분 구조.”

김 과장이 읽었다. 목소리가 평평했다.

“시 30%. 구청 25%. 시민 20%. 상인 15%. 전문가 10%.”

정민을 봤다. 안경 너머로.

“시민 20%요. 이게 뭡니까?”

“조합원이에요. 10만 원 단위로 참여하는--”

“시민이 돈을 내고 지분을 갖는 거죠?”

“네.”

“그 돈은 어디로 갑니까?”

“협동조합 운영비로--”

“회계 감사 받았습니까?”

정민이 입을 다물었다.

1초. 2초.

“아직이요.”

“아직이요?”

김 과장이 안경을 밀어 올렸다. 손가락으로. 천천히.

“3개월 됐는데요?”

정민이 숨을 쉬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가슴이 답답했다.

“분기 끝나면 할 예정이었어요.”

“예정이요.”

“네.”

“예정은 계획이에요. 실행이 아니고.”


김 과장이 서류를 넘겼다. 종이 소리. 바스락.

“제15조. 건물주 참여 인센티브.”

읽었다.

“세제 감면 추천, 수선비 보조, 장기 계약 보너스.”

정민을 봤다.

“이거 구청이랑 협의했습니까?”

“…”

“구청 예산 쓰는 거 아닙니까?”

“아니요. 협동조합 자체 예산으로--”

“근데 세제 감면 '추천’이잖아요.”

김 과장이 손가락으로 글자를 짚었다. 톡.

“구청에 추천하는 거죠? 감면해달라고?”

“네.”

“그럼 구청 업무에 개입하는 거 아닙니까?”

정민이 대답하지 않았다.

손이 무릎 위에 있었다. 주먹을 쥐고 있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얬다.


구청장이 입을 열었다.

“정민 연구위원.”

정민이 봤다.

“나도 좋은 취지는 알아요.”

‘좋은 취지’.

그 말이 귀에 걸렸다.

하린이 싫어하는. 좋은 취지. 책임 회피의 전조.

“근데요.”

구청장이 책상 위에 팔꿈치를 올렸다. 손가락을 깍지 꼈다.

“시민이 예산을 움직이는 건 위험해요.”

“예산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결정하잖아요. 뭘 할지. 어디에 쓸지.”

“65% 룰로 민주적으로--”

“65%요?”

구청장이 웃었다. 웃음 같지 않았다. 입꼬리만 올라갔다.

“그거 근거가 뭡니까?”

정민이 입을 다물었다.

미정이 했던 질문. 같은 질문.

“논문 있어요? 전례 있어요?”

“경험이요.”

“누구 경험?”

“…”

“정민 연구위원 경험이요?”

구청장이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6년 경험으로 시 예산 방향을 정하겠다?”


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정이 입을 열었다.

“구청장님.”

구청장이 미정을 봤다.

“C구역 결과는 사실이에요.

매출 15% 증가. 재방문율 8% 증가.”

“알아요.”

“데이터가 있어요.”

“데이터요?”

구청장이 미정을 봤다. 눈이 가늘어졌다.

“데이터가 뭘 보장합니까?”

미정이 입을 다물었다.

서류 폴더를 잡고 있었다. 손가락이 하얬다.

“3개월 데이터로 정책을 바꿔요? 예산을 바꿔요?”

“…”

“감사 들어오면 뭐라고 해요? ‘데이터가 좋아서요?’”

구청장이 책상을 손바닥으로 쳤다. 탁.

“책임은 누가 집니까?”


조용했다.

형광등이 윙 소리를 냈다. 낮고 고른 소리. 천장에서.

1부 때와 같은 소리.

정민이 입을 열었다.

“제가요.”

구청장이 정민을 봤다.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어떻게요?”

“기록할게요. 전부. 뭘 했는지. 결과가 뭔지.

실패하면 뭐가 문제였는지.”

“기록이요?”

“네.”

정민이 구청장을 봤다. 눈을 피하지 않았다.

“감사 들어오면 보여드릴게요. 전부.”

구청장이 정민을 봤다. 5초. 10초.

형광등이 윙 소리를 냈다.

“…”

안경을 벗었다. 닦았다. 천으로. 안경닦이. 천천히.

다시 썼다.


“3개월.”

“네?”

“3개월 더 줄게요.”

정민이 숨을 쉬었다. 가슴이 풀렸다. 조금.

“대신.”

구청장이 손가락을 세웠다. 하나.

“분기 회계 감사 받으세요.”

손가락을 하나 더 세웠다. 둘.

“모든 결정 기록하세요. 누가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

손가락을 하나 더 세웠다. 셋.

“실패하면 접으세요.”

정민이 구청장을 봤다.

“접는다는 게--”

“협동조합 해산이요.”

조용했다. 방 안이.

김 과장이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 소리 없이.

미정이 서류 폴더를 잡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알겠습니다.”


회의가 끝났다.

구청장이 일어섰다.

“수고하세요.”

나갔다. 다른 문으로. 안쪽 문. 문이 닫혔다.

김 과장이 서류를 챙겼다. 가방에 넣었다. 지퍼를 닫았다. 스르륵.

정민을 보지 않고 나갔다.

문이 닫혔다. 딸깍.

정민과 미정만 남았다.

미정이 일어섰다.

서류 폴더를 챙겼다.

“정민 씨.”

정민이 봤다.

미정이 정민을 봤다.

“왜 그랬어요?”

“뭘요?”

“협동조합이요. 왜 만들었어요?”

정민이 대답하지 않았다.

미정이 서류 폴더를 가슴에 안았다.

“구청에서 하면 됐잖아요.

도시재생본부에서. 예산도 있고. 인력도 있고.”

“…”

“왜 따로 만들었어요?”

정민이 창문을 봤다. 밖이 보였다.

미래구. 유리 건물들. 겨울 하늘.

“안 되니까요.”

“뭐가요?”

“구청에서요. 안 됐으니까요.”

미정이 입을 다물었다.

정민이 미정을 봤다.

“미정 씨도 알잖아요.”

“…”

“상생협약. 44.7%. 절반도 안 남았잖아요.”

“그건--”

“도시재생센터. 4년 하고 예산 끊겼잖아요.”

미정이 대답하지 않았다. 서류 폴더를 잡고 있었다.

정민이 일어섰다.

“구청에서 하면 또 그래요.

보고하고. 평가받고.

예산 끊기면 끝나고.”

“…”

“그래서 따로 만든 거예요.”

정민이 문으로 걸어갔다.

멈췄다.

“미정 씨.”

“네.”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아까.”

미정이 대답하지 않았다.

잠깐. 3초.

“정민 씨.”

정민이 돌아봤다.

미정이 정민을 봤다. 눈이 젖어 있었다. 울지는 않았다.

“나도 위험해요. 이거.”

정민이 미정을 봤다.

미정이 서류 폴더를 가슴에 안고 있었다.

손가락이 하얬다.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알아요.”

정민이 말했다.

“…”

“미안해요.”

미정이 대답하지 않았다.

정민이 문을 열었다.

나갔다.



복도.

정민은 걷지 않았다.

벽에 기대섰다. 차가웠다. 벽이.

숨을 쉬었다. 들이쉬고. 내쉬고. 가슴이 떨렸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장판 조각이 있었다. 손끝에 닿았다.

꽃무늬. 모서리가 헤어져 있었다.

아직 있다.

눈을 감았다.

‘실패하면 접으세요.’

구청장 목소리가 들렸다.

‘협동조합 해산이요.’

‘나도 위험해요.’

미정 목소리가 들렸다.

정민은 눈을 떴다.


화장실.

걸어갔다. 발소리가 났다. 딱. 딱.

화장실 문을 밀었다.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조용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똑. 똑.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이 있었다. 정민의 얼굴이 비쳤다.

창백했다. 눈 밑에 그림자가 있었다.

수도꼭지를 틀었다. 물이 나왔다. 찬물.

손을 넣었다. 차가웠다. 손이 저렸다.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차가웠다. 눈이 번쩍 떠졌다.

눈을 떴다.

거울을 봤다.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턱 아래로. 셔츠 깃으로.

“…”

정민이 입을 열었다.

거울 속의 정민도 입을 열었다.

“나도 자신 없다.”

소리가 울렸다. 빈 화장실에. 타일 벽에.

“나도 모르겠다.”

손으로 세면대를 잡았다. 차가웠다. 도자기. 하얀 것.

“되는지. 안 되는지.”

거울을 봤다. 물이 흘러내렸다.

“근데.”

숨을 쉬었다.

“안 하면 모르잖아.”

수도꼭지를 잠갔다.

물소리가 멈췄다.

조용했다.

형광등이 윙 소리를 냈다. 여기도.


정민은 화장실을 나왔다.

복도를 걸었다.

발소리가 났다. 딱. 딱. 딱.

엘리베이터를 탔다.

1층.

로비를 지나갔다. 사람들이 있었다.

공무원들. 민원인들. 아무도 정민을 안 봤다.

문을 밀었다.

밖으로 나왔다.

차가운 공기. 겨울. 바람이 불었다.

숨이 하얗게 나왔다.

하늘을 봤다.

흐렸다. 회색. 눈이 올 것 같았다.


핸드폰을 꺼냈다.

하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회의 끝났어요.’

보내고 나서 봤다.

뭐라고 더 써야 할지 몰랐다.

‘3개월.’

적었다.

‘3개월 더 받았어요.’

보냈다.

잠시 후 답이 왔다.

하린: 더요?

정민: 네.

하린: 그게 좋은 거예요?

정민은 핸드폰을 봤다.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몰랐다.

정민: 모르겠어요.

정민: 실패하면 끝이래요.

정민: 협동조합 해산.

보냈다.

하린이 답하지 않았다.

1분.

2분.

정민은 걷기 시작했다. 마나밸리 쪽으로. 발소리가 났다.

3분 뒤.

답이 왔다.

하린: 정민 씨.

정민: 네.

하린: 무서워요?

정민은 멈췄다. 거리 한가운데서.

핸드폰을 봤다.

‘무서워요?’

손가락이 움직였다.

정민: 네.

정민: 무서워요.

보냈다.

하린: 저도요.

하린: 근데요.

하린: 무서우면 안 해요?

정민은 핸드폰을 봤다.

하린: 무서워도 하는 거잖아요.

하린: 그래야 바뀌잖아요.

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화면을 보고 있었다.

하린: 사무실에서 기다릴게요.

하린: 빨리 와요.


정민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걸었다.

마나밸리 쪽으로.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회색에서 주황색으로 바뀌고 있었다.

마나브리지가 보였다. 다리. 강.

정민은 다리 위에서 멈췄다.

난간에 손을 올렸다. 차가웠다. 금속. 겨울이라 더 차가웠다.

강물을 봤다.

물결이 일고 있었다. 바람 때문에.

햇빛이 물에 반사되고 있었다. 주황색. 금색.

그때도 여기 섰었다.

떠나기 전에.

‘모른다. 모르니까 가는 거다.’

그때 그랬다.

지금도 몰랐다.

되는지. 안 되는지.

근데.

정민은 난간에서 손을 뗐다.

걸었다.

다리를 건넜다.

마나밸리 쪽으로.



사무실 문 앞에 섰다.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문틈으로. 노란 불빛.

누가 있었다.

문을 열었다.

삐걱.

하린이 있었다.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노트를 펼쳐놓고. 뭔가 쓰고 있었다. 장부.

고개를 들었다.

“왔어요?”

“응.”

정민이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삐걱.

하린이 일어섰다.

정민을 봤다.

“얼굴이 안 좋아요.”

“그래요?”

“네.”

하린이 테이블로 갔다. 컵을 들었다. 물.

정민에게 건넸다.

“마셔요.”

정민이 받았다. 마셨다. 미지근했다.

“고마워요.”

컵을 내려놓았다. 탁.


하린이 정민을 봤다.

“얘기해요.”

“…”

“뭐라고 했어요? 구청장이.”

정민이 의자에 앉았다. 털썩. 의자가 삐걱거렸다.

“3개월 줬어요.”

“그다음에?”

“실패하면 끝이래요.”

“끝이요?”

“협동조합 해산.”

하린이 입을 다물었다.

의자에 앉았다. 정민 맞은편. 테이블 사이에.

“…”

“회계 감사도 받으래요. 분기마다.”

“…”

“모든 결정 기록하래요. 찬성. 반대. 전부.”

정민이 테이블을 봤다. 나무. 긁힌 자국.

“그래서요.”

“응.”

하린이 정민을 봤다.

“할 거예요?”

정민이 하린을 봤다.

“해야죠.”

“왜요?”

“안 하면 모르니까.”

하린이 웃었다. 작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 말.”

“응.”

“계속 하네요.”

정민도 웃었다. 웃음 같지 않았다.

“그것밖에 없어요.”


하린이 노트를 봤다. 테이블 위에 펼쳐진 것.

“저요.”

“응.”

“오늘 기록했어요.”

“뭘요?”

“C구역이요. 4주차.”

노트를 정민 쪽으로 밀었다.

정민이 봤다.

‘1/15. C구역.’

‘청소 당번 참여자: 15명.’

‘커피 나눔: 3회.’

‘공동 마케팅 참여 가게: 8개.’

‘신규 단골 등록: 7명.’

정민이 읽었다.

“늘었네요.”

“응.”

하린이 노트를 봤다.

“이게 증거예요.”

“증거요?”

“되고 있다는 거요.”

하린이 정민을 봤다.

“3개월이요. 더 모으면 돼요.”

정민이 노트를 봤다.

손글씨. 빼곡했다. 파란 펜. 검은 펜.

“하린 씨.”

“네.”

“고마워요.”

“뭐가요?”

“기록이요.”

정민이 노트를 밀어줬다. 하린 쪽으로.

“저 혼자였으면 못 했어요.”

하린이 노트를 받았다.

“혼자 아니잖아요.”

“…”

“같이 하잖아요.”

하린이 웃었다.

“그러니까 되는 거예요.”


창문 밖이 어두워졌다.

가로등이 켜졌다. 하나씩.

정민이 창문을 봤다.

마나밸리. 골목. 가게들.

불빛이 켜져 있었다. 몇 개.

아직.

정민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장판 조각이 있었다. 꽃무늬.

QR 스티커가 있었다.

초록 스티커가 있었다.

세 개.

손끝에 닿았다.

아직 있다.

정민이 일어섰다.

“가야겠어요.”

“집이요?”

“네.”

하린도 일어섰다.

“같이 나가요.”

문으로 걸어갔다.

정민이 문을 열었다.

삐걱.

하린이 나갔다.

정민이 나가려다 멈췄다.

뒤를 돌아봤다.

사무실. 테이블. 의자. 보드.

지도가 붙어 있었다. 세 구역. A. B. C.

C구역에 초록 스티커.

모니터가 꺼져 있었다. 검은 화면.

형광등이 켜져 있었다. 윙.

정민은 스위치를 눌렀다.

딸깍.

불이 꺼졌다.

문을 닫았다.

삐걱.


밖은 어두웠다.

가로등 불빛만 있었다. 주황색.

정민과 하린이 걸었다.

나란히.

발소리가 났다. 둘.

딱. 딱. 딱. 딱.

하린이 말했다.

“정민 씨.”

“응.”

“3개월이요.”

“응.”

“길어요.”

정민이 하린을 봤다.

하린이 앞을 보고 있었다.

“아니요.”

정민이 말했다.

“짧아요.”

하린이 정민을 봤다.

“그러니까요.”

정민이 앞을 봤다.

“빨리 해야죠.”

골목 끝에 가게가 있었다.

불이 꺼지고 있었다.

누군가 문을 잠그고 있었다.

열쇠 소리가 났다. 찰칵.

가게 주인이 돌아섰다.

정민과 하린을 봤다.

손을 들었다. 인사.

정민도 손을 들었다.

하린도 손을 들었다.

가게 주인이 걸어갔다. 반대쪽으로.

발소리가 멀어졌다.

정민과 하린이 걸었다.

마나브리지가 보였다. 멀리.

다리 위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일렬로.

물에 불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흔들리고 있었다.

정민은 불빛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무서워도 하는 거잖아요.’

하린의 말이 들렸다.

눈을 떴다.

불빛이 흔들리고 있었다.

꺼지지 않았다.


-계속-



" 나도 자신 없다. 근데 안 하면 모르잖아. "

" 실패하면 접으세요. 협동조합 해산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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