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장 - 습관

소설 도시는 배우지 않는다. 23장: 영원한 베타버전

by 마나월드ManaWorld
main.png 3부 8장: 영원한 베타버전

봄.

아침.

정민은 눈을 떴다.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밝은 빛. 따뜻한 빛. 봄 햇살.

커튼 사이로. 줄무늬처럼.

시계를 봤다. 7시 15분.

화요일.

일어났다.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 어깨에서 힘이 빠졌다.

옷을 입었다. 셔츠. 청바지. 편한 옷.

거울을 봤다.

얼굴이 달라 보였다. 뭐가 다른지는 몰랐다.

그냥 달랐다. 눈 밑 그림자가 옅어졌나.

입꼬리가 올라갔나. 모르겠다.

가방을 들었다.

문을 열었다.

밖으로 나갔다.


마나밸리.

골목을 걸었다.

공기가 달랐다. 겨울과 달랐다. 따뜻했다. 부드러웠다.

꽃 냄새가 났다. 어디선가. 멀리서.

바람이 불었다. 살짝.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수연네 빵집. 문이 열려 있었다.

빵 냄새가 났다. 고소했다. 따뜻했다.

수연이 밖에 있었다.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호스를 들고. 물이 흘렀다.

“안녕하세요.”

정민이 손을 들었다.

수연이 돌아봤다.

“어, 정민 씨. 일찍이네요.”

“네.”

“빵 드릴까요?”

“나중에요.”

“알았어요.”

수연이 웃었다. 주름이 잡혔다. 손을 흔들었다.

정민이 걸었다.


골목 끝에 아이들이 있었다.

세 명. 초등학생쯤. 가방을 메고 있었다.

뛰어다니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소리가 났다. 깔깔깔.

한 아이가 넘어졌다. 엎어졌다. 무릎에.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입이 벌어졌다.

옆 아이가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넘어진 아이가 손을 잡았다. 일어났다.

울지 않았다.

무릎을 털었다. 흙이 묻어 있었다.

다시 뛰었다.

웃음소리가 골목에 울렸다. 깔깔깔.

정민은 그걸 보다가 걸었다.


협동조합 사무실.

문을 열었다.

삐걱.

안에 사람이 있었다.

지안. 노트북을 열고 있었다. 화면을 보고 있었다.

타자 치고 있었다. 딸깍딸깍.

하린.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노트를 펼쳐놓고.

뭔가 쓰고 있었다.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왔어요?”

하린이 고개를 들었다.

“네.”

정민이 들어갔다. 문을 닫았다. 삐걱.


지안이 말했다.

“복구 끝났어요.”

“뭐가요?”

“서버요. 데이터요.”

지안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화면이 켜져 있었다. 대시보드.

지도. 색깔. 숫자.

“폭우 때 날아간 거 다 복구했어요.”

정민이 모니터 앞으로 갔다.

봤다.

‘유동인구: 일평균 1,847명’

‘체류시간: 평균 31분’

‘재방문율: 48%’

숫자가 올라가 있었다. 겨울보다. 폭우 전보다.

“늘었네요.”

“네.”

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폭우 이후로요.”


정민이 화면을 봤다.

색깔이 달랐다. 겨울과.

빨간 점이 줄어 있었다. 절반쯤.

노란 점이 늘어 있었다.

초록 점도 늘어 있었다.

“여기요.”

정민이 한 점을 짚었다. 손가락으로. 프래그먼트가 있던 곳.

“노란색이네요.”

지안이 봤다.

“맞아요. 빨강에서 노랑으로 바뀌었어요.”

“왜요?”

“체류시간이 늘었어요. 8분에서 18분으로.”

정민이 화면을 봤다.

18분.

아직 부족했다. 평균보다. 31분보다.

근데 8분보다는.

두 배 넘게.


하린이 다가왔다.

모니터를 봤다.

“저기요.”

손가락으로 짚었다. 노란 점.

“거기 새 가게 들어왔어요.”

“뭐가요?”

“책방이요.”

하린이 웃었다.

“작은 거요. 헌책방.”

정민이 하린을 봤다.

“언제요?”

“지난주요.”

“몰랐어요.”

“오늘 가봐요. 같이.”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지안이 키보드를 쳤다. 딸깍딸깍.

“업데이트할게요.”

화면이 바뀌었다.

창이 떴다.

‘베타시티 OS v1.3.7’‘업데이트 중…’

진행 바가 움직였다. 천천히.

10%. 30%. 50%.

정민이 봤다.

“뭘 업데이트해요?”

“지난달 데이터요. 폭우 기록이요. 복구 과정이요.”

“다 넣어요?”

“네.”

지안이 화면을 봤다.

“실패도 넣어요. 뭐가 안 됐는지. 왜 안 됐는지.”

70%. 90%.

100%.

‘업데이트 완료.’

화면이 바뀌었다.

‘베타시티 OS v1.3.7’

‘마지막 업데이트: 2028년 4월 15일’


하린이 화면을 봤다.

“버그는요?”

지안이 웃었다.

“곧 또 생길 거예요.”

“그럼 또 고쳐요?”

“그래야죠.”

지안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운영이잖아요.”

하린이 웃었다.

정민도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정민이 창문으로 걸어갔다.

밖을 봤다.

마나밸리. 골목. 가게들.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아까 그 아이들이 보였다. 멀리서.

아직 뛰고 있었다. 학교 안 가나.

햇빛이 밝았다.

봄이었다.

하린이 다가왔다.

커피를 들고 있었다. 종이컵. 두 개.

정민에게 건넸다.

“마셔요.”

정민이 받았다. 따뜻했다.

“고마워요.”

마셨다. 쓴맛. 따뜻했다.

“하린 씨.”

“네.”

“요즘 어때요?”

하린이 창문을 봤다. 밖. 햇빛.

“알바 그만뒀어요.”

정민이 하린을 봤다.

“왜요?”

“여기가 되니까요.”

정민이 하린을 봤다.

하린이 웃었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30으로 51 못 메꾸지만.

다른 데서 조금씩 들어와요. 강의도 하고.”

“힘들지 않아요?”

“힘들죠.”

하린이 커피를 마셨다.

“근데 붙일 데가 있으니까요.”

정민은 대답하지 않았다.

창문을 봤다. 햇빛. 골목. 사람들.

“그렇죠.”

고개를 끄덕였다.

“붙일 데가 있으면 되죠.”


하린이 정민 옆에 섰다.

“정민 씨.”

“네.”

“6개월이에요.”

“뭐가요?”

“협동조합이요. 만든 지.”

정민이 계산했다. 손가락으로.

10월부터. 11월. 12월. 1월. 2월. 3월. 4월. 맞았다. 6개월.

“그러네요.”

“빨랐죠?”

“빨랐어요.”

하린이 창문을 봤다.

“느렸어요. 동시에.”

정민이 하린을 봤다.

하린이 웃었다.

“이상하죠? 빠르고 느리고.”

“…”

“근데 그런 것 같아요.”

하린이 정민을 봤다.

“6개월 동안 많이 바뀌었어요. 빠르게.”

“네.”

“근데 아직 멀었어요. 느리게.”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하린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뭔가를 꺼냈다.

스티커. 파란 것. 동그란 것.

첫날 받은 것. 아카데미 첫날. 가을.

“이거요.”

정민이 봤다.

“아직 있었어요?”

“네.”

하린이 스티커를 봤다. 손때가 묻어 있었다.

모서리가 접혀 있었다. 6개월 동안 주머니에 있었으니까.

“붙일 데 찾았어요.”

“어디요?”

하린이 보드를 가리켰다. 벽에 걸린 것.

지도 옆에 빈 공간이 있었다.

“거기요.”

“거기요?”

“네.”

하린이 걸어갔다. 보드 앞으로.

스티커를 들었다.

붙였다.

찰싹.

파란 스티커. 동그랗게.

지도 옆에.

“됐어요.”

하린이 돌아봤다.

웃었다.


정민이 보드로 걸어갔다.

스티커를 봤다.

파란 것. 첫날 받은 것. 6개월 동안 하린이 가지고 있던 것.

이제 여기 붙어 있었다.

정민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장판 조각이 있었다. 꽃무늬.

QR 스티커가 있었다.

초록 스티커가 있었다.

꺼냈다. 장판 조각을.

봤다.

낡아 있었다. 모서리가 헤어져 있었다.

색이 바래 있었다. 더 바래 있었다. 6개월 전보다.

그때부터 가지고 있던 것.

하림지구. 철거지. 비 오던 새벽.

주웠던 것.

정민이 장판 조각을 봤다.

“하린 씨.”

“네.”

“이거요.”

장판 조각을 들어 보였다.

하린이 봤다.

“그거요.”

“네.”

“아직 가지고 있었어요?”

“네.”

정민이 장판 조각을 봤다.

“어디 붙일까요.”

하린이 생각했다. 잠깐. 3초.

“거기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보드. 지도 아래. 빈 공간.

“거기 붙여요.”


정민이 걸어갔다.

테이프를 찾았다. 서랍에서. 투명 테이프.

장판 조각을 붙였다.

찰싹.

보드에.

꽃무늬. 낡은 것. 바랜 것.

거기 붙어 있었다.

지안이 봤다. 노트북에서 고개를 들고.

“그거 뭐예요?”

“장판이요.”

정민이 말했다.

“하림지구에서 가져온 거예요.”

“왜요?”

정민이 장판 조각을 봤다.

“기억이요.”

“기억이요?”

“네.”

정민이 지안을 봤다.

“도시가 배우지 않으면요. 잊어버려요.”

“…”

“이건 잊지 말자는 거예요.”

지안이 장판 조각을 봤다. 꽃무늬. 낡은 것.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오후.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화요일. 7시.

스물다섯 명.

지난달보다 네 명 늘었다.

의자에 앉았다. 웅성거렸다.

정민이 앞에 섰다.

마이크를 들었다. 익숙해졌다. 손에.

“시작할게요.”

웅성거림이 멈췄다.

“오늘은 특별한 거 없어요.”

사람들이 봤다.

“지난달 정리하고. 다음 달 계획 세우고. 평소랑 같아요.”

동욱이 손을 들었다.

“숫자는요?”

“나왔어요.”

정민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화면이 켜졌다. 대시보드.

‘겨울 → 봄 변화’‘유동인구: +14%’

‘체류시간: +22%’

‘재방문율: +11%’‘공실: -2건’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올랐네요.”

“많이요.”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올랐어요.”

“폭우 때문에요?”

수연이 물었다.

“폭우 때문이에요?”

정민이 잠깐 멈췄다.

“모르겠어요.”

“몰라요?”

“네.”

정민이 사람들을 봤다.

“숫자만 보면 올랐어요.근데 왜 올랐는지는 몰라요.”

“…”

“추측은 있어요.”

정민이 하린을 봤다.

하린이 앞으로 나왔다.

하린이 마이크를 받았다.

“저요.”

사람들이 봤다.

“폭우 밤에 있었잖아요.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노인. 수연. 동욱.

“정전됐었죠. 물 찼었죠.”

“네.”

“근데요.”

하린이 사람들을 봤다.

“다들 나왔잖아요.”

“…”

“청소 당번이니까. 화요일이니까.”

“…”

“물 빼고. 도와주고. 같이 있었잖아요.”

하린이 웃었다.

“그게 숫자예요.”

“숫자요?”

노인이 물었다.

“네.”

하린이 모니터를 가리켰다.

“유동인구. 체류시간. 재방문율.”

“그건 결과예요.”

“원인은요.”

하린이 사람들을 봤다.

“우리예요.”


조용했다.

잠깐. 3초.

노인이 박수를 쳤다.

짝. 짝. 짝.

다른 사람도 쳤다.

짝짝짝.

박수가 퍼졌다.

스물다섯 명.

크지 않았다. 근데 있었다.

동욱도 쳤다. 이번엔. 팔짱을 풀고.


회의가 끝났다.

아홉 시.

사람들이 나갔다.

“수고했어요.”

“다음 주에 봐요.”

문이 열리고 닫혔다. 삐걱. 탁.




정민과 하린만 남았다.

지안은 먼저 갔다. 노트북 들고. “내일 봐요.”

사무실이 조용했다.

하린이 의자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찰칵.

정민도 갔다.

의자를 접었다.

찰칵.

쌓았다. 구석에.

“정민 씨.”

“네.”

“내일이요.”

“내일요?”

“책방 가요. 아까 말한.”

정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점심때요.”

“알았어요.”

하린이 가방을 메었다.

문으로 갔다.

멈췄다.

돌아봤다.

“정민 씨.”

“네.”

“이거요.”

보드를 가리켰다.

지도. 스티커. 장판 조각.

“계속 붙어 있겠죠?”

“네.”

“좋네요.”

하린이 웃었다.

“잊지 않겠네요.”

“그래야죠.”

정민이 말했다.

“그래야 배우죠.”

하린이 문을 열었다.

삐걱.

“들어갈게요.”

“네.”

“내일 봐요.”

나갔다.

문이 닫혔다. 삐걱.


정민은 사무실에 혼자 남았다.

모니터를 봤다.

대시보드.

‘베타시티 OS v1.3.7’

화면 아래에 작은 글씨.

‘다음 업데이트 예정: 2028년 5월 1일’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깜빡. 깜빡.

도시의 심장박동처럼.


정민이 보드로 갔다.

장판 조각을 봤다.

꽃무늬. 낡은 것.

손으로 만졌다.

모서리가 헤어져 있었다. 거칠었다.

아직 있다.

하린 스티커를 봤다.

파란 것. 동그란 것.

아직 있다.


창문을 봤다.

밖이 어두웠다. 저녁.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주황색.

가게 불빛이 켜져 있었다.

마나밸리가 밝았다.


정민이 불을 껐다.

딸깍.

사무실이 어두워졌다.

모니터 불빛만 남았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깜빡. 깜빡.

문을 열었다.

삐걱.

밖으로 나왔다.

문을 닫았다.

잠갔다. 찰칵.



골목을 걸었다.

발소리가 났다. 딱. 딱. 딱.

가게들이 문을 닫고 있었다. 하나씩.

불이 꺼지고 있었다.

아니.

불이 켜져 있었다. 아직.

몇 개는.

수연네 빵집 앞을 지나갔다.

문은 닫혀 있었다. 근데 안에 불이 켜져 있었다.

수연이 보였다. 창문 너머로.

뭔가 정리하고 있었다. 내일 준비.

정민이 손을 들었다.

수연이 봤다. 손을 흔들었다.

정민이 걸었다.


골목 끝에서 소리가 났다.

웃음소리.

아이들.

아직 밖에 있었다. 세 명. 아침에 본.

부모가 부르고 있었다.

“들어와!”

“네!”

아이들이 뛰어갔다. 집 쪽으로.

웃음소리가 멀어졌다. 깔깔깔.

정민이 걸었다.


마나브리지가 보였다. 멀리.

다리 위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일렬로.

물에 불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흔들리고 있었다.

그때도 여기 섰었다.

떠나기 전에.

‘모른다. 모르니까 가는 거다.’

그때 그랬다.

지금은.

정민이 다리 위에 섰다.

잠깐.

난간에 손을 올렸다. 차갑지 않았다. 봄이니까.

강물을 봤다.

물결이 일고 있었다. 바람 때문에.

불빛이 반사되고 있었다. 주황색. 흰색.

흔들리고 있었다.

정민이 봤다.

“아직 모르겠어요.”

정민이 말했다. 혼잣말. 작은 소리.

“완성됐는지. 안 됐는지.”

강물을 봤다.

“근데요.”

웃었다. 혼자.

“해보고 있어요.”

정민이 난간에서 손을 뗐다.

걸었다.

다리를 건넜다.

집 쪽으로.


뒤에서 소리가 났다.

삑.

QR 찍는 소리.

누군가 찍었다. 어딘가에서.

정민은 멈추지 않았다.

걸었다.

발소리가 났다. 딱. 딱. 딱.


마나밸리가 뒤에 있었다.

불빛이 켜져 있었다. 아직.

하늘을 봤다.

별이 보였다. 몇 개.

달이 보였다. 거의 다 찼다.

구름이 없었다.

맑았다.

정민이 걸었다.

집으로.


사무실에서.

모니터가 켜져 있었다.

아무도 없었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깜빡. 깜빡.

화면에 글씨가 떠 있었다.

‘베타시티 OS v1.3.7’

‘상태: 정상 작동 중’

‘다음 업데이트 예정’

커서가 깜빡였다.

깜빡.

깜빡.


-계속-



" 도시가 배우지 않으면요. 잊어버려요. "

" 아직 모르겠어요. 완성됐는지. 근데 해보고 있어요. "

이전 23화22장 - 수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