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도시는 배우지 않는다. 에필로그
1년 후.
새벽.
정민은 눈을 떴다.
창문으로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희미한 빛. 새벽 빛. 파란색. 회색. 섞여 있었다.
시계를 봤다. 5시 47분.
일찍 깼다.
눈을 감지 않았다.
일어났다.
창문을 열었다.
공기가 들어왔다. 차가웠다. 새벽 공기. 코끝이 시렸다.
밖을 봤다.
마나밸리가 보였다. 멀리.
아직 어두웠다.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주황색.
가게들은 문을 닫고 있었다.
조용했다. 새가 울었다. 어디선가. 짹짹.
정민은 옷을 입었다. 셔츠. 청바지. 운동화.
밖으로 나왔다.
골목을 걸었다.
발소리가 났다. 딱. 딱. 딱.
아무도 없었다. 새벽이니까.
공기가 차가웠다. 숨이 하얗게 나왔다. 조금.
봄이지만 새벽은 아직.
하림지구 쪽으로 걸었다.
마나브리지를 건넜다.
다리 위에서 멈추지 않았다. 오늘은.
건넜다.
강물이 흘렀다. 아래로. 소리가 났다. 콸콸.
햇빛이 없었다. 아직. 물이 검었다.
하림지구.
골목이 보였다.
2년 전과 달랐다.
그때는.
비가 왔다. 새벽. 철거지 외곽.
젖은 장판 조각을 주웠다. 꽃무늬. 진흙이 묻어 있었다.
‘도시는 죽지 않는다. 다만 배우지 않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은.
골목을 걸었다.
가게들이 있었다.
문이 닫혀 있었다. 새벽이니까.
근데 간판이 있었다. 새 간판. 깨끗한 간판.
‘하림책방’‘하림베이커리’‘하림공방’
하림.
이 지역 이름을 딴 가게들.
2년 전엔 없던 것들.
정민이 걸었다.
발소리가 울렸다. 골목에서. 딱. 딱.
골목 끝에 건물이 있었다.
2층짜리. 벽돌. 오래된 것.
근데 달랐다.
창문이 깨끗했다. 유리가 반짝거렸다.
페인트가 새로 칠해져 있었다. 파란색. 밝은 파란색.
간판이 붙어 있었다.
‘하림지구 도시 아카데미’
정민이 멈췄다.
봤다.
1년 전.
마나밸리 아카데미가 성공하고 나서.
하림지구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도 하고 싶어요.’
정민이 갔다. 하린이 갔다. 지안이 갔다.
같이 만들었다.
두 번째 아카데미.
하림지구.
여기.
정민이 건물을 봤다.
창문에 뭔가 붙어 있었다.
종이. 하얀 것. A4.
다가갔다.
읽었다.
‘화요일 저녁 7시. 정기 모임.’
‘이번 주 주제: 골목 축제 기획’
정민이 웃었다. 혼자. 입꼬리가 올라갔다.
화요일.
여기도 화요일이었다.
정민이 걸었다.
골목을 빠져나왔다.
큰 길로 나왔다.
하늘이 밝아지고 있었다.
동쪽. 해가 뜨고 있었다.
주황색. 분홍색. 보라색.
구름이 물들고 있었다.
정민이 멈췄다. 잠깐. 하늘을 봤다.
예뻤다.
정민이 걸었다.
마나브리지로.
다리 위에 섰다.
난간에 손을 올렸다. 차갑지 않았다. 봄이니까.
강물을 봤다.
햇빛이 물에 반사되고 있었다. 주황색. 금색.
반짝거렸다.
3년 전.
여기 섰었다.
떠나기 전에.
‘완벽을 꿈꾼 도시는 배우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버스를 탔다. 떠났다. 배우러.
2년 전.
여기 섰었다.
돌아온 후에.
‘모른다. 모르니까 해보는 거다.’
그렇게 생각했다.
1년 전.
여기 섰었다.
폭우가 지나간 후에.
‘해보고 있어요.’
그렇게 말했다.
지금.
정민이 강물을 봤다.
물결이 일고 있었다.
햇빛이 부서지고 있었다. 조각조각.
바람이 불었다. 살짝.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아직 모르겠어요.”
정민이 말했다. 혼잣말. 작은 소리.
“완성됐는지. 안 됐는지.”
강물을 봤다.
“근데요.”
웃었다.
“완성 안 됐어요. 아마 영원히.”
난간에서 손을 뗐다.
“그래야 배우니까.”
정민이 걸었다.
다리를 건넜다.
마나밸리 쪽으로.
협동조합 사무실.
문을 열었다.
삐걱.
아무도 없었다. 6시 반이니까.
정민이 먼저 왔다.
들어갔다.
모니터를 켰다.
화면이 떴다.
대시보드.
지도. 색깔. 숫자.
초록색이 많았다. 1년 전보다.
빨간색이 줄었다. 많이.
노란색도 줄었다.
정민이 화면을 봤다.
구석에 작은 창이 떠 있었다.
‘베타시티 OS v1.4.2’
‘업데이트 확인 중…’
진행 바가 움직였다.
10%. 30%. 50%.
‘새 업데이트 발견’
‘v1.4.3 설치 가능’
정민이 봤다.
버튼이 있었다.
‘지금 설치’
정민이 클릭했다.
‘설치 중…’
진행 바가 움직였다.
70%. 90%.
100%.
‘베타시티 OS v1.4.3’‘업데이트 완료’
‘변경 사항: 하림지구 데이터 통합’
정민이 화면을 봤다.
하림지구.
2년 전 철거지였던 곳.
지금은 데이터가 있었다.
숫자가 있었다.
색깔이 있었다.
노란색. 초록색. 섞여 있었다.
정민이 보드를 봤다.
지도가 붙어 있었다. 마나밸리.
옆에 새 지도가 붙어 있었다. 하림지구. 1년 전에 추가한 것.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파란 것. 초록 것. 여러 개.
장판 조각이 붙어 있었다. 꽃무늬. 낡은 것.
1년 전에 붙인 것.
아직 있었다.
정민이 장판 조각을 만졌다.
손끝에 닿았다.
모서리가 더 헤어져 있었다. 1년 사이에.
색이 더 바래 있었다.
근데 있었다.
아직.
문이 열렸다.
삐걱.
하린이 들어왔다.
“일찍이네요.”
“응.”
“못 잤어요?”
“아니. 일찍 깼어.”
하린이 가방을 내려놓았다. 테이블에. 탁.
“커피 마실래요?”
“응.”
하린이 주전자를 들었다.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보글보글. 소리가 났다.
정민이 창문으로 갔다.
밖을 봤다.
마나밸리.
아침이었다. 7시.
가게들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수연네 빵집. 문이 열렸다. 불이 켜졌다.
옆 가게. 문이 열렸다. 불이 켜졌다.
하나씩.
불이 켜지고 있었다.
하린이 다가왔다.
커피를 건넸다. 종이컵.
정민이 받았다. 따뜻했다.
“고마워요.”
마셨다. 쓴맛. 따뜻했다.
“정민 씨.”
“네.”
“오늘 뭐 해요?”
“오전에 하림지구 가요. 회의.”
“오후에요?”
“여기. 데이터 정리.”
“저녁에요?”
“화요일이잖아요.”
하린이 웃었다.
“맞다. 화요일.”
정민이 커피를 마셨다.
창문을 봤다.
가게들이 문을 열고 있었다.
사람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출근하는 사람들. 학교 가는 아이들.
골목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린 씨.”
“네.”
“기억나요?”
“뭐가요?”
“처음이요. 아카데미.”
하린이 생각했다. 잠깐.
“스물셋 명.”
“응.”
“스티커 나눠줬었죠.”
“응.”
하린이 웃었다.
“그때 뭐가 될지 몰랐어요.”
“지금은요?”
“지금도 몰라요.”
하린이 정민을 봤다.
“근데 괜찮아요.”
“왜요?”
“하고 있으니까.”
정민이 커피를 다 마셨다.
컵을 내려놓았다. 탁.
“가야겠어요.”
“하림지구요?”
“응.”
“같이 갈까요?”
“아니요. 오후에 봐요.”
“알았어요.”
정민이 가방을 들었다.
문으로 갔다.
문 앞에서 멈췄다.
돌아봤다.
하린이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노트를 펼치고 있었다. 뭔가 쓰려고.
모니터가 켜져 있었다. 대시보드.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보드에 지도가 붙어 있었다.
장판 조각이 붙어 있었다.
햇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으로.
먼지가 떠다녔다. 금빛으로.
정민이 봤다.
이게 도시였다.
숫자. 사람. 불빛. 기억.
배우는 것.
“하린 씨.”
“네.”
“고마워요.”
하린이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요?”
“그냥요.”
정민이 웃었다.
“같이 해줘서요.”
하린이 웃었다.
“저도요.”
정민이 문을 열었다.
삐걱.
밖으로 나왔다.
문을 닫았다.
골목을 걸었다.
발소리가 났다. 딱. 딱. 딱.
아침이었다.
해가 떠 있었다. 밝았다.
하늘이 맑았다. 파란색.
수연네 빵집 앞을 지나갔다.
수연이 밖에 있었다. 화분에 물을 주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손을 흔들었다.
정민이 걸었다.
어디선가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게 안에서. 라디오.
밝은 멜로디. 90년대초에도 유행한 노래.
'좋아하게 될 거라고.' 누군가 따라 부르고 있었다.
정민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웃었다. 혼자.
정민이 걸었다.
골목 끝에 아이들이 있었다.
학교 가는 아이들.
가방을 메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뛰어가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울렸다. 깔깔깔.
정민이 걸었다.
마나브리지 쪽으로.
다리가 보였다.
강물이 반짝거렸다.
햇빛 때문에.
정민이 걸으면서 생각했다.
도시.
3년 전엔 배우지 않았다.
2년 전엔 배우기 시작했다.
1년 전엔 배우고 있었다.
지금은.
정민이 다리 위에 섰다.
잠깐.
강물을 봤다.
반짝거렸다.
“도시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정민이 말했다. 혼잣말.
“아마 영원히.”
웃었다.
“그래서 괜찮다.”
정민이 걸었다.
다리를 건넜다.
하림지구 쪽으로.
뒤에서.
마나밸리에서.
불빛이 켜지고 있었다.
가게들.
하나씩.
하나씩.
사무실에서.
모니터가 켜져 있었다.
하린이 노트에 뭔가 쓰고 있었다. 손이 움직이고 있었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깜빡.
깜빡.
화면에 글씨가 떠 있었다.
‘베타시티 OS v1.4.3’‘상태: 정상 작동 중’
‘다음 업데이트 예정: 2029년 5월 1일’
커서가 깜빡였다.
깜빡.
깜빡.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왔다.
먼지가 떠다녔다.
금빛으로.
도시는 배우고 있었다.
이 소설은 도시재생을 주제로 삼았지만, 주제를 설명하지는 않았습니다.
설명 대신, 독자가 도시를 이해하는 자리가 아니라 도시 안에서 겪는 자리로 이동하도록 구조를 짰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사회적 의제를 다루는 소설이라기보다,
사회적 의제가 인간의 몸과 습관과 기록을 통과할 때 어떤 윤리의 형태로 남는지를
시험하는 형식의 장치에 가깝습니다.
이 장치의 핵심은 불친절함입니다. 그러나 이 불친절함은 결함이 아니라 선택이었습니다.
이 드라이함으로써, 수면 위에는 최소한의 문장만 남기고 나머지는 아래에 가라앉혀 두는 방식으로,
도시의 행정·기록·책임이라는 차가운 영역으로 옮겨 심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이야기는 끝났지만, 도시와 기록과 책임에 대한 질문은 끝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여러분의 삶과 도시에서, 그 질문이 잠시라도 이어지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