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때 죄책감이 없었다

길거리에서...

by 가람나무숲

많은 신천지인들이 그랬듯,
나 역시도 노방 전도를 했다.


말 그대로 길거리에서 사람들을 붙잡고,
전화번호를 받아내는 일.


그 전화번호 한 줄이 ‘구원 후보자 리스트’로 바뀌는 순간,
그 사람은 나의 전도 대상이 된다.


“안녕하세요, 대학생인데요. 과제 때문에 잠깐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디자인과 학생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심리학과 학생이 되었다.
어느 날엔 사회복지과,
어느 날엔 교육학과.
전도는 ‘신분’을 바꾸는 일부터 시작됐다.

신천지를 나온 이후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있다.



“그땐… 죄책감이 없었어요?”


없었다.
정말로 없었다.

나는 누군가를 속이고 있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오히려 *‘저 사람을 구원해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지옥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을 붙잡는 일,
그게 내 역할이라고 믿었다.



“안녕하세요, 알바 중인데요. 1분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나는 수많은 사람 앞에 섰지만,
단 한 번도 ‘내 이름’으로 나를 소개한 적은 없었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내 역할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게 신앙이라고 믿었으니까.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어딘가 길거리에서 나를 만난 적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 나는 당신에게 내 이름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가 아니었으니까.


전도는 숫자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데려왔는지,
얼마나 ‘열매’를 맺었는지.
그게 곧 신앙의 증거였다.



결국 나는 한 명의 사람을 신천지로 전도하는 데 성공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김민수’.
첫 실적이었다.



하지만, 내 이름은 빠져 있었다.
기록지에는 전혀 다른 사람이 인도자로 올라가 있었다.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왜 내 이름이 없지?”
잠깐 서운했다.
하지만 오래 서운하지는 않았다.


그 시스템 안에서,
나는 결과보다도 ‘소속’이 우선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당연했고, 그래야만 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이미 ‘전도 = 사랑’이라는 정의를 받아들인 상태였다.

그러니 죄책감이 찾아올 틈이 없었다.
미안함보다 앞섰던 건 “그래도 한 사람 살렸다”는 자기 확신이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었다.

그렇게 8년 동안
나는 길거리에서 사람을 붙잡았고, 설문지를 건넸고,
수많은 거절과 조롱을 견디며
한 명의 ‘전도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피해자의 자리가 아니라
가해자의 자리에 서 있었다.



나는 속아 있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속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나는 그때는 몰랐다.

아니, 모른 척했다.



질문이 생기면 흔들릴까 두려웠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가해는,
가해를 ‘선한 일’이라고 믿는 상태였다.



나는 그 단계까지 이미 깊숙이 들어가 있었다.


누군가를 속였다는 사실보다,

그걸 ‘사랑’이라 믿고 있었다는게

지금의 나를 가장 무너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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