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지역의 부를 뛰어 넘은 아시아
2015년: 북미지역의 부를 뛰어 넘은 아시아
2014~2015년은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고액순자산가(HNWI) 인구와 자산 규모가 북미 지역을 처음으로 추월한 시점이었다. 2015년 북미지역 고액자산가(HNWI) 금융 자산은 16.6조 달러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2.47% 증가하는 반면, 같은 기간 아시아 지역은 17.4조 달러로 무려 10.13% 급증하며 북미 지역을 넘어섰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당시는 전반적인 글로벌 경기 둔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둔화의 가장 큰 요인은 글로벌 수요 부진과 국제 유가 급락이었다. 2014년 중반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유가는 2015년 초 50달러 이하로 반 토막 나면서 미국 내 에너지 산업, 특히 셰일 오일 기업들의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되었다. 미국의 셰일 오일 혁명으로 원유 공급이 급격히 확대된 가운데,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감산 대신 증산 기조를 선택하면서 공급 과잉이 심화되었다.
유가 급락은 소비자 측면에서는 가계의 에너지 지출을 줄여 단기적으로 소비 여력을 늘려주는 긍정적 효과가 있으나, 북미 경제 전반에는 부정적 충격이 더 크게 작용했다. 미국 내 셰일 업체들은 손익분기점을 밑도는 가격 하락으로 대규모 구조조정과 파산을 겪었으며, 텍사스, 노스다코타 등 산유 지역의 투자와 고용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또한 에너지 기업들의 부채 상환 부담이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 요인으로 확대되었다. 캐나다 역시 원유 수출 비중이 GDP의 10%를 넘어서는 구조적 특성 때문에 직격탄을 맞아, 투자 위축과 경기 둔화가 불가피했다.
또한, 연방준비제도(Fed)는 2014년 10월 양적완화(QE3)를 종료하며, 금융위기 이후 유지해온 초완화적 통화정책에서 점진적인 출구 전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15년 말에는 결국 9년 만의 금리 인상(0.25%)을 단행했는데, 이는 달러 강세를 심화시키며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즉, 북미 지역은 금융위기 이후 회복세를 유지했으나, 에너지 가격 급락, 달러 강세, 제조업 둔화, 통화정책 정상화라는 복합 요인으로 인해 성장률은 제한적이었다.
중국과 일본의 약진
2014~2015년 당시 아시아 지역도 글로벌 경기의 수요 둔화를 피해갈 수는 없었던 시기이다. 중국 역시 경제 성장률이 10%대 고속 성장기를 지나 이미 신창타이(新常态, New Normal)라 불린 7%대 수준으로 성장률이 둔화되던 시기였다. 부동산 시장 과열과 지방 정부 부채 증가가 주요 위험 요인으로 지적되었으며, 이에 따라 정부는 과잉 투자 억제와 내수 중심 경제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었다. 우리가 여기서 초점을 두어야 할 사안은 이 시기 고액자산가(HNWI)의 부와 자산가치의 변화이다. 경기가 비록 둔화되고 있던 시기이지만, 상대적으로 자산 가치가 상승했기 때문에 북미지역의 부의 규모를 역전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기존의 공공주택 임대 제도를 1998년에 폐지하고 주택 민영화를 추진한 이후, 부동산 시장이 연평균 약 20% 성장해왔다. 그러나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1선 도시에서는 높은 소득과 외부 수요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한 반면 다른 도시와의 발전 속도 격차는 뚜렷해졌다. 이에 따라 2010년 이후 정부는 부동산 대출 제한, 구매 제한 등 각종 투기 억제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부동산 시장은 과열에서 조정 국면으로 전환되었다. 이 과정에서 투자 자금은 주택 시장에서 주식 시장으로 대거 이동하게 되었다.
당시 중국은 중앙정부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낮은 부채 비율(약 20%)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적극적인 부양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2014년 11월 상하이-홍콩 증시 연계 프로그램과 같은 금융 개혁 조치는 주식 투자 열기를 고조시켰다. 정부의 증시 활성화 캠페인으로 소액 개인 투자자의 신규 계좌 개설 수가 급증했으며, 증권사 대출을 활용한 마진 거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 상하이 종합지수(SSE Composite Index)는 2014년 한 해 동안 전년 대비 53% 가까이 급등하였으며, 2015년에는 상반기에만 주가지수가 150% 가까이 폭등했으나, 6월 이후 약 40% 가까이 급락하며 거품이 빠졌다.
이 시기 주식시장은 거품과 붕괴의 변동성을 보였고, 부동산 시장은 과잉 공급과 부채 문제로 하강 조짐을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산 가치 상승 효과로 인해 2015년 중국의 고액순자산가(HNWI) 인구는 전년 대비 16.9% 증가하였다. 이 증가율은 전 세계 국가별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었으며, 일본이 전년 대비 11.4% 증가하며 두 번째로 높은 증가율을 기록하였다. 더구나 중국 부자들의 해외 자산 다변화 수요가 본격화되면서 홍콩, 싱가포르, 런던, 밴쿠버 등 주요 글로벌 금융 및 부동산 시장에 막대한 자금이 흘러 들어갔다. 이러한 글로벌 자산 이동은 아시아 부자들이 세계 금융 시장에서 점점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상황을 살펴보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 반등과 동시에 큰 충격도 있었다. 2010년 일본 경제는 강한 반등을 보이며 GDP 4.7%의 성장률을 기록했으나, 2011년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심각한 경제적, 사회적 타격을 입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피해액은 약 2천 350억 달러로 역사상 가장 큰 자연재해 피해 규모 중 하나로 기록되었고, 보험 손실만 145억~340억 달러에 달했다. 따라서 2012년 아베 신조 총리의 재집권 이후 추진된 ‘아베노믹스(세 가지 화살: 통화 완화, 재정 지출 확대, 구조 개혁)’는 시장에 막대한 유동성을 공급하였다. 그 결과 엔화 약세와 주식시장 반등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자산가들의 금융자산 가치가 크게 증가하였다. 엔화 가치는 달러당 120엔 수준까지 하락하면서 도요타, 소니 등 수출 대기업의 수익성이 개선되었고, 닛케이 지수는 2012년 말 1만선에서 2015년 2만선 가까이 상승하였다.
부동산 시장 역시 회복세를 보였다. 일본 국토교통성(MLIT) 자료에 따르면 2014년을 기점으로 전국 주요 도시의 토지 가격이 20년 만에 상승세로 전환되었고, 도쿄 금융지구를 중심으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은 6~7% 상승했다. 주거용 부동산 역시 199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저점 대비 20% 회복세를 보였으며, 초저금리(BOJ 기준금리 0.1%)와 엔화 약세에 힘입어 외국인 자금 유입이 늘어나면서 도쿄 부동산 시장은 글로벌 투자자의 관심을 끌었다.이는 일본 고액자산가들의 자산 증대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였다.
즉, 이 시기 일본과 중국의 실물 경제 지표가 둔화되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유동성과 자산 시장의 호황이 맞물리며 아시아 지역 고액자산가(HNWI)들의 자산 규모가 북미를 넘어서는 역사적인 전환점을 만들어냈다. 경제의 실물 성장률이 낮아도 금융자산이 크게 불어나면서 ‘부의 착시 효과(Wealth Effect)’가 발생한 것이다.
결국 2015년의 전환점은 단순히 경기 성장률의 차이가 아니라, 자산 가치의 변화와 자본 시장의 흐름이 아시아와 북미의 부의 지형을 갈라놓은 시기였다. 북미의 성장 둔화와 에너지 부문 충격 속에서도 일본과 중국의 자산가치 상승이 고액순자산가(HNWI) 인구를 폭발적으로 증가시키며, 아시아가 사상 처음으로 북미를 넘어서는 역사적 순간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시아 지역의 급증한 자산가치는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 금융허브를 중심으로 프라이빗 뱅킹 및 자산 관리 산업이 급성장할 토대를 마련한 사건이었다. 이러한 흐름은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직전까지도 지속적으로 북미를 상회하는 국면을 유지하였다.
Junko Fujita, Japan's Commercial Land Prices in 2015 Post First Rise in 8 Years, Japan's Commercial Land Prices in 2015 Post First Rise in 8 Years (2016년 3월 23일)
Kosaku Narioka, Land Prices Rise in Japan's Cities, Land Prices Rise in Japan's Cities - WSJ.(2013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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