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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유럽과 미국보다 아시아가 더 부자라고? (1)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by Sing

2008년 가을, 전 세계를 덮친 금융위기는 미국의 주택시장에서 시작되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라는 생소한 단어가 매일같이 뉴스에 등장했고, 그 여파는 순식간에 대서양을 건너 유럽의 금융 중심지를 강타했다. 런던과 파리, 프랑크푸르트의 대형 은행들이 무너져 내리는 모습은 단순한 금융시장의 사건이 아니라 국가 경제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거대한 균열임을 실감했다.


한국 역시 그 폭풍에서 비켜설 수는 없었다. 직접적으로 미국의 부실 채권을 많이 안고 있진 않았지만, 그러나 문제는 달리 있었다. 갑자기 얼어붙은 글로벌 자금시장은 한국의 숨통을 틀어막았고, 외화가 마르는 속도는 상상보다 빨랐다. 그해 가을, 원·달러 환율은 거침없이 치솟아 순식간에 1,500원을 넘어섰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혹시 외환위기가 다시 오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이 퍼져나갔다. 주식시장은 반 토막이 났고, 기업들은 달러를 구하지 못해 줄줄이 위기에 빠져들었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이들은, 당시 공기가 얼마나 무거웠는지를 잊지 못한다. 정부와 한국은행의 대응은 말 그대로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외환보유액을 풀어 급한 불을 끄고, 미국 연준과의 300억 달러 통화스와프 체결로 가까스로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행히 한국은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겪으며 기업 구조조정의 아픔이 있었지만, 쓰라린 교훈을 얻은 뒤였다. 한국은 다시 위태로웠지만, 결코 무너져 내리지는 않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의 부진


반면 유럽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회복 과정에서 국가별 산업 구조 차이와 유로존 체제의 구조적인 한계를 드러냈다. 특히 유로존 국가들은 단일 통화라는 틀 안에서 움직였지만, 실제 경기 회복 속도는 국가별로 큰 차이를 보였다. 따라서 EU 전체로 통합된 대규모 재정 정책을 펼치기 어려웠다.


대표적으로 수출 의존도가 약 50%에 달하는 제조업 중심의 독일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계, 자동차 산업 경쟁력을 지녔지만, 글로벌 수요 둔화가 올 때마다 성장률이 크게 출렁였다. 반면 영국은 금융과 서비스업 비중이 70%에 달했는데, 이는 2008년 위기 당시 가장 큰 타격 요인이 되었다. 런던을 기반으로 한 RBS(로열뱅크 오브 스코틀랜드)는 위기 직전까지 M&A와 고위험 자산 확대에 치중했지만, 금융위기 여파로 사실상 붕괴 직전까지 몰렸다. 결국 영국 정부가 약 450억 파운드(당시 약 850억 달러)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구제금융을 투입하며 국유화할 수밖에 없었다.


남유럽 국가들은 더욱 심각한 충격을 겪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관광 서비스업 의존도가 높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관광업체와 호텔들은 폐업이 이어졌고, 관광객 발길이 끊기면서 실업률 상승과 내수 침체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그리스의 대표 국영 항공사였던 올림픽 항공(Olympic Airways)은 비효율적 운영과 누적된 부채로 인해, 2009년에 결국 문을 닫고 말았다. 그리스는 재정위기까지 겹치면서 2012년 국가부도 위기 직전까지 몰렸다. 결과적으로 스페인은 2014년 그리스는 2017년이 되어서야 GDP가 다시 1%대 성장률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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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유럽은 제조업 중심의 독과 금융 중심의 영국, 그리고 관광·서비스 중심의 남유럽으로 산업 구조가 크게 나뉘어 있었다. 독일은 비교적 빠른 회복세를 보였지만, 남유럽은 장기 부채 위기와 고실업률에 시달렸다. 유로존이라는 이름 아래 묶여 있었으나,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을 자유롭게 조율하기 어려웠고, 그 결과 국가 간 불균형이 더 심화되었다.


또한 유럽은 고부가가치 첨단산업보다는 전통적인 제조업과 서비스업 비중이 높다 보니, 위기에서 빠르게 회복하기 어려운 체질을 안고 있었다. 구조적으로 유럽 경제는 오랫동안 ‘장기 저성장’의 늪에 머물렀다. 2008년 이후 성장률을 보면 독일과 북유럽은 그나마 1~2%대의 저성장으로 버텼지만, 남유럽은 마이너스 성장과 정체가 이어졌다. 이 구조적 불균형은 유로존 전체의 회복력을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었다. 유로존 국가별로 다른 경제적 상황과 분산된 정책으로 인해 경기 회복 뿐만 아니라 부의 성장 역시 정체기를 보였던 것이다.


아시아의 고액순자산가 부의 규모가 유럽을 넘어서다


흥미로운 것은, 같은 시기 아시아에서 나타난 흐름이었다.


2009년,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의 고액순자산가(HNWI) 자산 규모가 전년도 7.4조 달러 대비 무려 30.9% 증가한 9.7조 달러에 달했다. 이는 같은 해 유럽 지역의 고액순자산가 자산 규모인 9.5조 달러를 (전년 대비 14.45% 증가) 처음으로 넘어선 기록이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이 아시아보다 부의 총량에서 앞서 있었지만, 금융위기 이후 회복의 속도와 자산 축적의 무게 중심은 아시아로 기울기 시작했다. 이후로도 유럽과 아시아 지역간 고액순자산가 부의 규모는 꾸준히 벌어졌다.


이 전환점은 단순한 통계상의 우위 변화에 그치지 않았다. 세계의 부와 금융 중심지가 ‘서구에서 동양으로’ 이동하기 시작한 분기점이라고 볼 수 있다. 유럽은 여전히 전통 제조업과 관광업, 금융업 중심 산업 구조의 저성장을 이어갔지만, 아시아는 고성장 신흥국의 부상과 새로운 자산 축적 계층의 확대로 역동성을 보여주었다. 싱가포르, 홍콩과 같은 아시아 도시 국가들이 글로벌 오프쇼어 뱅킹의 중심지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배경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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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의 반등과 부의 축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유럽은 구조적 부채 위기와 성장 둔화로 장기간 침체에 머물렀지만, 아시아는 상대적으로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단순히 위기에서 벗어나는 수준을 넘어, 글로벌 부의 재편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중국은 금융위기를 직접적으로 겪지는 않았으나, 미국과 유럽 수요 감소로 인한 수출감소 충격을 크게 받았다. 2007년 14.2%였던 성장률은 2008년 9.7%로 떨어졌는데, 이는 중국 입장에서 심각한 둔화였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신속하게 대응했다. 2008년 11월, GDP의 13%에 해당하는 4조 위안(약 5천860억 달러) 규모 경기부양책을 발표해 인프라 건설과 중소기업 지원에 나섰다. 중국인민은행은 금리를 대폭 인하하고 지급준비율을 완화하며 대규모 유동성을 공급했으며, 국유은행들은 전년 대비 두 배가 넘는 대출을 풀어내며 시장에 돈을 쏟아부었다.


이 조치의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2010년 성장률은 10.6%로 반등했고, 상하이 종합지수는 1년 만에 80% 가까이 급등했다. 2009년 중국 하반기 부동산 시장은 더 뜨거웠다. 이미 1998년 주룽지 총리가 공공주택을 민영화한 이후로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던 시장은 글로벌 위기 이후에도 가파르게 확장됐다. 특히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의 1선 도시의 주택 가격은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중국 중산층과 신흥 부호들의 부의 원천으로 자리잡았다. 이 시기를 계기로 글로벌 자산관리 산업에서도 중국계 자산가들의 비중이 급격히 커졌으며, 부동산은 GDP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단순히 위기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위기를 기회로 삼아 내수 중심의 성장 모델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지방정부와 기업의 부채 급증이라는 부작용이 뒤따랐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세계 경제의 성장 엔진”이라는 인식은 더욱 확고해졌다. 장기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2010년대 들어 중국은 수출 중심 경제에서 내수 및 소비 중심 경제로 탈바꿈하며 성장률이 점차 둔화되는 시점이 되었었다.-신창타이(新常态, New Normal)

일본 역시 2009년 -5.4%라는 2차 대전 이후 최대 폭의 GDP 감소를 겪었지만, 15조 엔 규모의 대규모 재정 지출과 일본은행의 초저금리 정책으로 빠른 안정화를 꾀했다. 경기 부양책은 인프라와 기업 지원뿐 아니라 내수 소비 진작으로 이어지며 주식 및 부동산 자산 가격의 회복을 촉진했다. 특히 2010년대 초반 엔화 약세 정책(아베노믹스)이 더해지면서 일본 기업의 수출 경쟁력이 회복되었고, 일본 내 고액자산가(HNWI) 수도 꾸준히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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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아시아 국가들은 위기 대응 역량, 정책 실행 속도, 그리고 구조적 강점에 따라 차별적인 회복 속도를 보였다. 빠른 경기 회복세에 힘입은 중국과 일본의 부의 증가는 아시아 전체 금융 투자 환경에도 중대한 의미를 가졌다. 중국의 신흥 부호와 일본의 전통적 부호층이 동시에 확대되면서, 아시아가 단순히 ‘제조와 수출의 거점’이 아닌 ‘글로벌 자산의 축적지’로 부상한 것이다. 한국, 싱가포르, 인도 등도 함께 반등하며 역내 부의 집중이 본격화되었고, 이는 싱가포르 프라이빗 뱅킹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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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wrence White, NatWest's 16-year journey from crisis bailout to reprivatisation, https://www.reuters.com/business/finance/natwests-16-year-journey-crisis-bailout-reprivatisation-2025-05-30/?utm_source=chatgpt.com (2025년 5월 31일)


Factbox: China's stimulus by the numbers, Factbox: China's stimulus by the numbers | Reuters (2010년 11월 5일)


Philippe Aguignier, Financial Instability in China: A Real Estate Crisis Long in the Making, Financial Instability in China: A Real Estate Crisis Long in the Making | Institut Montaigne (2022년 6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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