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투자자 프로그램
글로벌 투자자 프로그램 GIP(Global Investor Programme)
이러한 거주 수요를 뒷받침하는 또 다른 제도는 싱가포르 글로벌 투자자 프로그램(GIP) 이다. 2004년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이 도입한 GIP는 고액 자산가에게 영주권을 제공하는 대신, 싱가포르의 전략산업에 대한 투자와 고용 창출을 유도하는 제도이다. 단순히 자본을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지정한 25개 첨단·고부가가치 산업—우주항공, 바이오테크, 클린에너지, 해양기술, 나노테크 등—과 직접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이 프로그램 옵션은 세 가지다. (A) 싱가포르 내 법인을 설립 및 운영, (B) 정부 승인 펀드에 투자, (C) 패밀리 오피스 설립 및 운영을 통한 투자이다.
일례로 중국 및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에서 섬유 제조업을 하시는 고객이 계셨는데,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로 이주하고자 하셨다. 자산가분은 그 당시 70대 정도 되셨고, 자녀분들은 40대 전후반으로 손주들도 있었다. 고객분 내외는 조만간 은퇴를 계획하고 계셨고, 그 전에 싱가포르로 자녀 가족까지 모두 이주하려고 준비하였다. 가장 빠르게 확실하게 싱가포르 거주 신분을 취득하는 것은 GIP를 통한 영주권이었다.
그렇지만 섬유 패션 산업은 싱가포르 정부에서 직접 지원하는 핵심 산업은 아니다. 특히 단순 제조업이라면 인건비가 높은 싱가포르에서 가능한 사업은 아니었고, 성장 산업이 아니다. 지속가능성(ESG), 디지털화, 스마트 패션 등 고도화된 형태로 진화한 경우는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으나, 전통적인 섬유 제조업은 정부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승인 받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섬유 제조업이 가장 큰 사업이었으나, 이 자산가의 경우 자재 수입 및 공급망 관리를 위해 싱가포르에 물류회사를 설립하고 투자하여 GIP 옵션 A로 가족 전체가 영주권을 획득할 수 있었다. 싱가포르는 세계적인 해운 및 해양금융 허브로서 선박 기술, 운영, 물류 등의 분야에 전략적 투자를 장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국적 제조기업, 무역기업, 패션 브랜드 등이 싱가포르에 물류 허브 또는 지역본부를 세우는 사례가 많다. 따라서 이 고객의 경우, 가족의 영주권도 획득하였고, 싱가포르 거점의 물류회사를 통해 사업 전반의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되었다.
<GIP 자격요건>
<GIP 투자옵션>
실제로 사업체에 투자하는 방식외에도 투자를 통해 영주권을 획득하는 옵션도 있다. GIP 옵션 B는 2천5백만 싱가포르 달러 (약 250억원) 이상을 승인된 GIP‑select 펀드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EDB가 지정한 7개 운용사에만 투자할 수 있다. 이들 펀드는 총 운용자산(AUM) 1조 싱가포르 달러 이상, 최소 3개 펀드 운용 경험, GIP의 투자 실적 등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만 된다. 또한 투자금의 최소 절반은 반드시 싱가포르 기반 기업에 투자하도록 의무화되어 있어, 단순 자산 증식보다는 싱가포르 기업 생태계 육성이라는 정책 목표를 담고 있다.
이 옵션의 장점은 명확하다. 자산가가 직접 회사를 운영하거나 고용 창출 의무를 부담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즉, 정부가 승인한 펀드에 투자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싱가포르 기업 성장에 기여하고, 동시에 영주권 취득의 혜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투자 대상은 벤처기업이나 신성장 산업 분야가 대부분이므로, 장기투자 성격이 강하며, 원금 보장 역시 없다. 즉, 투자 성과에 따라 수익률이 크게 변동될 수 있다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
<GIP 승인 펀드 운용사>
GIP 펀드 가운데 비캐피탈(B Capital Group)은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인 에두아르도 세브린(Eduardo Saverin)과 라즈 강굴리(Raj Ganguly)가 2015년 공동 창업한 회사로,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사를 두고 싱가포르·홍콩 등 전세계 9개 거점에서 운영 중이다. 현재까지 누적 펀드 규모는 약 63억 달러에 이르며, 주로 핀테크, 기업 솔루션, 헬스케어, 기후 테크 등 미래 성장 산업을 집중 투자 대상으로 삼고 있으며, 글로벌 네트워크와 전문성이 두드러진다. 비캐피탈 펀드 외에도 6개의 GIP 펀드 운용사 가운데 본인의 투자목적에 맞는 펀드를 골라서 투자할 수 있다.
비캐피탈의 대표적 투자 성공사례는 동남아 최대의 중고차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인 캐로(Carro)를 들 수 있다. 2015년 설립된 회사로 차량 거래·보험·애프터 서비스까지 아우르는 통합 플랫폼을 제공한다. AI 기반 알고리즘을 도입해 효율성을 극대화하면서 빠르게 시장을 장악했다. 2016년 시리즈 A 단계에서 530만 달러를 조달한 뒤, 2018~2019년 시리즈 B 라운드에서는 소프트뱅크벤처스 아시아, 싱가포르 국책펀드(EDBI), 비캐피탈이 참여해 9천만 달러 규모 투자를 유치했다. 이후 테마섹(Temasek), 말레이시아 국책펀드(PNB Capital) 등 굵직한 기관 투자자들이 합류하면서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기업가치 3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되며 IPO를 준비 중인데, 비캐피탈은 이 성장 초기부터 참여해 전략적 투자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는 GIP 펀드를 통한 투자가 단순한 영주권 취득 수단을 넘어 실질적 산업 성장의 촉매제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2022년 통계에 따르면 GIP 옵션 B를 통해 약 1억 6천2백만 싱가포르 달러가 투자되었고, 그 중 65.6%(약 9천3백만 달러)가 싱가포르 기업에 흘러 들어간 것으로 보고된다. 즉, 옵션 B는 투자자가 직접 기업을 경영하지 않더라도, 싱가포르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에 기여하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옵션 C의 경우, 패밀리 오피스를 설립하고 최소 2억 싱가포르 달러 이상 운용자산을 유지하며,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이 명시한 투자에 5천만 싱가포르 달러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GIP 요건 상향 조정>
한편, 싱가포르에서 영주권(PR)을 받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최소 3년 이상 거주 기록과 소득세 납부 이력 등이 필요하다. 매년 약 3만 명 정도에게만 영주권이 승인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며, 같은 프로파일이라도 시점이나 인종별 쿼터에 따라 탈락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GIP 투자를 통한 영주권 취득은 취업비자 거주 기록 없이 곧바로 가능하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통로로 여겨진다. 물론 심사 기준이 까다롭지만 요건을 충족한 자산가에게는 시간과 절차를 크게 단축할 수 있는 효율적 방법인 셈이다.
다만, 코로나 발생 이후 신청자가 급증하면서 2020년을 기점으로 GIP 요건은 크게 상향 조정되었다. 최소 투자 조건이 기존 대비 4배에서 10배까지 높아졌고, 패밀리 오피스 옵션도 새롭게 추가되었다. 예컨대 일반적인 패밀리 오피스는 2천만 싱가포르 달러(약 200억 원) 수준으로 설립이 가능하지만, GIP를 통한 패밀리 오피스는 최소 운용자산이 10배나 많은 2억 싱가포르 달러(약 2천억 원) 이상이어야 승인된다.
싱가포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인 로웬링(Low Yen Ling)의 발표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 약 200명의 투자자가 GIP를 통해 싱가포르 영주권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2011년부터 10여년간 5억 싱가포르 달러 이상의 투자금이 GIP를 통해 유입되었으며, 2만4천여개의 직업을 창출하였다. 매년 영주권 승인 사례가 3만여 건에 달한다는 점에서 보면, GIP를 통해 발급된된 영주권은 비중이 낮은 편이다. GIP는 단순 자산 이전 목적의 신청자를 걸러내고, 싱가포르 미래 산업 성장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글로벌 자산가만 받아들이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결국, 2010년대 싱가포르는 세제 혜택 + 제도적 장치 + 안정적 생활 인프라라는 3박자를 통해 아시아의 부를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글로벌 금융허브에서 한발 더 나아가, 고액자산가와 글로벌 기업가들의 제2의 고향으로 자리 잡으면서, 패밀리 오피스와 GIP는 싱가포르가 자산 관리 허브를 넘어 “글로벌 부의 중심지”로 도약하는 엔진이 되었다.
Singapore Economic Development Board(EDB) https://www.edb.gov.sg/
Yantoultra Ngui, Singapore's Carro targets US IPO with over $3 billion valuation, sources say, Singapore's Carro targets US IPO with over $3 billion valuation, sources say | Reuters (2025년 8월 6일)
Ovais Subhani, 200 people granted Singapore permanent residency under Global Investor Programme in last 3 years, 200 people granted Singapore permanent residency under Global Investor Programme in last 3 years | The Straits Times (2023년 2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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