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정치적 불안과 싱가포르의 반사이익
2019년 3월 31일, 홍콩 애드미럴티(Admiralty)와 센트럴(Central) 지역에서 만2천여명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주로 검은색이나 흰색 옷을 입은 시위대는 '송환법 반대' (No China Extradition!)와 '캐리 람 사퇴'(林鄭下台, Carrie Lam Step Down!) 플래카드를 들고 하커트 로드(Harcourt Road)와 퀸스웨이(Queensway)를 따라 행진했다. 분위기는 비교적 평화로웠지만, 중국 본토로의 범죄인 인도에 대한 두려움과 분노가 감돌았다.
이 첫 시위는 이후 6월 9일(100만 명 참여)과 6월 16일(200만 명 참여)로 이어지는 대규모 시위의 도화선이 되었다. 시위자들은 2014년 우산 혁명을 상징하는 우산을 들고 행진했으며, 거리 곳곳에는 손으로 쓴 포스터와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민주주의와 사법 독립을 상징하는 노란 리본도 있었다. 송환법 반대 시위는 중국 본토로 범죄인 인도를 가능케 하는 법안을 홍콩 정부가 추진하려는 것에 반대하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이를 통해 중국 정부가 중국 정부의 정치적 반대자를 탄압할 수 있다는 것이 홍콩 시민의 우려였고, 홍콩의 정치적 독립성과 민주주의가 지켜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공포였다.
덩샤오핑(鄧小平)은 홍콩과 마카오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일국양제'(一國兩制, 한 국가 두 체제)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이는 홍콩이 중국의 주권 아래로 돌아오지만, 홍콩은 홍콩 사람이 다스리는 고도자치(高度自治)를 50년간, 즉 2047년까지 보장하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1997년 7월 1일 반환식이 열리기 전, 덩샤오핑은 사망하였고, 그 뒤를 이은 장쩌민(江澤民) 주석이 홍콩 반환 절차를 주도하였다.
일국양제는 반환 이후 한동안 비교적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반환 20여 년이 흐른 시점부터는 중국이 점차 홍콩의 정치와 사회에 개입하고 있다는 인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If I don't come out this time, there might not be a next time… I don't accept the bill because Hong Kong will lose its freedoms.”
(지금 (거리로) 나오지 않는다면, 다음은 없을 수도 있다. 홍콩이 자유를 잃을 것이기 때문에 이 법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
송환법 반대 시위 초기에는 평화적으로 진행되었으나, 경찰과의 대치와 충돌이 격화되며 물포와 고무탄까지 투입되는 등 시위는 점차 격화되었다. 시위는 1년이 넘게 지속되었으며, 체포 인원만 약 1만명 이상되었고 폭동이나 불법 지회 등으로 기소된 인원은 약 2천5백여명에 달하였다. 시위 도중 경찰의 과잉 진압에 대한 논란이 상당했으며, 시위 지역의 지하철, 상점, 은행 등의 피해가 막심했다.
2020년이 되어서도 시위가 이어졌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 대규모 시위가 자제되었다. 이후 결국 송환법은 철회되었지만, 중국 정부는 더 강경한 통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2020년 6월 중국은 홍콩국가보안법을 강행하며 민주활동을 사실상 금지하게 되었다. 민주 단체를 해산하며 언론을 폐쇄하는 등 홍콩 내 반 중국 정부 시위 활동이 불가능해졌다.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를 시작으로 홍콩국가보안법과 코로나-19 제지까지 연이어지면서, 많은 홍콩 시민과 외국인들이 홍콩을 떠났다. 홍콩은 중국 본토의 제로 코로나 정책(Zero-COVID)을 추진하였고, 2020년 2월부터 중국 본토 및 해외에서의 입국을 사실상 전면 차단하였다. 사전 예고 없이 같은 건물이나 공간에 있었던 주민 전원에 대해 격리를 해야하기도 했으며 약 2년간 반복적으로 학교 폐쇄와 대체수업이 시행되었다. 홍콩은 2020년 이후 정치적 불안정과 코로나 통제로 인해 약 십만 명 이상의 시민이 해외로 이주했다. 외국인 거주자도 ⅓ 가량 줄었으며 외국계 기업의 아시아 헤드쿼터를 이전하는 사례도 증가하였다. 홍콩은 공식적으로 아시아 비즈니스 허브로서의 장점을 일부 상실하게 되었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겪으면서 상당수 외국계 기업들은 싱가포르로 아시아 지역본부를 옮겼다. 홍콩 외의 아시아 거점으로 싱가포르가 좋은 대안이 되었다. 많은 자산가들도 홍콩 금융기관에서 이탈해 싱가포르로 옮기기 시작하였다. 이는 단순히 시위와 코로나 정책에 반하는 움직임은 아니었다. 많은 이들은 2047년까지 홍콩의 자치가 인정된다고 알고 있지만, 송환법 및 홍콩 국가보안법 이슈는 장기적인 홍콩의 미래를 보여주는 예고편이라는 분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2047년 이후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이며, 이미 그전부터도 이와 같은 중국 정부의 개입이 계속 발생한다면 본래의 홍콩의 기능을 상실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로의 해외자산 집중화
홍콩이 ‘아시아 금융 허브’로서 오랫동안 굳건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었지만, 2019년 송환법 반대 시위와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은 전 세계 투자자와 다국적 기업에 신호를 보냈다. "홍콩이 더 이상 예전의 홍콩이 아닐 수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금융허브 경쟁은 단순한 도시 간 경쟁을 넘어, 아시아 지역 고액자산의 이동이라는 구조적 변화를 반영한다.
“해외로 자금을 송금하는데 제약이 없으니, 싱가포르에 계좌를 두고 이용해 보고 싶은데요.”
“달러로 투자할 상품이 마땅치 않은데, 싱가포르에서는 달러 투자를 뭘 하나요? 본국통화는 너무 약해서 달러로 싱가포르에서 계좌를 운영하려고 합니다”
“싱가포르에 있는 자산은 잘 굴려서 나중에 자녀들 필요할 때 쓰면 좋겠어요. 다른 분들은 자녀에게 어떻게 물려주나요?“
고객은 각자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다른 목적으로 싱가포르에 은행 계좌를 열고 자금을 관리한다. 대부분의 경우 개인 계좌를 열고 일단 일정 금액을 운영해본다. 그러면서 싱가포르 뱅킹 시스템을 익히고 더 큰 자산을 보내서 싱가포르에서 운영하는 것이 좋은지 판단한다. 어떤식으로 싱가포르에 자산을 두면 좋을지 옵션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다양한 형태로 자산을 분리 또는 통합해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태국 고객은 본국에서 제지 산업으로 부를 축적했는데, 본국 은행에서는 달러 자산 운용의 한계와 규제 때문에 늘 답답함을 토로했다. 싱가포르에서는 달랐다. 달러 표시 채권, 글로벌 펀드, 맞춤형 헤지펀드 구조까지 제안받을 수 있었고, 싱가포르에서 가족 신탁을 설립해 전 가족의 자산을 운영하며 상속 및 증여 전략까지 모두 세울 수 있었다. 단순히 돈을 맡기는 게 아니라, “가문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금융 서비스”를 경험한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처음에는 소규모 외화 예금 계좌를 열기 위해 싱가포르를 찾은 고객이 있었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자 자녀 유학, 현지 부동산 투자, 비즈니스 법인 설립이 겹치면서, 계좌 하나가 거대한 자산관리 플랫폼으로 확장되었다. 어느새 그 고객은 싱가포르 은행에서 제공하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부동산 딜에 참여하고, 아시아 스타트업 벤처펀드에 투자하는 등 포트폴리오가 다변화되었다.
나는 종종 고객들에게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그 자산을 관리해 줄 인프라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라고 말하곤 한다. 싱가포르의 프라이빗 뱅킹은 바로 그 인프라의 핵심이다. 단순한 ‘은행 서비스’라기보다, 각국의 부호들이 복잡한 재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어떤 방식으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지를 고민할 때 떠올리는 아시아 최고의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에는 스위스계, 영미계, 일본계, 그리고 자국계 은행들까지 글로벌 플레이어가 총출동해 있다. UBS, JP모건, 골드만삭스, HSBC 같은 이름만 들어도 무게감 있는 은행들뿐 아니라, 싱가포르 토종 은행인 DBS, UOB, OCBC도 당당히 아시아 프라이빗 뱅킹 시장의 선두주자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고객 입장에서는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할수록 서비스 품질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덕분에 싱가포르의 자산가들은 자산관리 서비스를 비교하며 선택할 수 있는 호사를 누리고 있다.
싱가포르 프라이빗 뱅킹은 단순히 예금을 받는 곳이 아니다. 글로벌 자산 다변화 전략, 맞춤형 투자 포트폴리오, 세대 간 자산 이전 설계, 패밀리 오피스 설립, 심지어는 미술품·자선 기부 같은 비금융 자산 관리까지 아우른다. 고객의 재무적 목표뿐 아니라, “가문의 자산을 어떻게 사회에 남길 것인가”라는 철학적 고민까지 함께 다루는 것이다. 나는 실제로 몇몇 고객이 상담 자리에서 “돈은 충분히 불렸으니, 이제는 어떻게 남길지를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곤 한다. 싱가포르의 프라이빗 뱅킹은 그 고민에 구체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
Hong Kong extradition: Hope and defiance among the protesters Hong Kong extradition: Hope and defiance among the protesters (2019년 6월 12일)
Monica Pitrelli, Thousands of people are leaving Hong Kong — and now it’s clear where they’re going, People are leaving Hong Kong and here's where they're going (2022년 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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