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by 만티스

태훈이를 만난 건, 그 일이 있기 2년 전. 한 와인동호회에서였다. 그 무렵 나는 겉보기에 아무 문제없는 삶을 살고 있었지만, 사실상 고기능성 알코올중독이었다. 고기능성 알코올중독은 통제력을 잃어버리고 삶이 망가지는 단순한 알코올중독과 다르다. 사람들과도 잘 지냈고, 직장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매일 술을 마셨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나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나 자신조차 '내가 통제하고 있다'라고 믿었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로 술에 깊이 의존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그 사람을 사내에서 만나고 있었으며 하루 일과는 회사가 끝나고 그 사람과 만날 수 없을 땐 집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술을 마시며 그 사람의 연락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와인에 매료되어 있었기에, 그 사람을 기다리며 와인을 마시는 건 일과 중 하나였다. 연락은 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어느 경우에도 이 제한적인 만남 속에서 기다림은 불가피한 고통스러움으로, 기다리는 시간 동안 그 사람이 내가 보인 기다림과 인내에 대해 배신하는 행위를 하게 되진 않을까 언제나 여지를 스스로에게 남기게 해 줌으로써 그 고통을 몇 배는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어떠한 믿음에서 시작된, 오랜 시간 동안 쏟아부었던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릴까 봐 나는 이 매달리는 관계를 놓을 용기는 없었다. 그러나 빈 방에 홀로 덩그러니 앉아 내게 주어진 벌과 같은 마음속 여지에 갇히는 마음으로 더 이상 혼자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와인동호회를 들기로 했다.


태훈이는 첫 모임을 갔을 때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인물이 좋았다. 나보다 서너 살은 어렸다. 훤칠한 키에 운동을 깨나 한 몸처럼 다부졌고, 하얗고 깨끗한 피부 위에 자잘한 점이 많았다. 왁스로 적당히 잘 매만진 새까만 머리는 새까만 눈썹과 함께 촉촉하게 젖은 밝은 갈색 눈동자와 대비를 이루었고 코는 오뚝했으며 코 끝이 꼭 서양사람같이 뾰족했으며 입술은 빨갰다. 뿐만 아니라 와인에 대한 지식도 해박해 특히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늘 자신 있고 넉살 좋은 태도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술 얘기를 하며 한 사람 한 사람과 친해졌다. 반대로 나는 그런 태훈이가 싫었다. 잘생긴 얼굴이 꼭 바람둥이같이 생겼고 술을 빌미로 넉살 좋게 굴어 사람들과 친해지려는 건 어딘가 불안정해 보였기 때문이다. 동호회는 어쩔 수 없이 겉으로는 대면대면 지내고 절대 친해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여느 때와 같은 주말 저녁 동호회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이번 모임은 동호회 인원 중 한 사람의 집에서 하게 되었는데 45층 고층에 발코니가 딸린 아파트였다. 부엌에 널찍한 탁상에 다 같이 모여 앉아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술을 마시며 핸드폰 화면을 이따금씩 톡톡 두들기고 있을 때였다.


"매번 뭘 그렇게 확인하세요?" 태훈이가 말했다.


당황한 나는 옆자리에 앉은 태훈이의 얼굴을 빤히 보다 웃어넘기며 말을 돌렸다.


"태훈 씨는 어떻게 그렇게 술을 잘 알아요? 술 잘하세요?"


"술은 잘 못하는데 술을 좋아해서 이것저것 먹다 보니 하하. 저 보다 술 취미 제대로 하시는 분들은 더 잘 알아요." 태훈이 말했다.


그렇게 태훈이는 내 앞에서 자기가 경험한 술을 비롯한 술과 관련된 경험담을 장황하게 늘어뜨려놓기 시작했다. 나는 술을 마시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핸드폰이 있는 쪽으로 눈길을 돌렸지만 여전히 어떤 알람도 뜨지 않았다. 오늘은 오지 않는 날이구나. 가슴이 한편이 답답해지고 짓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쯤 그 사람은 집에서 뭘 하고 있을지, 나의 존재는 집 밖에 두고 간 걸까? 또다시 지는 기분.


"상연 씨는 만나는 사람 있어요?" 태훈이가 말했다.


그러한 생각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또 더한 기다림 끝에 연락이 마침내 올 거라는 희망에 이 기다림이 더 지루해지지 않도록 나와 상관도 없는 사람과 나누는 이 의미 없고 긴 대화에 좀 더 진심을 담기로 했다.


"네, 한 세 명 정도 있어요. 연상, 동갑, 연하." 내가 말했다.


태훈이는 이상하게 반가운듯한 표정으로 진짜냐며 묻고 대답했다.


"아 그래서 중간중간에 핸드폰 확인하셨구나. 저는 이해해요. 저도 지금 두 명정도 만나고 있어요."


"두 명이요?"


"네"


"어떻게 그래요?"


태훈이는 다소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그러냐니요... 본인은 세 명 정도 있다면서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탁상 위 핸드폰에 눈을 흘기며 멋쩍게 웃었다.


"어떻게 만났어요?" 내가 물었다.


"한 명은 여자친구고 한 명은 파트너예요."


"둘은 서로 알고 있어요?"


"네, 알고 있어요."


"어떻게 그래요?"


"당연히 동의하에 만나야 서로한테 투명하고 좋죠. 솔직하지 않고 남 속이기만 하면 그게 무슨 의미예요."


나는 핸드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상연 씨야말로 어떻게 그래요? 세 명이나 말 안 하고 만나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태훈이가 말했다.


"굳이 서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요? 상처받잖아요. 태훈 씨는 몰라도 만나고 있는 사람 중 상대방은 분명 태훈 씨가 다른 사람 만나는 게 싫은데 괜찮다 하고 만나고 있을걸요?"


"그럼 싫다고 말을 해야죠. 상대한테 말을 안 하고 만나서 기만하는 게 상대한테 더 상처고 내가 느끼는걸 상대방한테 솔직하게 얘기하는 게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게 아닌가? 상연 씨도 그렇잖아요. 다 상대적인 건데 사람마다 잘 생기고 예쁘고 매력적인 건. 어떻게 충동을 안 느낄 수가 있고 다양하게 경험을 안 해보고 싶겠어요. 제가 봤을 땐 너밖에 없다는 말은 아쉬워서 하는 소리지 정말 자기 스스로한테나 상대한테 솔직한 건 인간은 언제나 충동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저는 거짓말하긴 싫어요.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 말을 듣고 내가 멍 때리고 있을 때였다.


"상연 씨랑 자고 싶어요."


"네?"


태훈이는 장난기 있는 얼굴로 수줍은 듯이 웃으며 말했다.


"상연 씨랑 자보고 싶어요."


갑자기 발코니 너머로 들리는 새소리에 나도 모르게 답했다.


"참새 잡아오면요."




















































이전 02화사랑이 아니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