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친절한 사람으로 알았다
“혹시 한국인이세요?”
낯선 메시지 알림 하나. 그땐 몰랐다. 나의 일상이 그로 인해 이렇게 무너질 줄은.
평소 SNS를 통해 세상의 소식을 접하던 내게, 이방인의 접근은 경계심보다는 묘한 설렘으로 다가왔다. 업무를 통해서도 외국 친구들과 접할 기회가 많았기에, 으레 한국에 대한 호기심 많은 외국인의 메시지 정도로만 생각했던 그때의 나. 과연 알 수 있었을까, 그 작은 설렘이 내 인생을 부정하게 만들 만큼 큰 악몽을 부르는 초대장이었다는 것을.
자신을 곧 한국 여행을 앞둔 대만인이라 소개했던 그, 나는 그의 편의를 위해 서툰 한국어 대신 영어로 대화를 이어가자고 먼저 제안했다. 평소 업무상 외국인들과 소통할 일이 많았던 내게, 낯선 언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오히려 익숙하고 편안한 영역이었으니까.
“라인으로 옮겨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메신저를 더 자주 사용해서요.”
SNS를 떠나 메신저로 대화의 장소를 옮기자고 제안했던 그, 난 오히려 그게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생각돼서 흔쾌히 동의했다. 며칠간 이어진 대화는 한국의 문화, 음식, 여행지에 대한 정보와 그의 나라에 대한 정보들로 채워졌다. 우리는 서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정성스럽게 반응했고, 나는 마치 그의 한국인 가이드가 된 기분으로 그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아마도 처음부터 빠져나갈 수 없게 설계되었던 '신뢰의 덫'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 그 상황들. 나는 제 발로 걸어 들어간 미꾸라지처럼, 다정함이라는 이름의 덫이 이중 삼중으로 쳐지는 그 상황에 나 자신을 내던졌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상처를 꺼내다]
어느 정도 내적 교류와 친밀함이 쌓여갈 즈음, 그는 자신의 아픈 개인사를 꺼내 놓았다. 아주 어릴 적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와 함께 빛바랜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가족을 잃는다는 건, 내 가슴 한편이 무너지는 것 같아.”
그의 이 말은 내게 애틋하게 다가왔다. 현실 세계에서도 쌓기 힘든 신뢰가 온라인이라는 가상공간에서 이토록 쉽게 쌓일 수 있었던 건, 그가 스스럼없이 나에게 보여주었던 이 '상처' 때문이었는 지도 모른다. 대화 중간중간 자신의 개인정보와 일상 사진을 스스럼없이 공유하는 그를 보며 나는 '모든 걸 함께하는 친구라는 게 이런 걸까.' '참 투명한 친구구나.'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이어지는 메시지. 우리는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공감대의 접점을 넓혀갔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대화가 잘 통하는 친구가 있었나 싶을 만큼, 그는 내가 듣고 싶어 하는 말과 내가 고민하는 지점들을 정확히 짚어냈다. 하지만 그 다정함 뒤에 숨겨진 서늘한 진실을 보기에, 나는 너무나 따뜻한 위로에 목말라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내가 무너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그즈음, 나에게는 남들에게 말 못 할 큰 고민이 하나 있었다. 건강검진을 받으셨던 아버지의 결과가 좋지 않았다. 암일지도 모른다는 소식, 그리고 정밀 검사를 기다리며 보내야 했던 초조한 나날들.
“괜찮을 거야. 분명 별 일 아닐 거야. 내가 함께하잖아.”
불안함과 함께하던 매일매일, 핸드폰 화면 너머로 전해오는 그의 위로는 내게 어쩌면 현실을 피해 도망가는 유일한 안식처였던 것 같다. 나 역시 그처럼 아버지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를 더욱 강력한 정서적 유대로 묶어버렸다. 비슷한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착각은 이성적인 판단마저 마비시켰다.
재검 이후 어머니를 통해서 듣게 된 사실, 어쩌면 가장 피하고 싶었던 그 이야기를 핸드폰 너머로 전해 들었을 때, 난 내 귀를 의심했다. 무너져 내리는 현실의 파편들 사이에서 이성은 힘을 잃었고, 그가 쳐놓은 덫은 기다렸다는 듯 나를 더욱 촘촘하게 옭아맸다. 마치 나의 현실이 더 깊은 늪으로 가라앉기만을 기다렸던 것처럼, 그 이후 그의 손길은 더욱 간절한 구원인 양 다가왔다. 내가 가장 약해진 틈을 타, 그는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내 삶의 중심에 들어오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