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비평 3. 『1951년, 열세 살 봉애』, 김정옥
글이란 기억을 기록하기 위해,
그리고 기억들을 대대로 후손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 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과 지구』, 황금가지, 2013.
컴퓨터에서 저장하기 아이콘은 FD(플로피디스크) 모양이다.
USB 메모리만 사용한 세대는 갸우뚱할 수밖에.
이처럼 빠른 속도로 잊혀지는 것들 사이에서
시간이 지나도 잊지 말아야 할 사실들이 있다.
그리고 작가는
세대를 이어 기억해야 할 일들을 기록한다.
한국 전쟁이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인 까닭은
동족상잔의 결과가 생존자들에게 고스란히 남아 있어서다.
〈태극기 휘날리며〉(2004)가 재미있어서 천만 영화가 된 것이 아니듯
『1951년, 열세 살 봉애』(머스트비, 2021)는 재미있는 동화가 아니다.
영화에서는
가난하지만 건강하게 살아가던 젊은이를
전쟁이 얼마나 피폐한 삶으로 내모는지 보여 주었고,
동화에서는
전쟁터 언저리에서 전쟁과 맞닥뜨린
어린이의 눈길로 한국 전쟁을 기록하고 있다.
제목에서 알아차릴 수 있듯이
1·4 후퇴 전후를 시간적 배경으로,
열세 살 봉애와 일곱 살 순득이 남매가 피란길에서 겪는 일이다.
‘김봉애’는
착하기만 해서 주인공이 된 것이 아니다.
‘오마니’가 처마에 걸어서 말리고 있는 ‘명태순대’를
재미삼아 장대로 쳐서 땅에 떨어뜨리는 동생 등짝을 갈기기도 하고,
증거도 없이 어머니 반지를 훔쳐 갔다고 영옥을 의심하고,
피란민 수용소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며
돌아가신 어머니를 원망하고 만나지 못한 아버지를 미워한다.
그래도 순득이가
큰 숟가락으로 먹으면 밥을 흘린다면서
피란길 보따리에 동생 놋숟가락을 챙기고,
칼바람이 부는 화물기차 지붕에서
모포를 던져 준 아줌마에게는
할머니가 만들어 주신 주먹밥을 내밀 줄도 안다.
봉애는
끝까지 버티고 살아남았으므로
주인공이다.
‘차영옥’은,
인민군 총에 맞아 돌아가신 어머니 곁에서
울다 쓰러진 봉애를 발로 차서 깨우고
“그래도 살아야지, 우리는.”이라며
제 목에 두른 목도리를 풀어 봉애 목에 감아 주던 ‘단발머리 여자’였다가,
화물기차 지붕에서 마주치고 나서 ‘영옥 온니’가 되었지만,
봉애 보따리를 몰래 뒤지기도 한다.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충격으로
말을 잃고 먹을 것에 집착하다가
피란민 수용소에서 결핵으로 죽은 세 돌짜리 동생 영희에게
빈 젖을 물리기도 하는 열일곱 살 언니다.
‘아주마이’는
남하하는 미군 트럭 짐칸으로 봉애 남매를 들이밀어 태워 주고,
봉애를 공장에 취직 시켜 주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봉애 어머니의 반지를 훔쳐 떠난 다음에야,
굳이 피란민 수용소 입실 명부에서
‘양옥순’으로 이름이 드러난다.
이것은 작가가
첫 장편 동화 『선재』(장수하늘소, 2016)에서
‘큰절 아줌마’와 ‘어떤 스님’뿐 아니라
‘주지 스님’ 법명도 끝내 밝히지 않음으로써
우리는 누구나 선재와 큰절 아줌마,
어떤 스님과 주지 스님이 될 수 있다고 말하던 태도와 사뭇 대비된다.1)
『1951년, 열세 살 봉애』에서는
남하하는 봉애 남매에게
하룻밤 잠자리를 내어 준 ‘황 할아버지’,
거룻배 사공 ‘최가’,
할머니네 산지기 ‘송씨’,
피를 쏟으며 마당에 쓰러져 있는 외삼촌 ‘박시완’과
외갓집 풍산개 ‘덕구’까지 한 생명,
한 생명 이름을 불러 준다.
더하여 96~97쪽과 110~111쪽에서
글 없이 가득 펼쳐진 그림은
‘룡성역’에 몰려든 사람들과
기찻길이 끊겨 숨가쁘게 풀숲으로 도망가는 사람들에게
오롯이 집중하도록 만든다.
이들이 바로
미군 트럭 짐칸에 남하하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태우려고 빽빽이 당겨 앉”는 사람들이고,
피란민 수용소인 학교 교실에서
“조촘조촘 자리를 좁혀” 봉애 남매에게 자리를 만들어 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국군이나 인민군으로 만나면 적이기 때문에 죽이려 하지만
사람으로 만나면 죽일 수 없다.”(권정생, 『몽실 언니』, 창작과비평, 1984)는 말처럼,
독자로 하여금 그저 ‘북한 사람들’이나 ‘피란민들’이 아니라
1951년 북한 지역에 살던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보도록 이끈다.
그리고 “알지도 못하는 방언을 통해 우리는
그 지역 사람들의 성격이나 삶의 모습을 느낄 수 있”2)는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바지, 혼차, 괜치않다, 보깊습네다’ 같은
북한 사투리를 쓴 것이 돋보인다.
그런데 사투리 감수까지는 아니더라도,
피란민 수용소가 있는 군산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전라도 사투리를 쓰지 않은 것은 좀 아쉽다.
평안도(오마니), 함경도(어마이), 전라도(엄니) 사투리가 함께 어우러졌으면,
지금은 국기조차 다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아니라
1951년 우리나라 ‘평양 지역’에 살던 김봉애로 만나기가 더 쉬웠겠다.
『1951년, 열세 살 봉애』는 장편으로 출간되기 전에
단편 「오늘처럼 기쁜 날은 처음이야」(《열린아동문학》 2020 봄)로 먼저 발표되었는데,
작가는
김봉애 할머니 과거사와
가족 상봉의 간절한 바람을 두 개의 꿈으로 보여 준다.
김봉애 할머니는
어머니와 동생을 만나는 꿈속에서
“이래 보고 싶은 사램은 언제고 꼬옥 만나야 하는 기 필연적인 운명인 기다.
그기 핏줄이고 민족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봉애 이름은
‘만날 봉(逢), 사랑 애(愛)’일까?
그래서인지 장편에서는
훈훈한 봄날,
봉애가 피란민 수용소를 찾아온 아버지와 만나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그러나 봄이 왔다고,
봉애가 드디어 아버지를 만났다고
날마다 순조롭기만 했을까.
그래도 봄은 봄이다.
이태째 봄 같지 않은 봄을 보내게 했던
코로나19(COVID-19)가 아직도 버티고 있지만,
올해도 봄은 왔다.
그리고 봄은 봄이다.
「작가의 말」에서
“다섯 살 아이는 북녘에 두고 오고,
두 살 아기는 피란길에 잃”은 어머니께
생생하게 들었던 일을 모티프 삼아 썼다고 밝히고 있듯이,
김정옥 작가는 실향민 가족이다.
봉애에게 봄날이 찾아온 것처럼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이 가족을 만날 수 있도록
이 땅에도 너무 늦지 않게 봄이 찾아오기를.
작가는
한반도에 찾아올 찬란한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봄이 오고 있는 길목에 이 책을 놓아 둔다.
이제 봉애 이야기를
독자가 들어줄 시간이다.
“역사는
무한히 세밀한 부분의 집합”(아이작 아시모프, 『파운데이션의 서막』, 황금가지, 2013)이며,
무한히 많은 사람들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위인은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만,
‘역사에 이름이 남지 않은 뭇사람’은 역사 그 자체가 된다.”3)
『1951년, 열세 살 봉애』의 어린 독자들이
한반도에 봄을 성큼 불러오는
역사 그 자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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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주인공이든 아니든 이름은 참 중요하다.
그런데 김정옥 작가가 이름을 지워나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리는 누구나
선재이거나 학인 스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든
우산 없이 큰비를 맞을 수 있고,
우산 없이 비 맞는 사람과 우산을 같이 쓸 수도 있다.
- 졸고, 「모든 아이들은 자란다, 선재도 함께」,
《시와 동화》 2017 여름, 267쪽.
2) 안도현, 『안도현의 노트에 베끼고 싶은 시』
- 『옛날 맨치로 다시, 사투리』(김순재 엮음, 매일신문사, 2021) 29쪽에서 재인용.
3) 졸고, 「‘100년 된 명작’을 읽는 아이, ‘100년 될 명작’을 읽는 아이」,
《어린이책이야기》 2008 여름, 171쪽.
- 출처:《시와 동화》 2022년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