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 프롤로그
전족 纏足
명사 중국의 옛 풍습.
어릴 적부터 여자의 발가락을 묶어 자라지 못하게 하는 행위.
혹은, 그렇게 자라지 못한 발을 일컫는다.
미래의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
모든 배달은 드론으로 이뤄지고,
재난 현장에도 사람 대신 드론이 투입된다.
운송은 자율주행이 맡고,
그 모든 흐름은 AI가 제어한다.
우리는 곧,
이런 세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기술은 질주하는데
도시계획은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언제 시작됐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계획들이
누더기처럼 덧대어지고,
덧댄 채로 유지되고 있다.
서울의 일부 지구단위계획은
수십 년 전 계획이 여전히 유효하다.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수정해 온 것이 전부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받아들인 건
고작 20년 전 일이다.
당시엔
소니, 노키아, 모토로라, 삼성 등
수많은 제조사가 앞다퉈 스마트폰을 내놓았다.
그러나
핸드폰의 강자였던 노키아, 모토로라는 사라졌고,
듣도 보도 못한 애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 교훈을 본 일론 머스크는
자율주행차 개발에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부었다.
지금은
스마트폰은 애플이,
자율주행은 테슬라가 대변하는 시대다.
스마트폰에는 3G가 필요했고,
자율주행에는 새로운 도로 체계가 필요하다.
AI 중심의 수많은 기술은
결국 '도시'를 무대로 실현된다.
나는 어릴 적, 박경리의 『토지』를 읽으며
'전족'이란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의도적으로 발이 자라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은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가장 잔혹한 억압이었다.
지금의 도시는
전족을 한 발 같다.
스스로 자라지 못하게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 부산에 갈 일이 생겼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길 한복판에 좌판이 깔리기 시작했다.
골목에 활기가 돌았고,
거리에는 힘이 느껴졌다.
그 이색적인 풍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며칠 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시청 게시판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우리 중심지 보행로에도
그런 방식의 활성화를 시도해 보자는 내용이었다.
일주일 뒤, 시장실에서 답글이 달렸다.
"취지는 좋으나 시 예산 부족으로 실행은 어렵다."
그간 시청 게시판을 들락거리던 시간들이 허무해졌다.
20년이 흐른 지금,
그 거리는 공실로 넘쳐난다.
지역성도 함께 잃었다.
관광객들은 더 이상 발길을 하지 않는다.
20년 만에,
나는 다시 그 생각을 꺼내려한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온 구조적 문제들을.
이번에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형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