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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쇠사슬에 함께 묶인 죄인이라고?

그래서 서로 발맞춰 걸어야 하는 것이다.

by 이열하


1. 인용문구

"부부라는 것은
쇠사슬에 함께 묶인 죄인이다. 때문에
발을 맞추어서 걷지 않으면 안 된다."
-막심 고리키-



2. 그 문장이 내게 시로 왔다.


외돌개와 바다 동백꽃이라는 부부 이야기


<이열하>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은 외돌개여!

묵묵히 잘 견디고 있구나

삶의 애환 가득한 파도를 지닌 바다와 함께

넌 그 자리에서 더욱 견고히 버티고 서있었구나

아아, 바다도 외돌개도... 둘 다 참 외로웠구나

서로가 서로의 상처였을까

풍파 품은 바다 탓이라고,

홀로 당당한 외돌개 탓이라고

어찌 감히 그 누구의 잘못이라 말할 수 있을까


붉디붉은 동백꽃아!

매서운 눈발이 밀어닥쳐도

세찬 바람이 후려쳐도

그 꽃잎들 하나하나 따로 떼어내지 않고

굳건히 지키다가

결국 송이째 함께 뚝 떨어지는구나

꽃잎들이라고 왜 토라질 일 없으랴

주렁주렁 자식새끼들 지키려는 부부처럼

모든 것을 꾹 참았다가 함께 와락

떨어지는 것 아니겠느냐

그토록 당당한 척 버티어냈던 동백꽃이여!

눈 섞인 차가운 바람 속에서

얼마나 외롭고 고단했을까


검은 자갈들이 아득히 펼쳐진 그 끝으로,

끝없이 일렁이는 바다는 하염없이,

철썩철썩 찰싹찰싹

위로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구나

네 곁에서...


눈보라 맞으며 남편과 함께 걸었던 올레길! 걷는 것을 무척 싫어하는 남편이 그 추운 겨울 끝까지 동행해 주어 고마웠다.


3. 부부로 살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결혼 5년 차 까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무조건 맞추며 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5년에서 10년 차는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상대를 바꾸려 노력하려고 발버둥 친 것 같다. 10년 차에서 15년 차는 해도 해도 안 바뀌니 서로 체념하다가도 내 뜻대로 상대가 변하기를 바라고 바라는 마음으로 더 발악발악 했던 것 같다. 19년 차까지는 내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만 제외하고 두리뭉실 맞추어 살면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체념했었다. 그렇다면 20년 차를 바라보는 부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서로 다른 금성과 화성이 만났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모든 마찰과 오해 속에서도 서로의 박자에 귀 기울이고, 어긋난 발걸음을 맞춰 보려고 노력하기로 했다. 그렇다면 발을 맞추어 걷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각기 다른 금성과 화성은 같은 궤도로 갈 수가 없다. 각각 행성의 궤도로 가야 충돌하지 않고 궤도이탈을 안 하게 된다. 한 때는 금성이지만 화성의 궤도를 따르는 것이, 화성이지만 금성의 궤도를 따르는 것이 서로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건 착각이었다. 화성과 금성이 있는 그대로 서로의 궤도로 갈 수 있도록 인정하면서, 가장의 무게! 아내의 무게를 견디며 살다가 닳고 닳아진 '나'를 찾을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는 것이 20년을 산 부부에게 필요한 잘 사는 방법이 아닐까?


부부는 각자 행성의 궤도로 갈 수 있도록 존중해야 하며 서로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켜주고 동행해주어야 하는 것이다. 분명 구멍이 생길 것이다. 그래서 부부 아닌가? 그럴 때는 서로의 구멍을 슬쩍슬쩍 채워주고 메꾸어 주면서 가족이라는 우주에서 엄마라는 행성, 아빠라는 행성, 자녀라는 행성들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각자의 궤도대로 갈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 동행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부부의 모습은 각자 다르다. 20년 이후의 부부 삶은 자녀 키우느라 내려놓았던 '나'를 슬금슬금 꺼내어 내면의 '나'를 돌볼 수 있도록 '따로 또 같이'를 실현하며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주어야 한다. 남편도 아내도 째깍째깍 죽음의 시계가 다가오고 있다.


《나의 아내가, 나의 남편이 죽기전에 원하는 것을 해주면 어떨까? 빅토르위고의 문장 처럼 아내가 죽고! 남편이 죽고 힘들어 하지 말고》

"나는 그저 당신의 좋은 반려였고. 그대는 내게 좋은 친구이자 아내, 좋은 어머니였지. 당신이 죽은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소. 이별은 이렇게 힘든 일일 수 있는가?"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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