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Tok tok tok!"
(똑똑똑! 대나무 막대기로 나무판을 두드리는 소리)
"Tanaman! Tanaman!"
(“모종 있어요”)
20여 년 전, 어깨에 대나무 바구니를 메고 다니는 한 아저씨는 작은 모종, 화초, 잔디 뿌리를 이고 동네를 돌았다. 자카르타의 주택가에서는 정원을 가꾸는 이들이 많았고, 이런 식물 장수는 그 시절엔 참 흔했다.
어느 날, 나도 하나 사보려고
그 아저씨를 불러 조심스레 물었다.
"Ini berapa?"
(이거 얼마예요?)
"Sepuluh ribu."
(만 루피아요. Rp10.000)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잔디 몇 포기를 샀다.
‘이건 좋은 종이겠지’ 싶었다.
며칠 후, 바로 옆집 현지 아주머니가
똑같은 잔디를 천 루피아(Rp1.000)에
사는 걸 보고 말았다.
그 순간 속으로 울컥했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닌가?
하지만 말은 꺼내지 못했다.
나는 ‘외국인’이었고,
그것은 이곳에선 가격이 달라지는 충분한 이유였다.
그 후로도 비슷한 경험은 이어졌다.
시장, 길거리 음식, 심지어 교통수단에서도.
오젝(Ojek)도 그랬다
며칠 뒤, 나는 길가에서 오토바이 택시인 오젝(Ojek)을 탔다.
오젝은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교통수단이다.
혼자 탈 수 있고, 골목도 빠르게 통과한다.
당시에는 앱 없이 직접 부르는데 가격은 흥정제.
친구는 같은 거리에서 10,000루피아에 가는데
나는 25,000루피아를 냈다.
왜냐고?
"Kamu orang asing."
(너 외국인이잖아.)
그 말은 간단하고, 명확했다.
현지인은 ‘정가’를 알고,
외국인은 ‘모른다’고 여긴다.
그 차이만큼
이 도시에선 나의 얼굴에도
가격표가 붙는다.
억울했다.
‘사기당했다’는 느낌.
무시당한 듯한 자존심.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건 단순한 사기나 차별이 아니라
이 문화의 또 다른 생존 방식임을 알게 되었다.
불우이웃 돕는 셈 치자라는 마음이 커져갔다.
몇 달 후, 그 잔디 아저씨가 다시 찾아왔을 때
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마치 이미 원가 알고 있어 하듯이.
"Sepuluh ribu? Bisa delapan?"
(만 루피아? 8천에 안 될까요?)
그는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Boleh."
(좋아요.)
물론 그건 아직 ‘현지인 가격’은 아니었다.
현지 아주머니는 여전히 천 루피아에 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괜찮았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이 천 루피아를 깎았다는 사실에 나 자신이
기특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많은 거래를 했고,
때론 속았고, 때론 흥정을 성공했다.
지금은 ‘정가’가 아니라
‘적당한가’를 묻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가끔은 비싸게 산 경험이,
값진 배움으로 남는다는 걸.
그리고 그 배움이,
단순히 돈을 아끼는 기술이 아니라
‘타인의 입장에 서 보는 연습’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가격표가 없는 세상에서는
내가 내미는 말 한마디,
내가 보여주는 태도 하나가
나의 ‘가치’를 말해주기도 하니까.
by 23년 차, 자카르타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