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팔찌

by 나루터



우리는 종종 특정한 연결고리를 나중에서야 잇곤 한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서야 연결성을 찾게 되는 경우다. 나에게 많은 여행 일화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유독 인상 깊었던 경험 중 하나라면, 한 예술가를 만났던 것이다. 그녀를 만난 후,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녀의 선물을 받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특별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2017년 12월 쯤, 무더운 태국 방콕. 나는 당시 미국 유학 준비를 모두 마치고 시간이 남아 동남아시아 여행을 하고 있던 참이었다.


태국 방콕의 한 게스트하우스였다. 그 이름은 폴 게스트하우스. 방콕 카오산 로드 (Khaosan Road)에서도 외진곳 구석진 골목에 위치한 한국인이 운영하는 조그마한 게스트하우스다. 외관은 허름했다. 하지만,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최적의 장소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사실, 허름한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일층에서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형성이 되었다. 그곳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거나, 책일 읽거나, 맥주를 마시거나, 그것은 여행자 마음이었다. 그러다 배고플 때면, 바로 넘어지면 코 닿을 듯한 거리의 맞은편 로컬 식당에서 즉석으로 만들어준 모닝글로리와 똠양꿍을 먹곤 하였다. 그럴때면 그보다 더 행복할 수가 없었다. 조금만 더 나아가면 짜오프라야강이 훤히 보이는 운치있는 공원이 자리잡고 있기도 하였다. 배낭여행객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시끌벅적한 카오산 로드 일대에서도 그곳은 비교적 평화로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사라졌다. 다른 게스트하우스가 자리 잡았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더 여운이 남는 추억의 장소다.


그곳에 머물며 한 예술가를 알게 되었다. 훌라후프로 예술 댄스를 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하는 예술가였다. 그녀의 구수한 사투리는 그녀가 숨길 수 없이 부산 출신임을 드러냈다. 매번 볼 때마다, 머리에 밴드를 찬 것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매우 마른 체격이었다.


그 당시, 마침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우리는 돈을 모아서 맥주를 구매하고 파티 준비를 하였다. 그리곤 그 예술가 여성분과도 맥주를 공유하며 기쁨을 함께 나누었다.


그 예술가는 답례로 모든 사람들에게 실팔찌를 선물하였다. 그녀가 즉석에서 직접 실을 팔찌로 만들어 우리에게 착용해 주었다. 그 실은 인도산으로 매우 품질이 좋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어느 손에 팔찌를 찰지 결정해야 했다.


‘오른쪽 팔은 물질적 성공, 왼쪽 팔은 영적인 성공’과 관련이 있다고 하였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선택은 영화 매트릭스에서나 나올법한 멘트였다. 주인공 네오에게 주어진 선택과 흡사하게 느껴진다. 빨간약이냐 아니면 파란약이냐.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 팔찌가 끊어질 때, 그 소망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색깔도 고를 수 있었다.


왜 하필 이런 복잡한 조건이 주어진 것일까. 물론 오른쪽 왼쪽 그리고 색깔만 선택하면 되는 비교적 단순한 조건이었다. 그러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느껴지는 물질 그리고 영적인 거대한 두 다른 영역을 고르라고 하다니. 무엇을 선택하면 무엇을 포기하게 될 것이다. 모두다 선택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결국 선택을 하였다. 사실 특별히 오래 생각하지 않고 내린 선택이었다. 큰 의미를 두지 않고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선택을 하지 않았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결국 나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 선택이 나의 다음 행선지 그리고 곧 겪게될 경험과 이어질 것이라고는 깊이 생각해 보진 못했다. 그러나, 지금 되 돌이켜 보면 그 선택이 시작점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곤 한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같았던 선택이지 않았을까. 이미 나는 그 장소에서 그 선택을 하기로 이미 예정이 되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녀는 누구였을까? 그녀는 조용히 사라졌다. 바람처럼 말이다.


나는 그녀가 사람으로 둔갑한 천사는 아니었을까 종종 생각하곤 한다. 너무나도 신비로운 여운이 남았다.


지금 그녀의 흔적은, 그녀가 지은 노래 가사로 남아 있다.



<Sawadikra CHAI~ 사와디카 차이~>

“방콕의 골목길 어딘가 들려오는 고양이 웃음소리 따라서 걷다보면 모두 만나게 되는 곳에 내 마음 쉴곳은 여긴가 익숙한 여행이라지만 언젠가 돌아보면 모두 그립게 되는 곳에 매일 찾아오는 고양이와 다시 돌아온 이곳에서 약속이나 한듯 잠을 깨고 만나~ 사와디카 골목길 끝에서~ 사와디카 꿈에서~ 나른 나른 기타소리 들려오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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