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 주제를 바꾸고 인도로 향했다. 인도에서 나의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될 참이었다.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있다고 한다. 매우 보편적인 법칙이다. 어느것 하나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를 부인하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원인과 결과의 연결성을 정확하게 잇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인도 보드가야를 떠나려던 참이었다. 떠나려고 하니, 나를 도와주던 한 인도 현지인이 자신의 사정을 고백하였다. 그의 조카가 부모의 죽음 (병으로 인한) 으로 인해 학교에서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사기꾼이나 말할 법한 스토리였으나, 의심할 여지가 많이 없었다. 그는 머리를 밀고 있었다. 그에 따르면, 인도는 전통적으로 가족이나 친척이 세상을 떠나면 그렇게 한다고 하였다. 또한, 그가 이 사진 저 사진 보여주면서 이미 사전 작업을 미리 충분히 하기도 했다. 허풍이 좀 심해 보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나쁜 친구는 아닌것 처럼 느꼈다. 사실 현지 사정에 해박한 그 친구 덕을 좀 본것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돈이 충분하지 않았다. 2년 가까이 간소한 대학원생 생활을 이어갔던 참이었다. 학자금 대출까지 받으면서 말이다. 내가 인도로 오게된 이유도 사실은 자금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인도는 물가가 저렴한 편이다. 물론 그에게 밥도 몇 차례 사주고 이미 소정의 사례금을 기름값 명목으로 지불했다. 그러나, 부족했을 것이다.
어떤 방법이 없을까? 아직 기차표를 구매하기 전이었다. 원래는 좌석 기차표를 구매하려고 했으나, 대신에 별도의 좌석이 주어지지 않는 입석 기차표를 구매하기로 결정 하였다. 그리곤, 좌석 기차표와 입석 기차표의 차액을 그에게 건냈다. 부모를 잃은 그의 조카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심정에서. 무엇보다 돈을 조금이라도 건네지 않으면 그가 나를 쉽게 보내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그 후, 그와 작별인사를 하고 기차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기차에 올라탔다.
기차에 올라타자마자 자연스럽게 땅바닥에 앉을 곳을 찾았다. 나에게 앉을 자리는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 기차여행의 묘미 중 하나라면 입석 여행일 것이다. 현지인들의 삶을 고스란히 느껴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경험이다. 다만, 조금은 용기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입석 승차객들이 머무는 곳은 화장실 근처 출입문이 있는 주변 자리다. 냄새가 고약하다. 다행이라면 출입문을 통해서 그 고약한 냄새도 환기가 된다는 것이다. 인생의 무상함을 악취의 무상으로 배울 수 있는 값진 수행터이기도 하다. 내가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 볼 것인가. ‘악취도 한낱 감각적 현상에 불과하지 않나?!’ 말은 잘도 한다. 나는 자연스럽게 자리 한 곳을 차지하고는 앉아 있었다.
잠시 후 기차가 출발했다.
기차가 출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깡 마른 인도인이 내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내가 동북아시아 사람이라 신기했을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는 기독교인이라고 소개하였다. 인도에서 기독교 인도인은 꽤 드물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기독교에 헌신적으로 되기 시작했는지 이야기 해 주었다. 나쁜사람같은 기분은 들지 않았다. 나름, 선한 기운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내가 기억하기론 그는 특정한 기적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것이 그의 누나의 불치병과 관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기독교에 헌신하게 된 것이었다. 기적만큼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작용이 있을까?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초월적인 경험을 하고나서야 사람들은 종종 다른 삶을 살게 되곤 한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나도 그랬다. 나의 경우는 기적이라 할만큼 매우 큰 변화는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그런데, 그 인도 친구가 대화가 끝난 직후 선뜻 나에게 자신의 자리에 앉도록 제안을 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생각해보면, 그가 나에게 왜 그런 호의를 베풀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냄새나는 화장실 근처 바닥에 초라하게 쪼그려 앉아 있던 내가 불쌍해 보였을 것이다. 그가 제공한 자리는 슬리퍼 좌석 3층 중에서도 맨 꼭대기 좌석이었다. 윙윙 거리며 쉴새 없이 작동하는 팬 선풍기를 마주 보는 자리라 불편할 것 같아보이지만, 화장실 근처 땅바닥 좌석에 비하면 너무나도 럭셔리한 쿠션이 겸비한 좌석이다. 그는 다른 가족들과 함께 1층 슬리퍼에 앉아서 가면 된다고 하며 나에게 자신의 자리를 선뜻 양보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종종 3층으로 올라와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기도 하였다.
결국,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의 호의 덕분에 편안하게 바라나시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경험은 나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겨 주었다.
누군가를 돕기 위해 좌석티켓을 포기했지만, 결국 자리에 앉아서 가게 되었다.
좌석에 대한 포기가 원인이라면,
자리에 앉아서 가게 된 것은 결과 일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의 이름은 락시미 (lakshmi)였다. 남자 이름 치고는 매우 여성스러운 이름이었다. 락시미는 힌두교에서도 부와 행운의 여신으로 숭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혹시? 아무렴 어떤가. 그것은 중요 하지 않을 것이다. 오랜만에 인도에서 사람사는 훈훈한 정을 경험해 볼 수 있었다는 것이 중요하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