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태국 사찰의 스님을 한 번 더 찾아뵈었다. 스님과 함께 명상을 하였다. 그 스님은 나에게 의자에 앉아 눈을 뜬 상태로 명상을 하도록 지시하였다. 스님은 좌선을 하고 나는 의자에 앉게 한 것이다. 의자에 앉아서 명상을 하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명상을 지속하라는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느꼈다.
그리곤 몇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평소에는 좀처럼 집중하지 못했던 명상이 이상하게 잘 되었다. 내가 거주하던 곳에서는 좌선으로 30분 앉아 있기도 벅찼는데 스님과 마주보며 명상을 하니 몇 시간이 훌쩍 지난 것이다. 스님과 그 장소에 대한 왠지 모를 신비감이 느껴졌다. 이때부터 나는 함께하는 사람과 장소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내가 머무는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시내 중심가의 한 숙소에 머물고 있었다. 그곳 사찰과는 꽤 거리가 멀었다. 택시를 불러서 떠나려고 하니, 스님이 절에 있는 차를 내가 직접 운전해서 숙소까지 가도록 제안하셨다. 내가 직접 운전을 하여 숙소에 도착을 하면, 스님이 직접 운전하셔서 다시 사찰로 돌아오시겠다는 것이다.
왠지 스님을 운전하게 하는 것만 같아 조금은 찜찜했지만, 끝내 스님에게 설득을 당했다. 시내에 가는 것은 처음이라고 하셨다. 이 기회에 시내 구경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하시면서 나의 찜찜한 마음을 달래 주셨다.
그런데, 차가 좀 컸다. 내가 평소 운전하는 차보다는 조금 큰 자동차였다. 그럼에도, 자동 기어라,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게 운전석에 앉았다. 그리고 내비게이션 앱에 도착지를 찍고 운전을 시작하였다.
생전 처음 몰아보는 큰 차의 운전이었기에, 운전이 조금은 서툴렀다. 또한, 잘 모르는 길을 가고 있었으므로, 내비게이션에도 집중을 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운전 도중에 스님이 종종 이것저것 물어보시는 것이 아닌가? 나의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러 던 중, 고가 도로에 진입을 하였다. 그 후 어느 정도 달리다 보니 내비게이션 앱에서 우측으로 진입해야 한다는 신호가 떴다. 정신을 집중하였다. 우측으로 진입을 하는 도로가 여러 개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어느 지점에서 우측으로 진입해야 할지 신경이 곤두섰다. 마침, 첫 번째의 진입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곳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스님이 다짜고짜 오른쪽으로 진입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오른쪽으로 진입”
매우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조금은 찜찜하였다. 그 길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님이 하는 말을 무시하기도 뭐 했다. 무엇보다, 뒤에서 차들이 오고 있었으므로, 빨리 결정을 내려야 했다. 우물쭈물 거릴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찰나의 고민 후, 그분의 말대로 오른쪽으로 턴을 하였다.
‘스님의 말은 분명히 맞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얼마 후, 내비게이션 앱에서 길에 잘못 들어왔다는 신호가 떴다.
그렇다.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다. 그 진입로가 아니라 다음에 오는 진입로였던 것이다.
그러곤, 곧 스님은 짐작이라도 하셨다는 듯, 이렇게 말을 꺼내셨다.
“괜찮아. 괜찮아. 조금만 더 돌아가면 돼.”
이런!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나는 그분을 믿었건만,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타인을 의존하는 것만큼 편한 것도 없으리. 그러한 상황에선, 타인이 모든 것을 다 해줄 것처럼 기대를 하곤 한다. 나는 운전도 하고, 내비게이션 앱도 보고, 새로운 길을 향해서 가므로, 그분이 잘 안내해 줄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기대를 한 것이다.
세상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하면 얼마나 좋으련만. 결코 그렇게 녹록치 않다.
나 스스로 일을 해결하려고 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려는 나의 마음상태를 절실히 드러낸 경험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스스로 객관적으로 상황을 인지할 수 없었다.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