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님의 조언

by 나루터


나는 참 종교적으로 관대한 편이다. 여행을 많이 해서 그럴 것이다. 이곳저곳 많이 다니다 보니 다양한 문화를 많이 접하였다. 그러므로 다른 문화에 대한 저항감이 자연스럽게 해제되었을 것이다. 어릴 적에는 기독교에 영향을 받았고, 성장하면서 불교 및 힌두교 등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무슬림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도 꽤 있었다. 직간접적으로 이슬람 문화를 접할 기회가 꽤 있었다. 물론, 이 종교 저 종교 터울 없이 넘나 드는 것은, 내가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있지 않나.


어느 날 공부를 하던 중, 삶의 진로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무엇보다 삶이 고달팠다. 이를 고난 (suffering)이라고 해야 하나?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고난은 옵션 (즉, 선택사항)”이라는 말이 있다. 나는 무슨 옵션을 잘 못 건드렸길래 그러한 고난을 겪게 된 것일까. 몸에서부터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건강이 좋지 않음을 느꼈다. 무엇보다, 내가 하는 일이 맞는 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를 찾아갔다. 물론 계획을 하고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 머리를 식히고자 방문한 곳에서 갑작스레 아이디어가 떠 올랐다. 내가 있던 곳은 미국. 미국은 다양한 문화가 융합된 국가다. 주변에 찾아보니 태국 불교 사찰이 있었다. 나는 불교도는 아니지만, 명상을 통해서 불교문화를 접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큰 거리낌 없이 불교 사찰로 향하였다.


‘청정하게 수행하시는 스님이라면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삶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스님을 찾은 것이다.


도시 중심에서 떨어진 한적하고 조용한 사찰에 도착하니 마침 한 분이 계셨다. 보통은 노란색 로브를 입고 계시는 대부분의 태국 스님들과는 다르게 갈색 혹은 적갈색에 가까운 로브를 걸치고 계셨다.


또한 언뜻 보기에 매우 젊으신 분이었다. 내 나이 또래로 보였다. 영어는 잘 못한다고 하셨다. 물론, 겸손이었다. 그의 의사소통 방식은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어떠한 현지인보다도 뛰어났다고 느꼈다.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의사소통 방식이었다. 나는 최대한의 예의를 올리며, 나의 고민에 대해서 영어로 공유를 하였다. 그러더니, 눈을 감고 조용히 집중을 하셨다. 잠시 짧은 명상을 하는 듯해 보였다. 그러고 눈을 뜨셨다.


나에게 말했다.


“문제를 알면, 문제를 clear 할 수 있다.”


우선은, 문제를 확실히 알아야 해결할 수 있다고 하셨다. 대부분의 문제는, 문제를 확실히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그러고 보니 그렇게 느껴졌다. 나도 나의 문제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해결을 못하는 것이 아닐까? 문제를 스스로 알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들의 조언과 안내가 종종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고대 인도의 어느 날, 붓다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설법을 하고 있던 때였다. 한 왕 역시 그 자리에 참석하였다. 그런데 그는 계속해서 발을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었다. 의자 없이 땅바닥에 앉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을 것이다. 붓다는 그것을 목격하고는, 설법을 잠시 중단하고 그 왕에게 물었다.


“왜 발가락을 계속 움직이십니까?”


사실 그는 자신이 발가락을 꼼지락 거리는지도 모르고 있었다. 습관적인 행위였던 것이다. 붓다가 한 말에 스스로 발가락을 움직이고 있던 것을 자각한 왕은 바로 그 행위를 멈추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붓다가 또 말했다.


“왜 멈추십니까?”


왕이 대답했다.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왕에게 집중되는 순간이었다.


“발가락을 움직이는지 몰랐습니다. 난처하게 만드시는군요.”


그러자, 붓다가 대중들에게 말했다.


“자 보거라. 발가락을 움직이는 것을 알자 그때야 왕은 발가락을 멈추었다.”




문제를 아는 것은 매우 근본적인 해결책이다. 대부분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다양한 현상에 정신이 팔려, 근본적인 문제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곤 한다. 그러므로, 나도 스님을 찾아간 것이었다. 자 그러면 정말 근본적인 문제란 무엇인가? 불교식으로 답을 찾아본다면, 그것은 무지. 즉 모름이다. 다른 말로 하면 어리석음이다.


문제는 문제를 모른다는 것이고,


문제를 알아도,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문제를 해결하려 해도, 해결이 순탄치 않다는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