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흩날리는 날
어느 날
빛이 투명하게 내려앉은 오후. 카페 창가에 앉아 있던 나는 문득 그 이름을 떠올렸다.
리안.
이름 하나가 계절처럼 돌아오는 사람이 있다.
다 잊었다고 믿어도,
벚꽃 피는 4월이면 다시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는 10월이면 고요히 그리워지는 사람.
그와의 봄, 그와의 영화, 그와의 침묵.
모든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그 계절이 없었다면 나는 이렇게 단단해지지 못했을 것이다.
그날 밤,
그가 나를 안았을 때 알았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계절 안에 살고 있었고 서로의 온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사랑은 여전히 선명했지만 우리를 가로막는 시간과 삶의 무게는 이미 너무 멀리 와 있었다.
돌아갈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그 봄을 마음속에 접어 넣었다.
마치 오래된 사진처럼 바래도 사라지지 않는 한 장면처럼...
지금의 나는 혼자가 아니다.
여기에 닿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나만의 삶을 세워갔다.
아기의 긴 속눈썹 위로 봄날의 햇빛이 조용히 내려앉았다. 문득, 영화관을 나서던 그날 고개를 돌리며 웃던 리안의 긴 속눈썹이 겹쳐졌다.
그날 밤의 기적과 사랑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해버리면, 그가 주저 없이 모든 걸 내려놓을까 봐.
결국 내가 짐이 되어, 우리의 사랑이 흐릿해질까 봐.
그래서 나는, 내가 모든 걸 감당하면 된다고 믿었다.
혹시라도
어느 날 그와 다시 조우한다면
나는 그저 미소 지을 것이다.
"잘 지냈어?"
그 말 한마디면 충분하겠지.
우리의 계절은 끝났지만
그 기억은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으니까.
그해 봄, 너라는 계절이 왔다.
그리고 나는 너라는 계절을
한 번도 완전히 떠나보낸 적이 없다
…
다시 꽃잎이 열 번 흩날리고 난 후
교내 신문에 작은 기사가 실렸다.
신임 교수 부임 소식
해외에서 활발히 연구 활동을 이어온 리안 박사가 이번 학기부터 본교 의과대학 교수로 부임한다.
희귀 질환 연구의 성과
리안 교수는 국제 저명 학술지에 꾸준히 논문을 발 표하며, 희귀 질환 분야 연구에서 독창적인 성과를 인정받아 왔다.
그의 연구는 학문적 열정뿐 아니라 개인적 경험과 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연구에 헌신해 온 삶
사적인 삶보다 학문과 연구에 몰두해 온 그는, 동료 연구자들 사이에서 '학문을 삶의 전부로 삼은 인물'로 평가받는다.
환자들에게 전하는 희망
본교 관계자는 "그의 연구는 단순한 학문적 성취를 넘어선다. 백혈병 등 희귀 혈액 질환 환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라며 기대를 전했다.
리안 교수의 소감
리안 교수는 "제 연구가 환자들에게 작은 희망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보람입니다. 앞으로도 학생들과 함께 의미 있는 연구를 이어가고 싶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
소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아이를 영재원 수업에 데 려다 주러 캠퍼스를 찾았다.
캠퍼스에 들어서는 순간 예전 자신이 학창 시절을 보냈던 공기와 다르지 않음을 느꼈다. 나무 그늘, 오래된 도서관 창틀, 그리고 운동장 끝을 스치는 바람까지. 시간만 흘렀을 뿐, 공간은 그대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꽃잎 흩날리는 교정에서, 소이는 발걸음을 멈췄다.
햇살에 빛나는 중앙 도서관 앞이었다.
리안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소이에게서 곧 아이로 향했다.
순간, 리안의 가슴은 오래전 봄처럼 불현듯 설렜다.
아이의 눈매 속에서, 리안은 오래전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그는 끝내 눈을 뗄 수 없었다.
시간은 고요히 흘렀다.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서로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답이 되었으니까.
-完-
리안과 소이에게
안녕, 소이
안녕, 리안
그 눈부신 계절을 건너
나는 이제 작별을 배운다.
넘치던 말들은 한 장의 소설로
흐르던 마음은 작은 잔향으로 남아
멀어져 조용히 빛이 된다.
안녕, 소이.
불안했지만 찬란히 웃던 너.
안녕, 리안.
꿈속에서 감싸주던 이름.
나는 이제
그대가 남긴 추억 위에 서서 다시 웃는다.
행복하길 사랑이여.
작가 픽 장면
리안과 소이가 다른 공간, 같은 순간 함께 듣는 곡 ―리안과 소이가 기억한 계절의 마침표 편입니다.
여기서 처음으로 ‘아이’가 등장하지요.
작품 속 햇살은 생명력의 은유입니다.
리안의 저녁 햇살이 사라질 때, 그 빛은 지구 반대편 소이의 새벽을 데웁니다.
이는 단순한 시차를 설명하는 장면이 아니라 리안의 생명력이 소이에게 이어져 새로운 하루를 열어주는 상징입니다.
그 새벽에 소이가 품은 아이는 바로 그 빛의 결과물이자 리안과 소이를 잇는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햇살의 흐름은
리안의 저녁 소이의 새벽 아이의 존재
로 이어지는 문학적 장치로 설계되었습니다.
비록 함께하지 못해도, 사랑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방식(생명, 빛, 기억등)으로 이어진다는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