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오늘은 저와 같이해요
꼬꼬마 아기였을때부터 수년간 아빠의 손에 이끌려 캠핑을 다녀온 아들
아빠와 캠핑에 자주 경험하다보니 또래의 남자아이들보다 도끼질, 망치질을 빨리 배운편이고,
특히 캠핑장에서 빠질수 없는 고기 다루는 솜씨가 기막히게 탁월하다.
보고 해봤던게 많은 덕인지 평소 친구들과 삼겹살을 먹으러 갈때면 집게와 가위는 항상 아들 손에 쥐어져 있다한다.
(남들이 불판에서 고기태우는 모습을 지켜보기 괴롭워 본인이 다 한다니 그것도 성격이다.)
캠핑 그 후폭풍으로는 항상 체중 증가라는 큰 산을 넘어야 하지만,
그래도 노릇노릇 마이아르를 형성하며 4면을 골고루 윤이나게 반짝거리도록 갈색을 고루 입히는 솜씨는 반하지 않을수가 없다.
갑자기 일정잡은 캠핑인지라 고기와 야채, 그리고 집 수납장에서 꺼내온 통조림햄, 라면, 짜파게티, 김치가 전부이지만,
이것들만 있어도 꽉차게 1박2일은 든든하게 채울 수 있다.
보통 고기는 정육점에 가서 덩어리 한줄씩 두껍게 썰어달라고 주문한다.
대략 고기두께는 7cm정도로 요구하지만 정육점 상황에 따라서 조금씩 바뀌기도 한다.
돼지고기는 삽겹살을 선택하는 경우가 일반적이긴 하다만,
기름이 좀 적은 목살 또는 최고 가성비인 뒷다리살(후지살)을 사면 캠핑장에서 충족되는 정취까지 더해져 음식에 빛을 발한다.
오늘도 아들은 고기를 멋스럽게, 적절한 지방층의 기름을 고기 전면으로 융합시키며 노릇과 갈색의 어울림을 한껏 표핸해냈다.
먹기좋게 한입사이즈로 잘라서 주는건 여성에게 예의임을 강조하며 그 예의를 나에게 차리라 요구하면 너무 이기적일까?
캠핑장에서는 보통 젓가락은 잘 사용하지 않는 편이기에 오늘도 우리는 집개로 고기를 구워 그대로 집어 먹으니 작은 소도구을 통해서도 고기맛에 변화가 일어났다.
고기 한쌈에 오늘의 우리가족 정성이 고스란히 담겼다.
깨끗이 씻어서 정갈하게 두었던 배추와 깻잎, 그리고 쑥갓,
대략 30분동안 휴대용버너에서 노릇 바삭하게 잘 구워진 돼지고기, 집에서 가위로 썩뚝썩뚝 대충 썰어온 김치, 얇게 저며 매운맛을 조금 덜어낸 마늘과 캠핑장에서 보글거리며 즉석으로 한 냄비밥까지...
따뜻하고 보슬보슬 부드러운 냄비밥은 햇반의 맛을 절대 이겨낼수 없는 강적이기에 내가 솜씨 좀 발휘했다.
한 쌈을 이렇게 야무지게 먹다보면...
어느새 달님이 오는지도 모르고 천천히 오랫동안 많은 대화가 오가는 속에서 그렇게 숲속의 깊은 밤을 맞이한다.
든든하게 잘 먹은 아들은 아빠에게 장작을 사달라며 오랫만에 불을 태워 붉게 타오르는 불꽃속에서 푸른색을 함께 발견하며 불의 색상에서 심리적 안정을 취하기도 한다.
깊은 밤 느닷없이 낯선 손님이 찾아오셨다.
초록색깔의 청개구리
개굴개굴 개굴개굴....
숲속의 밤은 더 깊어져 갔다.
이 넓은 캠핑장에서 1박2일간 자연의 풍요로움을 누렸다.
밤동안 우리곁에 머물던 작은 풀벌레소리, 옆 개울에서 흐르는 냇가소리, 바람소리, 바람결에 떨리는 나뭇잎 소리까지...
낮과는 다른 세계와 같던 숲속에서 아빠와 아들은 밤새 여행했는가 보다.
이른 아침 허기진 아들이 곁에서 뱅뱅 맴돌며 어제 먹고 조금 남은 고기와 김치를 한데 볶고, 부대찌개도 한소끔 끓여서 쌀쌀해진 새벽녁의 온도를 조금 올려본다.
사춘기 아들은 여전히 부모와 적정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사욕을 챙기기 위한 봉사도 기꺼이 마다치 않는다.
사람과의 관계는 가족간에도, 부부간에도, 부모와 자식간에도 적절한 거리두기가 필요하다.
서로에게 과도한 관심을 넘어서 지나친 간섭과 관여는 오히려 더 먼 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아들을 깊이 사랑하지만,
내 욕심으로 아이를 채우지 않으려 한다.
묵묵히 기다려주면 어느날 자신이 길을 닦으려 하지 않을까.
기다려보지만 여전히 성에 차진 않을테다.
부족하더라도 그렇다고 부족한 빈자리를 너무 채워주려 하지 않으련다.
부족해야 부족을 알것이다.
오히려 채워주는게 당연시 되는 오류룰 범할 수도 있다.
조금 부족해도 부모는 별말없이 옆에 있어주는게 아이의 성장에 더 도움이 될수도 있다.
그저 곁에 머물고 지켜봐 주련다.
관심 없는게 아니라 아이가 어른이 되기를 기다려 주고 있는 중이다.
그것이 어쩌면 더 큰 아이를 만드는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어제와 오늘도 아들은 유쾌하게 행복하게 별탈없이 그렇게 천천히 성장해간다.
어미도...
조금씩 성숙한 어미가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