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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무수분 알아?

이번에는 고기먹고싶어요

by 글날 스케치MOON

"엄마, 그 뭐냐, 무수분이 뭔지 알아?

보쌈할때 물에 삶는것 보다 찌는게 좋대.

무수분은 수분이 없다는 말이야. 몰랐지?

이거 할라면 양파가 필요해.

양파물로 고기를 삶는건데, 정확하게 말하면 양파즙으로 고기를 찌는거야."


아들은 지금 나에게 뭐라고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내가 못알아 듣는 걸까? 아니면 혼잣말을 하는 걸까?

무수분? 양파? 양파에서 나오는 물로 찐다고? 뭘 쪄? 고기를?

뭐 그걸 어떻게 한다는건데?


몇번 요리를 해보더니 이제는 마트에 가서 척척 재료코너를 알아서 찾아가고 물건도 살피며 고른다.

나보다 더 나아지는거니?

신선도가 중요한 고기는 제일 마지막에 사야한단다.

아들이 알려줬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맞더라니...

보통 우리도 냉동식품이나 고기류를 장보는 중 가장 마지막 선택지로 옮겨두는 것처럼...

어고 이제는 계산도 척척...

나는 뭐 해야 하는걸까?

그냥 아들 사진만 찍어주면 되는것이니~?


주방에 돌아오더니 재료를 꺼내 손질을 시작했다.

일단 쌈싸먹을 배추도 좀 씻어두었는데, 제일 먼저 한 이유는 장시간 마트에서 진열대에 있던탓에 시들었던 배춧잎이 좀 살아나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이후 무와 파를 손질하고는 야채 손질 뒷정리를 동시에 하면서 주방을 효율적으로 사용해본다.

손놀림과 정리하는 폼이 제법 야무지다.


무를 길죽하게 썬 다음에 소금과 올리고당, 설탕을 넣고 기다리면서 무쌈도 준비해본다.

이녀석에게 보쌈무김치도 알려주며 나름의 팁도 전수해준다.

요리는 정리도 필수다.

야채 손질을 하면서 나온 껍질들은 바로바로 수시로 챙겨서 버리자.

냉장고에 좀 남은 양념장들이 있는것 같으니 오늘은 치트키좀 써볼까나?

닭갈비 양념장인데 돼지고기에 쓴다고 별일은 없겠지.

고기에 밑간이 배도록 양념을 조금 바르고 나서는, 간이 밸때까지 조금 기다리는게 좋을듯 하다.

고기 양념이 스며들때까지 잠시 양파를 좀 썰고서 냄비에 양파를 깐다.

바닥에 촘촘히 양파를 깔고, 고기를 얹어주고, 고기위에 대파를 같이 얹혀준 다음 가스에 올리고 나면...

양파물이 나오겠지?

그 물이 냄비를 태우지 않을 것이고, 양파즙이 끓으면서 고기는 자연스럽게 익어가고...

“엄마,

월계수잎 집에 있어?

돼지 잡내를 없애려면 월계수잎도 있는게 좋아.“

본인의 순서가 맞는지 복기하면서 다시한번 유튜브를 점검하고...

잠시 후에 아빠를 부른다.

"아빠, 이리 좀 와보세요. 냄새 맡아봐"



자, 이젠 고기 잘 삶아졌는지 한번 볼까?

뜨거우니깐 기다려봐.

잠시만...

음.... 엄마 다된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도 오셔서 함께 식사하세요.

오늘 제가 만든 요리는 다 했습니다.

아, 엄마가 보쌈 무김치 양념만 좀 해주시고 나머지는 제가 해낸거랍니다.

고기만 드시면 너무 칼로리가 높을듯 하니 야채로 배추와 당근도 함께 드세요.

고기랑 먹을 마늘도 넉넉하게 준비해두었습니다.


손주 요리에 외할머니는 입을 못 해다물고,

외할아버지 역시 입이 귀옆에 놓여 있으시다.

할머니, 저 용돈 주시는 거에요?

감사합니다.

주신 용돈은 제가 쓸모있게 잘 사용하겠습니다.





아들의 요리가 나날이 손끝에 힘이 생기고, 나름의 성장중에 있다.

장르에 따라 자신의 철학을 요리에 담기 시작했으며,

이제는 남의 도움 없이도 혼자의 힘으로 척척 준비하고 일궈간다.


우리가 아들에게 바랬던 마음은 한가지.

혼자 스스로 일어나기.

지금의 과정이 몇 번만 더 반복되고나면 더이상의 요리강습이 아닌, 이제는 스스로 즐기며 음식의 맛과 색과 분위기까지 잘 고려하며 준비할수 있을 듯 하다.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간을 보고, 상을 차리고, 이야기를 나누며 밥을 먹고, 마지막으로는 요리를 한 댓가로 용돈도 받던 아들…

어느새 아들은 몇주 사이 요리가 더 성장했다.

적어도 이 어미의 눈에는 그리 보였다.


아들은 어른이 베풀어 주시는 음식의 정성과 그 깊이를 한걸음 두걸음 이해해 나가기 시작했다.

어른이 베풀어 주는 식사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아들은 오늘 엄마의 도움이 없이 또 한번의 성공사례를 만들었다.

이런 성공이 모이고, 그 모듬이 조금씩 쌓여지면서 본인의 자신감이 더욱 만들어지면...

또한 기쁨과 동시에 성취감도 더욱 커지리라..




아이가 크는 먼큼 엄마도 기다리는 기쁨을 느끼며 그 기다림을 즐기고 있다.

기다림은 별 것 아니다.

그저 묵묵히 지켜봐 주는것,

그리고 별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


아이의 마음이 담긴 돼지고기는 입에서 녹는다.

마치... 부드러운 솜사탕처럼, 아니 그보다 더욱 부드러운 따뜻한 아이스크림처럼...


고기에 무슨 조미료를 넣은 거니.

내가 지금까지 만들었던 보쌈도 이런 맛을 낸 적이 없는데...

아들 너는 어떻게 한거니.



아들은 오늘도 주방에서 빛이 났다.

아들의 미소도 빛이났다.

아들은 오늘도 요리가 끝난 이후에 홀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본인의 성장이 행복이란 사실을 언젠가는 깨닳는 날이 곧 올것이니....

그때까지는 엄마가 지켜봐줄께, 그저 지금처럼만 탈 없이 자라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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