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 똥꼬를 꼭 잘라야 해요?
짙어져 가는 녹음 아래 삼복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초복이다.
우리집은 앵앵~ 빨간색의 건강 경고등이 울려퍼진다.
아들의 귓가에 knock knock!!
초복이 오늘임을 알리며 덧붙이길,
"아들아 생닭 사러 마트가자. 오늘 초복인데 그냥 지나가면 섭하지 않겠니? 아빠 몸보신 해드려야지. 아빠는 여름을 견디는게 쉽지 않으신 분이기 때문에 보양식을 드셔야 하는데 아들이 직접 만들어주면 더욱 기운이 나실꺼야"
마트 냉장고가 이상하게도 텅텅 비어있어서 설마 닭이 있을까 싶었는데 다행히도 복날이라 그런지 닭 두마리를 간신히 살수 있었다.
(마트가 다음날부터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간다고 물건을 싹 빼놓은 상태라 구비되어 있는 상품내에서만 간신히 재료를 살수가 있었다.)
꼼꼼히 백숙재료를 보다가 아들의 발걸음이 과자코너에서 멈추었다.
유인책이 필요치 않겠나 싶어 아들의 품에 바나나킥 한봉지를 선물해주니 바로 입이 헤벌쭉...
요리해야 하니 어서 집에가자고 보챈다.
한 끼에 모두 먹는게 좋을 듯 하여 닭은 두마리만 샀지만,
사실상 남자들 둘에게 1마리씩 올려줄 생각을 하니 생각만으로도 그저 흐뭇하기만 한 엄마다.
닭을 꼼꼼히 세척하라 당부하고,
꽁지의 기름샘은 제거해야 한다고 하니
"잉? 똥꼬도 잘라내라고?"
덧붙여 닭껍질도 모두 벗기라 했더니 내심 귀찮다고 툴툴거리면서도 시키는대로 잘 따라와 주는 기특한 녀석이다.
닭 날개와 다리를 들어가며 껍질을 살살 벗겨내고, 닭 몸통안에도 깨끗하게 잘 세척을 해본다.
원래 찹쌀도 넣고 대추나 밤도 넣으면 좋겠다만, 이번에는 스킵하자꾸나.
찹쌀 넣으려면 다리를 꼬아서 꽁지 입구를 막아야 하는데 아무래도 닭이 너무 작아서 다리가 서로 안꼬아진다!
끓는 물에 생닭을 살짝 데쳐서 잡내를 먼저 없앤 다음 본격적으로 대파와 닭을 한데넣고 삶아내니 깔끔하게 맑은 육수가 우러나와서 백숙의 맛에 군더더기가 없다.
껍질을 벗겨내서 그런지 닭의 기름기는 대폭 줄어들었고,
대파가 많이 들어가서 백속에 향이 가득 배어들어 침샘을 돋우었다.
아들은 약재 냄새를 싫어하기에 황기나 인삼은 과감하게 생략한 채 닭 본연의 맛에 더욱 집중을 했고,
그 덕에 묵직하지 않은 가벼운 백숙이 아들의 손에서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
치트키로 냉장고에 있는 치킨스톡을 조금 넣어주었는데 역시 치트키의 위력은 대단히 매력적인 맛을 끌어낸다.
정말이지 맛이 딱 좋다!
널찍한 대접에 닭 한마리와 국물을 넣고 나니 닭 한마리가 대단히 풍성하게 보인다.
일단 엄마와 아빠가 먼저 맛보라며 나에게 그릇을 먼저 내밀어주었다.
뽀얀 닭의 속살과 맑게 우러난 닭 육수는 백숙의 맛을 더욱 깔끔하게 음미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밑반찬은 소박하지만 아들의 백숙이 크게 차지하고 있으니 그 어떤 식탁도 부럽지 않았다.
아들의 요리는 매 순간마다 눈에 띄이게 달라지고 발전해갔다.
계절적인 부분도 영향이 있고,
요리의 주제에 따라서도 변동이 있을테지만,
가장 큰 발전이라 한다면 요리에 대한 정성이 깃들여지는 정도와 요리 안에 본인의 가치관을 담아 내기 시작했다는 게 큰 변화일 것이다.
자신의 요리가 부모의 마음에 기쁨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본인 스스로도 기쁨으로 느끼고,
심지어 본인이 만든 음식을 맛있다고 정신을 잃고 먹고 있으니 그 나름의 성취감도 꽤 컸으리라 생각한다.
최근 들어서는 마트에서 재료를 사기위해 고민하던 부분도 거침이 없어졌고, 재료 손질과 요리 중 수시로 정리하며 치우는 습관까지 잘 형성되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은 용돈을 받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즐거운 식탁을 만들기 위해 서로 노력하는 것이 즐겁다라는 사실을 깨닳아가고 있었다.
(물론 용돈까지 받을때면 어린애 마냥 팔짝팔짝 뛰면서 더없이 기뻐하지만...)
엄마의 노릇이라는 명목아래에 아들에게 요리를 조금씩 가르쳤지만,
아들은 엄마가 예상했던 것 보다 더욱 뛰어나게 자기몫을 다해갔고, 오히려 엄마에게 팁을 주기 위해 유튜브에서 배워온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나름의 계량법도 터득하고, 재료 손질법이라던가 요리 소요시간 등을 고려하는 전체 과정을 총괄하는 능력도 성장했다.
아들은 하루가 다르게 몸과 마음을 쑥쑥 키워나갔고, 부모를 향한 사랑의 표현 방법도 성숙해져 가고 있었다.
아이를 처음으로 키우던 엄마는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지 몰라서 많이 헤매고,
책과 전문가에게 정답을 찾으려 여러방면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성별이 다른 아들은 엄마의 생각보다 조금 더 어렵고 복잡한 행동과 언어를 구사하고 있었고,
엄마의 눈은 어린시절 아이에게 동화책으로 읽어주던 마녀의 눈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다시금 다정하게 아들에게 시선을 주고 그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사춘기에 들어서기 시작한 아들은 엄마의 친절을 거부하고 엄마의 다정한 시선도 외면했다.
서운한 마음에, 속상한 마음에 아들에게 소리도 치고 화도 내보았지만,
아들은 점점 더 메아리조차 돌아오지 않는 먼 곳으로 도망가서는 서로의 거리를 떨어뜨렸다.
아들의 음성이 그리웠고, 엄마만 찾던 어린시절의 따뜻한 아들의 체온이 그리웠다.
엄마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하다가...
기다렸다....
그리고 아들과의 간격을 1m라도 좁혀보고자 엄마가 제안했던 것이 요리였는데 아들은 우리가 내민 손을 적당하게 잘 잡아주었다.
이제는 아들의 마음이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것이 조금씩 보인다.
돌아오는 아들의 발걸음이 감사하고, 욕심부리지 않고 기다리던 나 스스로에게도 수고했다고 칭찬해본다.
오늘도 아들이 채워준 주방의 온기가 뜨거웠고,
그가 보여준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 엄마는 통크게 지갑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