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힘내세요. 아들이 있잖아요.
"엄마 엄마!!!!! 얘네들 자꾸 움직여서 안잡혀!!!
소금은 어디있어? 이거 굵은소금 쓰면 되는거야? 여기 안에 얼마나 뿌려??
엄마!!!! 뚜껑 빨리 뚜껑줘
아 C 도망갔어. 아이 C 안잡히는데, 미끄러운데 어떻게 잡어?
엄마! 이거 지금 싱크대에 빠졌어.
엄마! 안잡혀 완전 미끌거려!"
꿈틀 꿈틀 꿈틀 꿈틀
파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
투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둑
후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둑
.....
푸드득... 푸드득... 푸득... 푸득... 드득
.....
"엄마! 얘네들 죽었나봐. 이젠 좀 조용해졌는데? 이젠 어떻게 해? 씻겨서 끓여?"
아들아...
사실 엄마도 한번도 안만들어봐서 잘 몰라....
나 미꾸라지 무서워.
우리에겐 좋은 동영상 자료들이 있잖아.
어떻게 씻어서 요리해야 하는지 찾아보자구.
소금뿌리고 씻어내고 물에 헹궈내기까지 대략 20~30분정도가 지나니 이제 좀 손질이 가능해졌다.
자자, 이젠 좀 씻어냈으니 냄비에 넣어서 삶아볼까?
진짜지
나도 잘... 모른다만...
일단 끓여서 다 익히고 난 다음에 믹서기 갈면 되지 않을까?
둥둥 떠올라있는 미꾸라지가 다소 생경하지만 음식재료라고 암시를 하면서 넣고 끓여보자.
아들이 씻어낸 추어는 대략 30마리로 수산시장에서 5,000원 주고 샀다.
여름 보양에 특히 신경써야 하는 아빠를 위해 이번에는 추어탕이다.
평소에도 보양식으로 외부 추어탕집을 자주 찾는 아빠이지만,
특별히 아들이 직접 추어를 통채로 씻어서 갈았으니 추어양이 얼마나 들어갔을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빠는 비위가 약한 편이라서 통추어는 조금 먹기 어려워 한다.
원래는 통추어탕을 하려 했으나 아빠를 위해서 추어들을 모두 갈았는데,
오히려 눈에 잘 안보이니 심적으로 편해서 더 낫다.
강력한 믹서기에 약 2분간 통채로 곱게 갈아버린 추어는 마치 진흙과 같은 컬러와 점도가 느껴진다.
보기만 해도 완전 고담백이니 추어탕의 맛은 보지않아도 이미 맛을 본듯 내 기억에 있는 그 맛일 것이다.
준비한 우거지는 지난 겨울에 친정엄마가 직접 농사지은 무에서 잘라 태양볕 잘 말려둔 중요한 재료이다.
이 고운 추어탕 안에 함께 푹 끓여내면 맛은 더욱 깊어질테지.
추어탕의 간은 아들 본인만의 시크릿으로 비공개.
보글보글 소리를 내면서 추어탕의 맛은 점점 더 깊어져가고,
아들의 손은 국자에서 떠날새 없이 겉으로 올라오는 잡스런 거품을 걷어내기 바쁘다.
약 30~40분가량을 약불에서 끓이는 기다리는 시간이 조금은 지루하지만,
아빠를 위해서 아들은 잘 참고 지켜봤다.
조금 심심해지면 기타도 치다,
다시와서 냄비뚜껑 한번 열어보고,
또 기타치고 놀다가,
다시 들여다보기를 수차례...
"엄마! 이제 다 된거 같아요. 맛을 좀 볼까? 오! 맛있는데?"
"아들아, 수고했다. 다 했으면 냄비 통채로 가지고 할머니집에 내려가자"
아랫집에 사시는 할머니는 손주의 추어탕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른 밑반찬을 준비해주셨다.
역시 할머니 손길이 닿으니 식탁이 풍성하다.
상에 식구들 수에 맞춰서 추어탕이 올랐다.
마침 동생 가족들이 함께 와있던 지라 총 9명 인원에게 추어탕을 대접해야 한다.
자~ 각자가 밥은 알아서 양껏 떠먹기로 하고,
한사람 한사람씩 추어탕 받으세요~!
나 역시 평생 한번도 만들지 않았던 추어탕을 아들이 아빠를 위해 만들었다.
앞으로 또 언제 할지 모를 아들의 추어탕.
나도, 우리 엄마도 그 누구도 만들어 본 적이 없는 추어탕.
오, 맛을 보니 가끔 남편이 포장해오던 그 추어탕하고 맛도 거의 똑같은, 아니 오히려 더 깊은 감칠 맛이 나는 것 같다.
올해 남편의 몸보신은 아들의 공이 가히 매우 크다.
추어탕이 맛있다.
뼈채로 오래 끓여서 더 깊어진 추어의 향,
살짝 매콤한 향을 끌어내는 고추기름,
우거지 본연에서 우러나오는 무청의 시원한 맛,
그리고 무엇을 더 넣어서 끓였는지 알수없는 적절한 칼칼함과 적당히 우러난 간기.
웬만한 추어탕 전문점 맛이 집에서도 구현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닳았다.
소박하게 참 맛있다.
이 깊은 감칠맛의 주 원료는 무엇일까?
30마리의 추어에서 나온 그 본연의 맛일까?
아니면
아들이 아빠에게 전하고 싶은 사랑의 MSG가 더해져서 깊어진 맛일까?
오늘도 아들아 고맙다.
덕분에 오늘 식사도 참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