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정이 되었다.

새벽 4시반

by 글날 스케치MOON

나는 일주일 중 닷새, 새벽 4시 30분에는 잠시동안 요정이 된다.

요정의 옷은 블루와 핑크의 파스텔 톤이 감도는 드레스가 아닌 검은색 레깅스에 검은색 티셔츠,

요정의 머리에는 티아라가 아닌 캠핑용 후레쉬

허리에는 잘록함을 강조해주는 예쁜 황금색 벨트가 아닌 까맣고 넓은 허리복대

한 손에는 마법봉이 아닌 지도와 숫자가 표기된 핸드폰

내 어깨 뒤에 붙여야 할 날개는 없지만, 내 다른 한손은 바퀴가 달린 카트가 쥐어져 있다.


침대 머리맡에서 나의 알람이 울리는 3시50분, 나의 이른 기상은 주 5일동안 지속된다.

실제 요정의 본격적인 날개짓은 4시30분부터 오전 6시까지 약 1시간 30분동안 움직이지만 이 시간에는 매우 빠르게 날개짓을 해야 내 임무를 완성할 수 있다.

매일 새벽 나는 타인의 공간에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가서 요정의 임무를 수행한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남들보다 더 낮은 자세로, 모든 새벽 요정들이 그러하듯 나도 숨가쁘게 이동하면서 노동의 신성함과 가치를 몸으로 직접 배운다.

최근에는 동시간대에 만나는 새벽 요정들이 많아졌다.

좁은 통로와 주차장, 쉴새없이 오르고 내리는 엘리베이터의 공간에서 스쳐가시는 새벽요정들에게 인사를 건내기 시작했다. 그들은 처음에 나의 인사를 조금 멀리하고 어색해 했는데 지금은 자주 만나는 요정들이 나에게 먼저 웃음과 인사를 건내 주신다.

최근의 요정들 표정에는 웃음이 담겨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만나는 요정들은 다양한 요정의 옷을 입고 각자의 구역에서 빛을 발현하고 있었다.

신문배달 기사님(60대남성분), 오아시스/마켓컬리 배송 기사님(20대청년), 의류세탁 서비스 기사님(40대남성분), 도서배송 기사님(40대남성분), 그리고 경비아저씨들(연령대가 다양함).

나는 이 분들은 모두 요정이라고 칭한다.

간혹 오가는 요정이 아닌 일반인(=주민)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때는 내가 요정임을 감추기 위해 무조건 먼저 인사를 한다. 그래야 엘리베이터가 조금 늦게 오더라도 화내지 않으시고 고생한다는 말도 건내 주시기에 나름의 요령을 터득한 것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새벽 4시 30분에 만나는 요정의 얼굴을 보자마자 첫 마디부터 혼자 엘리베이터를 쓰느냐며 불같이 화를 내고는 엘리베이터에 있는 내내 공기에 수많은 가시를 꽂아 던지는 이들도 있다.

엘리베이터의 공간은 한 평도 안 될만큼 비좁은 공간이지만, 순간 그 공간은 해저처럼 깊어지고 어두워지며, 차가운 온도는 얼음보다 더 한기를 픔은 빙하수같다.

마치 빙하 저 깊은 곳에 가두어 진 것처럼 시리고 차갑다.

무례한 자는 나를 내려앉게 만들고,나를 쓸모 없는 한낱 먼지와 같은 미물처럼 바라보는 것 같았다.

그들은 몹시 무례하고 자신의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했으며, 성인으로서 마땅히 보여줘야 할 행동과 언어를 그릇되게 사용하고 있었다.

요정은 그런 이들을 접할때마다 다짐에 다짐을 하곤 했다.

'나는 어제보다 나은 자가 되자. 내 말과 행동으로 스스로가 부끄러워지지 않게 조심하자"


요정이 되는 시간은 야외 노동자의 가치와 겸손을 배우는 시간이다.

겸손이란,

사전적 의미에 의하면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나에게 매일 새벽 4시 30분은 나를 낮추게 하고 나를 돌아보게 하는 귀한 시간이다.


나를 자주 돌아보고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리고 나보다 더 낮은 자들을 위해 마음을 베풀고 그들에게 받은 고마움을 베푸는 그런 내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새벽 4시30분에 요정의 자리로 찾아간다.

(이미지츨처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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