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 창문 옆의 비

— 아직 꺼지지 않은 것들

by 불망

닫힌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빗소리처럼,

기억은 언제나 소리 없이 지금을 적신다.


병동의 새벽은 늘 그런 식으로 찾아온다.


비 오는 날이면 엄마는 늘 떠났다.

그리고 다시, 되돌아왔다.


병동의 창문은 닫혀 있지만,

빗소리는 그날의 기억처럼 여전히 스며들어온다.


환자들이 잠든 새벽,

세차게 쏟아지는 빗방울이 창문을 두드린다.


유리창에 부딪히는 소리가

누군가의 심장소리 같다.


방금 끝마친 산모의 태동 검사기 너머,

규칙적으로 울리던 태아의 힘찬 심박수처럼.


그 소리를 들으며, 발걸음을 멈춘다.


밖의 비는 차가운데,

병동 안의 공기는 이상할 만큼 따뜻하다.


환자가 두고 간 우산을 바라본다.


쓰고 나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괜스레 발끝으로 바닥을 살짝 긁는다.


오늘 아침, 창가 쪽 침상에 앉아 있던 산모가 말했다.

“선생님, 비 오는 날이면 아가가 잘 움직여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오래된 기억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비 오는 날이 항상 좋았다.


모두가 잠든 새벽,

채비를 마치고 낡은 장화를 신던 엄마.


잠든 우리를 한 번 쓱 둘러보고,

트럭 시동 소리와 함께 떠나던 그 뒷모습.

나는 실눈을 뜨고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곤 했다.


낡은 트럭 소리와 함께 떠난 엄마는

비 오는 날이면 언제나 다시 되돌아왔다.


우비와 장화를 벗어두고,

머리카락에 맺힌 빗방울을 털어내며,

주방으로 들어가 향긋한 김치전을 부쳐내던 뒷모습.


나는 그 냄새를 따라 신이 나

발을 동동 굴리며 엄마를 바라봤다.


비는 엄마를 잠시 데려가기도 했지만,

결국 가장 따뜻한 냄새와 함께 엄마를 데려다주었다.


매일매일 비가 왔으면 했던,

오래된 기억 하나.


마음 한켠에 여전히

그날의 냄새와 빗소리가 남아 있다.


나는 다시 창문을 바라본다.


병동의 불빛이 빗물에 번지고,

그 사이로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친다.


오늘의 병동은 잠시나마,

그날의 집처럼 따뜻하다.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처럼.



"이 기록은, 병동에서 만난 모든 따뜻한 새벽에 바칩니다."